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30> 인연의 흔적... 아버지의 자전거 3

by 소망

아버지의 변화는 자식들을 향한 시선과 함께 어머니 무덤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셨습니다. 무덤을 돌보고 무덤가에 연산홍을 예쁘게 심으셨습니다. 4월이면 꽃이 피기 시작해 5월 말까지 흐드러지게 핀 꽃은 꽃무덤을 이루었습니다. 아버지는 뭐든 기르시는 솜씨가 있으셨나 봅니다.


돌봄과 사랑이 필요했던 우리의 긴 시간에도 아버지의 부재로 외로웠지만, 연세 드신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에 어른이 된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우울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사라지신 후, 나는 언니와 용하다는 무당집에도 여러 번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운명인지, 전혀 도움이 안 됐습니다.


고대하던 마음이 늘 묵직했고 우울했습니다.



어느 날 밤, 꿈에서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밝은 낮이었어요. 혼자 크로스백을 하나 차고 고향에 내려왔어요. 집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 집이 보이는 신작로 앞에 섰습니다. 길은 훨씬 넓어 보였고 저 멀리 고래 등처럼 큰 2층 기와도 있었습니다. 늘 보던 동네 거리와는 많이 낯설고 나른하리만큼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은 그 자리에 있었어요.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허름한 부엌의 여닫이문을 여니 아프고 초췌한 모습의 아버지가 바닥에 누워계셨습니다. 왜 여기 계시느냐고 묻지도 않았고 대화도 없었습니다. 꿈에서는 텔레파시 같은 것으로 느낌과 생각을 알지요. 아버지가 여윈 손을 뻗으며 먹을 것과 돈을 달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드실 게 없구나. 근데 왜 여기 어두운 부엌에 혼자 계신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버지를 위해 옆 가게를 다녀왔어요. 뭔가 드실 것을 사러 갔다 온 것 같아요. 그리고 아버지께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인사를 했어요. '아버지 잘 계세요.' 하고 나오려는데 돈 좀 주고 가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이건 꿈속에서의 느낌이었어요. 앞에 건 크로스백에 돈이 있는 게 기억났어요. 그런데 드릴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가방에 있는 돈은 제 돈이 아니고 공금이었거든요. 결국 아버지께 돈을 건네지 않고 집을 나왔어요.


꿈에서 헉 깼습니다. 그리곤 엄마 꿈을 꾸었던 훨씬 전 여름 때처럼 오열했지요.


꿈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이 처참하고 불쌍했어요. 왜 꿈에서는 그런 분별을 잘 못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 꿈을 꾼 후 오래도록 괴로웠습니다. 가족들께 말해도 다른 사람은 꿈속의 제 느낌과 감정을 다 모르죠. 전 잊기로 했어요. 어디선가 안타깝게 가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후 그 생생한 꿈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꿈속에서 손 내미셨을 때 노잣돈을 달라고 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꿈속에서 드렸어야 했어요. 깨어서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지요. 저는 이런 사람이었어요. 꿈속에서조차 공금이라고 꼭꼭 쟁여둔 사람요. 손 내미는 아버지께조차 인색하게 굴었던 사람요. 저는 왜 그랬을까요. 꿈속이라도 용서가 되지 않았어요. 어쩌면 돈을 드렸으면 좀 더 가시는 길이 편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했어요. 불효라는 생각에 차마 입 밖에 내지도 못하고 내내 자책했습니다.


그나마 안정된 직장을 다녀서 아버지께 찾아뵐 때마다 용돈을 드릴 수 있었고 계좌로도 보내드리곤 했어요. 아마도 제가 편하셔서 제 꿈에 나타나 손 내미셨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진짜 필요할 때 전 인색하게 외면했어요. 아버지께 정말 죄송해요. 제게 그런 아버지 사연은 판도라 상자 속 이야기가 맞습니다.


너무나 생생해서 죽을 때까지 가슴으로 기억하고 속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심적 혼란기가 수습된 지금, 아버지를 위해 기도합니다. 어느 곳, 어느 다른 세상에 계실지 모르는 지금에라도 편히 계시라고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순탄치 않은 삶을 이제는 가여운 한 인간의 삶으로 이해하고 품을 수 있습니다. 저도 곧 나이의 옷을 벗고 더 젊은 아버지를 만나러 갈 수도요.


제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은 여전히 그립습니다. 웃는 모습이 죽여주는 미남 장사 아버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사진도 한 방 찍어보고 싶고 한 번 제대로 안아보고 싶습니다. 사랑한다고, 죄송했다고, 이리 괜찮은 사람으로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도 싶습니다.


...... 이 생에서 울 아버지는 늘 자전거와 함께셨습니다.....


우리는 손수 가꾸신 어머니 무덤 옆에 오시기를 늘 기다렸습니다.





에필로그...



이제 아버지를 향한 슬픈 마음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딱히 우리 마음속에 아버지의 존재감은 별로 없었습니다.


늘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살았고 형제들의 대화에는 어머니만이 주인공이셨거든요.


그런데 아버지의 사연을 쓰다가 느꼈습니다. 아버지가 내 슬픔의 커다란 한 축이었다는 것을요.


아버지의 자전거를 회상하며 글을 쓰니 몸에서 무언가 툭 빠져나간 듯합니다. 글 쓰며 흐르는 눈물로 응어리를 풀어버렸나 봅니다.


어머니는 짧은 시간 함께 했어도 고운 정이었고 아버지는 길었던 시간이었어도 미운 정이었을까요. 미워한 적 없고 의식하며 산 것도 아니었는데요. 아버지의 그림자는 제 마음에 늘 드리워져 있었나 봅니다. 아버지 사랑을 원하지도 않았고 기대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의 모습, 말투, 즐겨 입으신 옷가지, 'ㅇㅇ야,' 부르던 음성, 하다못해 술 주정하시던 모습까지도 그립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였어요. 어쩔 수 없는 애증의 대상. 가장 가까운 근친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 받지 못한 사랑과 관심이 서운함으로 늘 깔려있었나 봅니다.


아버지도 이 생이 처음이라 낯설고 적응하기 힘드셨겠죠. 대대로 이어져온 가난의 업으로 팍팍하게 사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도 제 눈에 힘겨워 보였습니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까지도요. 이젠 제가 그분들의 삶까지 돌아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힘든 인생들이 수없이 많음을 아니 우리는 그나마 나은 삶을 살고 있노라 말할 수 있고요. 함께 하지 못한 즐겁고 화목한 날들이 못내 서운할 뿐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은 걱정 마세요.

38세의 어머니와 79세의 아버지보다 더 살고 갈 것 같아요. 애쓰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인연의 흔적을 끝으로 '풀린 실마리가 남긴 흔적'들을 모두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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