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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컷 2... 교만과 겸손 사이

자아의 교만은 No, 겸손한 배움의 자세 Ok

by 소망

"누가 그리 춤을 예쁘게 추나 했더니 언니였군요!" 초급에서 올라온 회원의 칭찬.


"ㅇㅇ씨는 춤이 그냥 몸에 붙었네. 멋져!" 하는 왕언니의 칭찬.


"앞에 언니가 있어야 우리가 따라 하는걸요. 빠지면 안 돼요." 하는 신입 회원들의 부탁.


이런 대놓고 말하는 칭찬과 숨은 칭찬은 아직 겸손의 도를 완전히 체득지 못한 나를 으쓱하게 한다.


'사람은 늙어도 칭찬을 먹고 사는구나!'


칭찬에서 그치고 제 페이스대로 유지하면 그나마 겸손이지만, 이미 올라간 어깨를 나는 자. 만.이라 일컫는다.


잘 추고 못 추고를 떠나 '내가 추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겸손은 손 흔들고 떠난다. 그리고 찾아온 자만은 태만까지 부르게 된다.


스스로 미숙하다 여기고 한결같은 자세로 겸손을 유지할 때 사람은 늘 한 차원 높은 경지로 오를 수 있으며 인간 자체가 좀 더 온전해진다.


겸손과 교만 사이는 손바닥 뒤집기다. 세상의 이분법적 가치는 늘 손바닥처럼, 배와 등처럼 짝을 이루고 있다. 그만큼 가까이 있으며 가볍게 내리는 눈꺼풀에 시야가 가렸다 열리는 것처럼 쉽게 오갈 수 있는 세트의 가치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스스로 만족하여 자존심을 채우고 사는 존재이기에 작은 자만에도 쉽게 노출된다. 그래서 겸손의 자리에 머물기도 힘들다.


특히 아줌마들 댄스 그룹은 텃세도, 시기도 질투도 심하다. 그들의 입방아에 자칫 나를 잃을 수 있어 늘 중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자만을 꺾어주는 건 역시 어려운 새 작품. 자존심을 구길 때 겸손함이 살아난다. 나는 그러네...ㅎ




퇴직 후, 나의 인생은 화창한 봄을 맞았다. 긴 겨울이 있었지만, 50대 후반에 맞는 봄이라도 달콤, 화창이다.


내 인생 후반전.

영혼의 의존처는 40년 만에 재회한 하나님이다. 정신적 낙은 글쓰기이며 육체적 낙은 라인댄스이다.


스스로 고통체를 치유하라고 글 쓰는 길을 열어주셨고 운동하라고 댄스를 취미로 삼아 주셨다. 난 원체 박자감도 없는 박치에, 청음 빵점의 예사롭지 않은 음치에, 또한 몸치였다. 그런 내가 10여 년 전 친구의 권유로 댄스에 입문했다.


일주일에 한 곡을 배우고 오면, 될 때까지 주리장창 연습했다. 남들 오른쪽으로 돌 때 혼자 왼쪽으로 도는 건 나뿐이었나... 그러면서 권태기를 이기고 10여 년이 흐른 것이다.


'나의 사랑 라인댄스'가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구력 10년쯤이면 32 카운트의 intermediate 정도는 금세 익힐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님?


그러나 금세 익혀지는 건 없다. 지금도 때론 32 카운트 imprpve 정도의 스텝도 한참을 버벅거린다.


나이 탓인가.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서인가.


머리의 기억에도 한계를 느끼고 몸으로 기억하는 것도 한계를 느낀다.

나의 필살기는 무조건 시간에 탑승한 반복이었는데 그를 안 해서 그런가 보다.

좀은 춘다는 스스로의 자만 때문인가.


처음 유튜브 영상을 보며 익히기 시작한 것이 5년 되었으려나. 방향 감각이 없는 나, 얼마나 공간이나 방위에 대한 지각력이 부족하면 종이에 방향을 그리고 시ㅡ12시 3시 6시 9시ㅡ를 써놓고 연습했으랴. 오른발 왼발 위치가 헷갈리고 도는 방향을 파악하지 못해 엄청 틀렸다. 빠른 속도를 못 따라가 다시 다시 또다시 또또다시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설정의 재생속도를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기를, 난 둔해서인지 2년 이상 걸렸다. 이제는 그리지 않고 영상만을 본다.


다른 이들은 스텝을 잘 따라 하는 나를 보며 '새로운 작품인데 잘하네.'라고 하지만, 그냥 몸에 배는 작품이 어디 있으랴. 다 연습으로 인함이지.


'연습 덕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연습 부족으로 못하는 자신을 탓하기보다 타인을 칭찬하는 일을 택한 그나마 넉넉한 사람들이 있는 세계ㅎㅎ' 그 속에 내가 살고 있다.


지금도 intermediate 수준의 작품을 익히려면 한 시간 이상 집중해야 한다. 기억의 한계는 하루? 아니 몇 시간? 계속 기억을 재생해서 연습해야 한다. 이게 맞는 건가. 내가 열등해서인가.


