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26... 근거 없는 희망

by 소망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본, 한 구절이다.

"사람이 때로는 근거 없는 것에 희망을 두어 위안을 삼는다.'



깊은 의미일 것 같지만, 단순히 보면

가능성 없는 것에 기대를 거는 희망 고문이나,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이 그런 일인 듯하다.


복권을 사면 괜스레~~ 당첨될 것 같은,

시험에서 내가 찍은 답이 모두 정답일 것 같은,

클로버가 번지는 곳에선 고개만 숙여도 네잎클로버가 내 눈에 뜨일 것 같은,

그래서 내게 불행은 비껴가고 행운만 올 것 같은,

내가 하려고만 하면 뭐든지 잘 될 것 같은,

내 생각, 내 촉은 언제나 유용하고 유효할 것 같은.


특히 나도 이러한 사람 중에 하나라는 웃픈 사실을 인정한다.


'사람이 근거 없는 것에 희망을 두어 위안을 삼기도 하지.'라는 말이 맞기도 하나, 이제 좀은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된 해석을 해야 할 듯하다.



희망을 두는 곳에, 진짜 근거가 없는 걸까?


희망을 갖는 일이 근거가 없는 모든 것에 두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희망이 현실이 되는 확률이 다를 뿐임도 물론 알고 있다. 때론 사람은 100%의 확률에도 기다리는 시간 동안 희망을 품은 사람처럼 행복한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분명 사람은 근거가 없거나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도 막연한 기대 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기도 한다. 결과는 알지 못하는 상황이니 섣부른 판단으로 행복한 착각을 깰 필요는 없다. 결과가 확인되는 경우 희망의 근거가 물거품이었음을 알게 될지라도...

그러나 반대로 진짜 근거가 없는 제로섬 같은 희망에도 우연의 선방, 대박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면 근거 없는 희망이 위안을 넘어 인생 좌표를 바꿔 놓을 수도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억할 일 중 하나는, 우리 삶에 펼쳐지는 일들이 모두 우연의 사건들이라는 점이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우연의 일에 근거가 있으면 얼마나 큰 확률일 것인가? 수학이나 과학처럼 똑떨어지는 거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희망과 위안은 보이지 않는 관념일 뿐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 떨어질 때부터 희생을 운명으로 지고 온 존재이다. 언제 갈지도 모르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힘든 삶 속에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는데, 무슨 확실한 근거가 있을까. 원체 우리 삶이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근거가 있다면 정체불명의 창조주, 알 수 없는 하나님만이 근거이지 않을까 싶다.


이미 이 세상은 기적으로 가득 찬 곳이다. 우리 눈으로 보면 근거 없는 희망으로 보이지만 하나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근거가 된다.


형태(色)의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기적ㅡ우리가 기적으로 부를 뿐ㅡ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없는 것이 없다. '우리는 기적들 사이를 눈먼 사람들처럼 다닌다'는 말이 딱 맞기에, 우리의 희망에는 보이지 않을 뿐, 근거가 없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 섭리를 근거로 우연처럼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기적을 우리는 기적이라 믿지 못하니 많은 일들을 근거 없이 일어난다 생각하는 기적처럼 여기는 것이다. 희망조차 희망일 뿐이라 착각하고 사는 건 아닌지......


하나님이 우리 희망의 근거이고 하나님이 곧 위안이 되시는 것이며 우리는 희망이라는 기대를 핑계 삼아 삶을 즐기는 것일 수 있다.



그러면

왜 사람은 근거 없는 것에 희망을 두어 위안을 삼는 것일까?


위에서 말한 바로 보면 근거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창조주이기도 하고, 기적을 보는 눈이 안 뜨여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에게는 우연의 사건처럼 오기 때문이며, 보이지 않는 근거들은 정량이 아닌 정성의 것들이며 관념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의 눈에 확실히 보이는 것들과 결과치ㅡ예로 물증 같은ㅡ에 근거를 두어 판단하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줄로 알면서도 그에 기대를 해 보는 일이나, 그로 자신을 위로하고 위로받는 일을 하는 일이 뭔 대수일까 하겠지만, 그로 인해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니 큰일이다.


그것이 큰일이 되는 이유는 곧 근거 없는 것에라도 희망을 두어야 위안이 되고, 그렇게라도 이겨내며 살고 싶은 나약한 인간의 바람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인 것이다. 기대 내지는 바람.


그런 면에서는 존번연의 위 말이 참으로 타당하다. 지금 나는 그의 말을 꼬아 비틀듯 말을 어렵게 하는 것 같지만, 본질에 대한 말을 하고픈 것이다. 풀어보려는 시도이다.


나는 사람이 근거도 없다 알면서도 희망을 품어 위안을 삼는 그 이유를 하나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 두려움에서 오는 나약함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유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어쩔 수 없이 희생을 운명으로 지고 온 존재임을 알고 받아들인다면ㅡ삶을 살아내는 일부터가 희생이다.ㅡ 근거 부재한 희망 같은 건 갖지 않을 것이며, 또 하나님과 그 뜻을 진정 안다면, 그 님의 존재와 그 세상 뜻에 근거를 삼을 것이다. 그는 우연의 사건이 아닌 필연처럼 여기며 기대보다는 섭리로 수용할 것이다. 우리가 하니님과 같이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희망 같은 건 품지 않을 것이다. 부족한 존재이고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희망을 품는 것이다.


이 세상을 모두 채우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희망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사람이 근거 없는 것에 희망을 두는 것 같지만, 내 관념으로는 틀리게 보인다.

하나님께 희망을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편 아닐까.


참 복잡하고 비틀린 상념인 듯하지만, 과학이 아닌 철학은 어떤 것도 틀린 게 없다는 말과 같다.


생각을 쉽게 풀어내지 못해 복잡해 보이는 것이니 읽으시는 분들은 이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