어머니가 병으로 떠나가시고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을 드셨습니다. 해 저무는 저녁 무렵, 술을 드시고 고개 넘어오실 때면 집까지 아버지의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한동안 이웃집에 먼저 들르셨습니다. 그 집 마루에 걸터앉으셔서 눈물과 노래로 저녁 시간을 보내시고는 늦은 밤에야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다 새어머니와 재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연세라고 할 수도 없을 40의 젊은 나이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힘드셨겠죠. 자식들을 살뜰히 챙기시지 못하셨고, 우리 남매들도 어찌 살았는지... 그냥저냥 살아진 듯합니다.
오빠가 대학생이 되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쯤부터 아버지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연세가 드시면서 우리 남매를 의식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삶뿐만 아니라 그 시절 많은 삶들이 고단했던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부의 형편을 떠나서 삶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요. 그 시절엔 그리 사는 것이 당연한 거라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버티며 들 살아낸 거겠죠.
아버지는 내 10대 후반에야 생활전선에서의 방황을 끝내고 할머니와 살고 있던 우리의 집으로 들어오셔서 정착하셨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아버지도 머리가 세시고 빠지며 주름이 늘어가셨습니다. 아버지는 고향 집에서 어머니와 할머니를 모시고 동거하셨습니다. 사실 모시고 사셨다기보다는 세 분과 동생들이 동거를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 살가운 가족들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요. 지지고 볶고 사는 생활은 다 비슷비슷하겠죠. 나의 생각이 가정과 가족에 대해 찐한 愛가 없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살다 보니 친정이란 곳이 그리웠습니다. 가끔 찾아뵈었습니다.
아버지의 방을 들여다보면, 내 어린 시절에 뵌 모습처럼 군것질거리를 쟁여두고 드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명절이면 챙겨주시던 오꼬시라 불리던 쌀강정을 좋아했습니다.
연세가 드시면서 우리가 방문하면 이것저것 챙겨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난 그때부터 아버지의 자식 사랑을 느꼈습니다. 눈이 어두워지셔서는 여름철 기한 지난 견과류에 벌레 먹는 것도 방치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70대가 훌쩍 지난 어느 해부터는 야산 텃밭을 개간하셔 밭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좁은 산 비탈길로 세 발 수레를 끌고 오르내리시며 고구마, 감자, 고추, 배추 등 농작물을 길러내셨습니다.
70대지만 여전히 힘자랑하시던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약주를 즐기시며 밭농사에 정성을 기울이셨습니다. 인생 후반의 낙을 찾으신 것입니다.
가을이면 고추를 많이 심어 태양초를 만드셨고 손수 자르고 말리셔서 고운 햇고춧가루를 주셨습니다. 알토란 같은 김장 배추를 주셨고, 직장 일로 힘들 거라고 절구어서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직장 일에 지치고, 약한 몸에 김장하는 게 힘들었어도 아버지 정성이라 그저 감사하게 받아 왔습니다.
어느 해 여름의 어느 날, 어머니께 연락이 왔습니다.
"ㅇㅇ야, 아부지가 이틀째 안 들어오신다야. 어디서 새 아줌마를 사귄 건지..."
새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좋아하시면서도 늘 견제하며 애증 섞인 다툼을 하셨습니다. 친구분과 다른 아줌마들과 어울려 약주 드시거나 하면 워낙 외모로 인기가 있으셨던지라 어머니의 투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틀 귀가를 안 하셔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겁니다.
아버지의 실종
우리 형제들은 모두 아버지 찾기에 노력했습니다. 다니시던 행적을 따라 샅샅이 훑었으나 어디에도 안 계셨습니다.
아버지 사라지신 날,
아버지는 여느 날처럼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고추밭에 약을 주시러 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자취를 좇다 보니 자전거 타고 올라가신 모습은 보았으나, 내려오시지 못했습니다. 밭은 집에서 먼 곳이 아니었고 늘 다니시던 낯익은 곳이었지요. 몇십 년 누비고 다니신 곳이었지요. 잊어버릴 곳도 아니었고, 치매기도 전혀 없으셨습니다. 기력도 엔간한 할아버지보다 훨씬 넘치셨고, 일로 다져진 체력이 있으셨습니다. 비탈길에서 세발 수레로 배추를 혼자 나르실 정도라면 힘이 좋지 않으면 절대 못하는 일입니다.
약에 취하셔 쓰러지셨다면... 사라지실 일은 아니었겠죠.
아버지는 골목길 내려오시다 자전거 세워두고 어느 집 담벼락에 기대셨습니다.
그곳 이후의 자취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사라지신 다음날에 비가 왔습니다. 모든 흔적이 비에 씻겨 내려갔습니다.
내려오신 흔적도 없고 자전거 주인은 없는데 사라졌던 자전거는 이삼일 후 집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누군가 얌전히 가져다 놓은 것처럼요.
홀연히 사라지신 울 아버지의 최후는 자전거만이 알고 있겠죠.
고추는 빠알갛게 익어가는데
온 동네 온 산을 다 뒤져도 흔적 없는 울 아버지.
빨갛게 익은 고추는 주인 손을 기다리는데
주인은 영영 나타나지를 않고 빨간 고추를 바라보는 가족들 눈에 빨간 눈물만 흘렀습니다. 그래서 빨간 고추만 보면 슬픕니다.
6개월간 거의 매주 고향을 찾았습니다. 어머니 산소에도 가봤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요. 혼자 차를 몰고 아버지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는데 왜 그리 슬픈지요.
어머니는 어릴 때 병으로 가셨는데, 아버지는 이리 또 내 맘에 평생 슬픔을 심어주시나 싶어, 아버지의 가여운 삶보다 제 마음의 설움이 더 커서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고추는 그해 피무덤을 이루었습니다. 내 마음에서는 빨간 고추밭이 늘 울고 있습니다.
손마디 굵은 야무진 아버지 손을 기다리는 고추들이 함께 늘 울고 있습니다.
색 바랜 야상조끼를 입고 자전거를 타신 어른들을 보면 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