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28... 상실의 훈련

by 소망

무지의 선상 끝 즈음에...


어른의 좀은 창피한 경험, 그 매우 솔직한 이야기


상념보다 사연이다. 그러나 이 사연은 내 안의 감정과 사고의 변화, 그리고 태도의 변화를 가져올 경험임에 틀림없다.



2020년 우울증, 바닥치고 올라오니 손목 골절. 그래, 손목 골절이야~ 수술 후 1년 뒤인 2024년 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서 20일 넘게 돌아다니다 왔고 가을에는 이태리 가서 놀다 왔다. 내가 여행을 떠날 때는 집과 가족에 대한 미련 없이 훌훌 떠났다. 우울했고 갑갑하고 초라했고, 그런 나의 자격지심에 가족에 대한 서운함이 밑바탕에 깔려 ㅡ스스로 모든 것을 떨쳐내려고 애썼고 하나님을 알면서 조금씩 가능했지만ㅡ 남아있었음을 아예 부인할 수 없다.


오랜 시간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인내했을 것이다.


24년 봄에는 무작정 나가고 싶어 일주일 전에야 "나 여행 가." 했다. 남편의 반응은? 일반적인 거부 반응이었다. 그러고 난 탈출이라도 하듯 떠났었다.


게다가 작년에는 다리 골절 사고를 당해 지금껏 일상생활에 완전 복귀도 못한 상태이니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애쓰며 그도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내가 가사 일을 점차 시작하며 재활이 순조로이 되니 그도 탈출하고 싶었나...



입장 바뀌니...


한 달 전쯤

쭈뼛거리며 내게 입을 여는 남편

"저~~ 나 여행 가기로 했어."

사실 사는 동안 출장 외 날 두고 혼자 여행 간 적이 없는 남편이었다.

"호 ~그래?"

나는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어디로? 누구랑? 잘했어, 잘했네. 당신도 잼나게 다녀와." 했다. 그제야 얼굴의 긴장이 풀리며 하는 말이 "그래도 당신보다 일찍 말하는 거야. 일주일 전에 말하려다..."

ㅡ은근 뒤끝 있다.ㅎㅎㅡ

가족과 떨어져 혼자 여행이란 걸 간다니 놀라웠고, 지인들 여럿과 ㅡ'안전하니 좋아'ㅡ 열흘 정도 해외로 간다니, 반가웠다.ㅡ'울 신랑도 낯선 문화를 접하며 견문 넓혀야지.'ㅡ


남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아직 걷기 연습 중인 날 두고 떠날 여행이 좀 걸렸을 수 있다.

나는 흔쾌히 다녀오라고 협조했다.

이후 그는 내가 좀 더 빨리 회복되길 바라며 여행 떠난 후 내가 힘들지 않게 미리 필요할 것을 챙겨 주었다. 고마웠다.


날짜가 지나는 동안 나도 신났다.


그리고 드디어 떠나는 날. 새벽같이 일어나 떠났다. 현관 밖에서 웃으며 배웅하고 문 닫고 들어왔다.



자율적인, 정신의 통제권 상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순전히 내가 만드는 허한 감정. 텅 빈 듯하지만, 가슴 답답한 증상이 나타났다. 경험한 기억이 없는 느낌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공황장애 같았다.


잠도 정말 달아났고 tv도 관심 없고, 핸드폰도 보지 못하겠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숨이 갑갑해서 베란다 문을 열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날이 밝아지면 나아지겠지' 부족한 잠으로 인한 야리꼬리 한 몸 상태까지 견디며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울증을 앓을 때나 골절 사고 당시에도 경험하지 않았던 느낌이었다. 몸과 마음 상태를 계속 체크하며 심호흡을 하며 평정을 찾으려 애썼다. 덕분에 이리저리 다니며 먼지를 닦아대고 소리 내는 로봇청소기를 돌리니 집은 정돈되고 깨끗해졌다. 그러나 답답함이 확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몇 년간 묵상과 성찰을 하며 많은 변화를 거치고 있었다. 무식에서 좀은 유식으로 무지를 벗어내고 있으며 내 과거 고통체의 두 축인 외로움과 불안을 털어버리고 있었다. 실제 많이 치유되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진짜 별일 아닌 상황에서 외로움의 실체를 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절여왔던 외로움이 아직 남아 있었다. 누군가 떠나거나, 홀로 버려지면 찾아오는 정서였다.


예상치 못했었다. 분명 몸과 감정? 뭔지, 정확지 않은 그 무엇이 내 의식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니, 이 나이에? 순간 찾아온 외로움에 어찌할 줄 몰랐지만, 나는 내 결핍된 정서를 너무나 잘 알고 원인도 알게 되었기에 오래 당황하지는 않았다. 가라앉혀 해결할, 나를 구할 방법을 생각했다.


