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8> 인연의 흔적... 아버지의 자전거 1

by 소망

내 기억이 나이기 시작할 무렵, 내가 본 아버지는 늘 자전거와 함께였습니다.

동네 부주고개를 넘어오시고 아침이면 다시 그 고개를 넘어가셨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는 쌀장사를 하셨습니다.

그전, 언니가 어렸을 적에는 쌀밥 먹기가 좀은 과장해서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전봇대가 세워지고 전기가 들어오던 때의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뒷세대였습니다. 쌀장사를 해서였을까요. 저는 쌀밥을 먹었습니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낡았지만 튼튼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수족처럼 자유롭게 부리셨습니다. 넓은 안장 뒤에 짐칸이 널찍한 짐자전거였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의 자전거는 우리 가족의 생계적 도구였습니다. 아버지는 짐칸에 커다란 쌀가마를 올리고 다니셨습니다. 아마도 쌀을 사 오시고 쌀을 팔러 가셨던 모양입니다.


자전거에서 쌀가마니를 내릴 때 아버지는 등으로 짊어지셨습니다. 두 가마니도 거뜬히 짊어지셨습니다. 아버지는 힘이 아주 세셨거든요.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질투의 대상이셨습니다. 힘센 장사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셨거든요. 그뿐인가요. 아버지는 신성일 님 뺨치는 외모로 늘 여자들의 눈을 호강시켰습니다. 너무나 잘 생긴 사람은 팔자가 세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요. 그래서였을까요! 말처럼 아버지의 삶도 무척이나 고달팠습니다. 나이가 들어 생각하니 참 애달팠습니다.


시골을 넘어 도시에서도 빛났을 그런 외모에 힘도 그리 장사급이셨으니 얼마나 멋지셨을까요. 키도 크셨습니다. 저는 사실 그런 아버지의 외모에는 관심 없었습니다. 전 마동석 님처럼 뚝배기 같은 남자에게 더 끌렸거든요. ㅎㅎ


지금 생각해 보면 힘센 할아버지의 유전자였는지, 아버지의 뼈는 튼튼하셨고 근육은 유연하셨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유연한 것, 그나마 뼈가 튼튼한 건 아버지를 닮았어요. 언니가 아버지 외모를 많이 닮았고 건강도 약해져서 그렇지 타고나기는 가장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저는 외탁을 많이 했어요. 넘어지면 부러지는 제 뼈도 아버지를 닮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수려한 외모에 눈웃음까지 지으셔서 늘 아줌마들 화제 속 대상이었어요. 엄마는 그만큼 속이 썩으셨겠죠.


대학 친구가 우리 집에 와 아버지 사진을 보고 "ㅇㅇ야, 너희 아버지 신성일 뺨치게 생기셨다."라고 했습니다. ㅋㅋ


그랬던 아버지의 삶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만, 언니한테 들은 아버지의 흑역사가 어머니를 일찍 병들게 하셨을 수 있습니다. 두 분의 숙명이셨겠지만요.


그런 아버지의 기억 속 자전거는 아버지의 상징물이었습니다.


아버지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 마실을 갈 때 흥분되고 좋았던 감정이 남아있습니다.


그 자전거가 제 마음속에서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것을 저는 압니다.


어린 시절 추억 때문일 거라고요? 아닙니다.

아버지의 최후이기 때문입니다.


제 기억에 아버지께서 자전거와 함께 삶을 살아가셨듯 마지막에도 자전거의 기억을 강하게 남겨주고 떠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이미 썼습니다.

1년 넘게 글을 쓰며 아버지를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꺼내면 아플 사연이기에 그러했습니다. 기억에서 꺼내면 오래도록 해결 못할 아픔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판도라 상자처럼 꾹 눌러 닫고 열어서는 안 될 그런 사연요.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러했습니다. 가슴이 아파 꺼내지 못하다가 아버지의 영혼을 추모하는 마음과 가슴 속에서 흘려보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저는 김장철이 되면 아버지가 더 생각이 납니다. 지난 12월도 그랬습니다. 십 수년 동안 늘 그랬습니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또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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