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실마리를 보다... 7편/ 슬픈 치매 할아버지

모르기에 더 슬픈 인생들

by 소망

계속되는 우울 속에 하나하나 다 꺼내며 눈물로 기억들이 다 씻기기를 원했다.

내 기억 속에 살아계신 또 한 분,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10여 년의 세월 안에 생때같은 두 아들을 잃으셨다. 그리고 나의 엄마인 며느리도 잃으셨다. 마음의 상처는 두 분의 성격 차이에 따라 양상을 달리했다. 할머니는 그런대로 시간으로 극복하셨다. 할아버지께는 치매가 찾아왔다. 남자 여자를 넘어 사람의 마음은 강약이 달랐다. 할머니는 의연하셨고, 생을 즐기셨다. 할아버지가 더 섬세하고 예민하셨던 분 같다.


할아버지는 완고한 편이셨고 욕은 잘하셨지만, 조용한 분이셨다. 치매가 오시면서 의심도 많아졌고 아무에게나 욕을 하시는 등 무서워지셨다.


저학년 때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와의 사이는 좋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새엄마가 낳은 동생을 매우 예뻐하셔서 살뜰히 챙기셨다. 그도 순수한 아이에게 향하는 착하고 자비로운 본성 때문이었겠다.


내게는...

할아버지께서 제정신으로 돌아오실 때는

"에미 없이... 저 불쌍한 것... 쯧쯧."

치매기가 발동하시면

"이 x야, 내 ㅇㅇ 어디 뒀냐? 다 갖다 버렸냐?" 하며 뭔지 모르는 소리를 하셨다.


치매가 뭔지도 몰랐던 나는 말대꾸를 계속했고, 할아버지는 익숙한 행동처럼 이미 손에 지팡이를 들고 계셨다. 지팡이를 휘두르며 나를 쫓아 달려 나오셨다. 온 집안을 숨바꼭질하듯 뛰어다녔다. 후에 생각하니 톰과 제리의 쫓고 쫓기는 장면 같아 웃음이 나왔다. 그런 일이 수시로 있으니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운동이 되었고 영화는 못 봤어도 긴장과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ㅎㅎ


할아버지는 천식으로 가래가 늘 끓었고 동생의 분유통을 가래침통으로 쓰셨다.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방에서 거의 나오시지 않았고 캭~캭~ 하며 늘 침을 뱉으셨다.

치매기가 발동하면 화를 내셨는데, 그때는 조심해야 했다. 안 그러면 가래통이 날아오기 때문이었다. 그 통을 매번 비우고 버리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그때는 너무나 싫어서 억지로 했는데, 할아버지께 죄송하다. 좋은 마음으로 해드리지 못했다.


초등학교ㅡ당시 국민학교ㅡ 졸업식에 참석도 못했다. 나중에 졸업장은 선생님이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 주셔 받은 듯하다.


중1학년 과정을 쉬면서 집안 살림을 도왔다. 할머니가 안 계실 때에는 할아버지와 동생을 챙겨야 했다. 새엄마는 안 계셨고 아버지는 홀로 계셨다. 중학생인 오빠의 밥도 해 먹여 학교에 보내야 했다.


저학년 이후 할아버지와 나는 떨어진 적이 없었다.


가끔 외부 출입도 하시고, 집 앞에 나와 앉으셔서 햇빛도 쬐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는 자리 보존하고 누우셨다.

지금처럼 편한 평상복이 아닌 한복을 줄곧 입고 지내셨다. 무거운 한복, 겨울이면 자주 빨지도 못해 개인위생이 형편없었다. 자리 보존 후의 할아버지 주변은 환자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조그만 밥상에 찬과 밥을 올리면 겨우 일어나 몇 술 뜨시곤 했다. 얼굴은 붉다 못해 거무튀튀하게 변해 가셨다. 할아버지는 병원 진료 한 번 받지 못하셨다. 죽음은 할아버지께 구원의 기회였을까.


가을의 어느 날 저녁.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ㅇㅇ야, 빨리 들어와라~" 부르셨다.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눈을 안 감으신다. 널 보고 가시려나 보다. 얼른 할아버지 봐라." 하셨다.


"할아버지~" 외마디만 했다.

그러고 나서 뒤로 물러섰다. 할머니께서

"이젠 ㅇㅇ 봤으니 눈 감고 잘 가요."

하셨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눈앞에서 죽음을 맞은 건 처음이었다. 아무런 느낌도 없이 할아버지를 보냈다. 지금은 너무나 죄송하다.

손이라도 잡아 드릴 걸.

얼굴이라도 닦아드릴걸.


난 고약하게 구셨던 할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죽음 앞에서도 별 감정이 없었다. 무덤덤했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나를 본 후 눈을 감으신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으셨나 보다. 어떤 마음이셨을까. 인생의 고단함을 몸으로 다 받아내셨는데 과연 인생이 그러했음을 알기는 하셨나 싶다. 인생을 오래 사신 할아버지도 엄마도 삼촌들도 모두 어른이었지만, 아무도 삶과 죽음에 대해 알고 가신 분은 없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나와 끈끈하게 엮여있던 인연의 한 끈이 또 떨어졌다.

나의 인생 베일은 무채색이었다. 무감각한 채, 많은 이별을 했다. 슬프다.



다음 해,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어려움은 있었으나 내 운명은 점차 어두움을 걷어내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초년의 약 9년간 고단한 시기에서 늘 달고 있던 초감정의 실마리를 보았다. 이제는 풀어가는 과제가 내 앞에 있었다.


눈은 더디게 아물고 찐보가 되긴 했지만, 시간 흐름에 따라 진정되어 갔다. 눈보다 마음의 병을 치료해야 했다.



To be continued~




에필로그


어느 겨울날 동생이 이불에 오줌을 쌌다. 어쩔 수 없이 이불 홑청을 벗겨 빨아야 했다. 하기 싫어 미루다가 오후에 빨게 되었다. 데운 물이 적어 초벌빨래를 미지근한 물에 빤 후 찬물에 헹구고 있었다. 빨래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할아버지가 나오셔서는 오밤중에 재수 없이 빨래한다며 성을 내셨다. 그리고 빨던 이불 홑청을 빼앗아 길거리에 버리셨다. 난 울면서 흙과 범벅된 빨랫감을 주워다 다시 헹궈야 했다. 내참~~ 지금은 헛웃음만 나온다.



살아온 날 동안 어머니를 꿈에 뵌 적은 딱 한 번이었다.

그 시기에 할아버지도 꿈에 뵈었다. 놀이터에서 어린 내가 할아버지와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입으셨던 한복보다 밝고 깨끗한 한복을 입고 계셨다. 환하게 웃으시나와 놀아 주셨다. 생전에 어미 잃은 손녀랑 놀아주시고 싶었나 보다 했다. 그 꿈은 내게 행운을 선물했다. 그 후 할아버지를 또 꿈에서 뵙길 바랐지만 다시는 뵙지 못했다. ^^


할아버지가 뵙고 싶다. 따뜻한 말 몇 마디 건네드리고 싶다. 사시느라 애쓰셨다고, 사랑한다고, 할아버지가 계셔서 덜 외로웠다고...


주변의 어른들조차 그 누구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리고 삶에 대해 몰랐다. 모르기에 더 슬픈 것이 아닌가. 몰랐기에 겪은 일들이 더 큰 슬픔으로 살아난다.


우리네 인생, 삶이 그런 거야. 알았다면 마음 근력으로 좀 덜 아프고 덜 슬펐을 텐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