공부는 허투루 한 게 아니었다. 아는 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남편과는 잠깐 떨어져 있을 뿐인 거야. 누구에게나 다 있는 일, 나 혼자 두고 여행 간 적이 없어서 결핍된 감정이 올라온 것뿐이야. 너는 네 멋대로 그를 두고 떠났었잖아. 네 경우보다 훨씬 낫잖아?'

그리고 아마도 국내 여행이었으면 이러지 않았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순전히 해외로, 멀리 간다는 이유에서 그럴 뿐이었다.

'사람에게 누구나 이별이 있잖아. 만약 영영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견딜 건데?' 이런 등등의 생각을 하며 불생불멸,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라는 것과 그저 육체로 이 세상을 살다가 그냥 어느 날 떠나는 존재임을 상기했다. 그리고 스스로 물었다. '너 ㅇㅇ이 어느 날 진짜 영영 너 혼자 남게 되면 어쩔 건데? 인간의 존재와 삶이 허망함을 알고 있잖아? 이별도 길고 거대한 삶의 일부일 뿐이야. 미래 어느 날에 있을 일에 대한 예비 훈련일 뿐이야. 그땐 어쩌려고? 어쩌려고? 어쩌...?' 스스로 재차 같은 질문을 던져댔다.


'외로움에 그런 것이 아니야. 실체라는 건 없어. 단지 마음이 만드는 것일 뿐. 외로움도 이미 떠났잖아. 그리고 넌 이제 버려진 어린 ㅇㅇ가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전쟁으로 사건사고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숱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슬슬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그리고 숨이 답답한 공황 증세가 사라졌다.



떠나보냄은 상실의 훈련...


한편 부끄러웠다. 몇 시간의 경험이었지만 이런 작은 일로 숨이 막히고 안절부절못하다니...


그리고 크게 깨달았다.

늘 가까이 있던 상대의 마음과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

함께 있는 하루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어쩌면 늘 하던 죽음과 상실에 대한 생각에 쐐기를 박아버린 듯했다.

'늘 아는 듯이 초연할 듯하더니, 지금 숨도 잘 못 쉬는 이 모습이 미래에 겪을 일에 대한 네 반응이야.' 스스로 조롱하는 듯, 조롱받고 있었다.


생각은 생각일 뿐, 실전이 아니었다. 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나약했다. 마음을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만약에~'를 생각하며 통제할 수 있는 의식과 마음 근력을 챙겨 수습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실 후 눈물은 못다 준 사랑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진정 사랑할 시간도 부족하다.


그리고 내 마음 수습하며,

'결국 사람은 매일 죽고 매일 새로 태어나는 거니까. 숨이 멈출 때 세포는 날로 죽어가고 오늘의 모습이 내일의 모습은 아닌 거니까. 남편도 결국 배웅할 때의 남편으로 돌아오는 것 아니니까. 그도 수없이 죽고 나도 그래. 마음속에 품고 늘 사랑하자. 겉모습에 속지 말자. 영혼을 사랑하자.'

뭔 말인지는 내 안의 나만이 알 것이다.



여행 가기 전날 남편이 물었다.

"당신 나 없는 동안 어찌 살지?"


속으로는 'ㅎㅎ 내가 예전의 나인 줄? 고작 며칠 여행 가면서 하는 말?'

그러면서도 "당신은 없지 않아. 항상 나랑 함께 있거든~~" 피식 웃으며 말했었다.


나의 몇 시간의 경험은 참 의아했다.

나 혼자만의 해프닝이었던 거였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환승국에서부터 전화가 수시로 온다. 결혼 후 3년 차 한 달간 해외 출장 갔을 때 매일 울고불고하던, 덜 큰 색시로 매일 국제전화 해댔었는데, 60이 되어도 그러했다.


남편의 이번 여행은 나의 변화를 이끌어낸 경험이다. '돌아오면 다시는 미워하지 말자. 매일을 끝처럼 사랑해야지.' 생각했다.


남편의 인내와 배려가 고마웠다. '뭔 전화를?' 했는데 전화 덕분에 일상으로 매우 빠르게 돌아왔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잠도 잘 잤다.


"당신 덕에 잘 잤네. 고마워!"


한 번씩 입장이 바뀌어 봐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내 떠남보다 누군가를 보냄이 더 힘든 일임을 절실히 느꼈다. 난 훈련의 기회를 가졌다.


짧게라도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내게는 상실을 대비한 훈련이다.


한편 또 이런 생각도... '나 아직 어른 아이인 겨? 언제나 어른이 되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