입문은 10년이 넘었지만, 족부질환과 오십견, 손목 골절 수술, 코로나 등으로 몇 년을 쉬고 우울증으로 두문불출. 함께 어울리던 공동체를 벗어나 오로지 춤추기 위한 공간을 찾아 헤매다 지금의 자치센터에 도착했다. 실제 구력은 9년 정도 되려나. 그도 이래저래 일주일 두 번 배우고 익혔지만, 홀로 연습의 시간이 길어서 그나마 구력이라 칭하고 있다.


댄스를 하면서도 我가 얼마나 강하고 편협된 지를 보게 된다.


젊은 날, 방향 감각은 둔해도 댄스 학습력이 좋은 편이었다. 그것은 그런 我라고 하는 강하고 편협된 면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두루뭉술, 물에 물 타고 술에 술 탄듯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었다.

어쩌면, 댄스 작품을 익힘에 있어 고정된 패턴이 없기에 잘못 배운 스텝이나 동작을 빨리 교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댄스를 배운 적 없고, 익혀서 몸에 밴 동작이 없기에 가능했다.


이제 9년의 구력에 습이 생겼나 보다. 예상치 못한 패턴의 카운트와 스텝 동작을 하려면 몸과 발이 꽤나 버벅거린다.

'익숙지 않아. 이거 안무가 좀 그러네.'


이미 난 전문가라도 된 것처럼 안무를 탓하고 있다.


새로운 Phrased Advanced 작품을 배우는데 어지럼증이 도지려는지 한 바퀴 도는 full-turn과 2분지 1을 도는 Pivot-turn, 4분지 1을 도는 quarter-turn을 연이어 도는 동작을 못하겠다. 두 바퀴 full-turn도 아닌데 그러하니 심란했다. 머리가 흔들리면 무조건 멈춰야 한다. 이석이 올 수도 있다. 새 작품을 따라가지 못하고

2일간의 댄스 강습을 쉬는 시간처럼 보냈다. 어지럼증으로 연습도 못했다. '역시 Phrased Advanced가 익히기 어렵긴 하네.'


빠르게 도는 630도 회전, 체중 싣지 않는 빠른 발스텝이 내 몸을 주저앉힌다.


난이도 있는 곡들은 그만큼 들을수록 멋진 곡이라 포기할 수 없다. 요즘 신생 작품들을 보면 좋은 곡을 골라 여러 안무가들이 협력해서 만드는 추세이다. 팔 동작과 회전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특징이다. 전에는 1인 또는 2인 정도가 협력해서 스텝 위주의 안무를 했다면, 요즘엔 5~6인 이상이 협력해서 안무를 하기도 한다. 오히려 작품성은 낫다. 팔 동작도 함께 넣어 안무를 하기 때문이다.


진짜 어지러움으로 그런 건지, 실력이 안 되는 건지... 아니면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진짜 습관이 된 몸 때문인지를 세심히 살폈다.


천천히 분절해서 돌아보니 그도 어지럽다. 맞다.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귓속의 자극이 느껴진다.


잘하고 싶은 욕심은 일찍이 내려졌다. 욕심으로 춤을 추면 자연스러움을 잃는다는 걸 알았으니까. 나의 경쟁자는 나인 걸. 내면에 집중해서 추어야 향상된다.


몸에 밴 습으로 새로움을 못 받아들인다면 그도 실력이다. 뇌를 최면에 쉽게 이끄는 것은 새로운 패턴이다. 습이 되었다는 것은 뇌가 이미 '아, 이거. 아, 저거.'라고 익혀 기억하고 있는 스텝으로 단정 짓고 있다는 말이다. 낯선 것이 치고 들어올 때 뇌는 거부하고, 거부는 몸으로 나타난다. 이럴 거라는 능동적 추론을 해 버리는 뇌의 고정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반복하는 일뿐이다. 결국 몸을 통해 반복해서 익히면 뇌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만다.


'아, 이거 intermediate구먼!' 하면 뇌는 기존의 것을 찾아 쉽게 쉽게 간다.

그러나 이번에 Phrased Advanced를 접하니 놀란 것이다. 익숙지 않으니까.


여전히 나의 실력은 부족하다. 고난도도 아니건만, 이내 부족함을 드러내었다. 이도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익히라는 가르침이렸다.


이렇게 하나, 둘,... 더 배우고 익히며 깨우쳐 간다.


인생에서의 낙을 찾고 즐기는 것에서도 배움은 늘 있고, 배움으로 기쁨을 얻는 만큼, 힘겹게 꾸준히 분발해야 함을 알게 된다.




사람은 비교를 하면 비참함을 느끼거나 교만함을 갖는다.


자신 스스로, 또는 타인과 비교하며 비참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의 결과는 반드시 주어지고, 어느 정도 만족하게 되면 비교의 경계를 지나 교만으로 향한다.


내가 고난도의 작품에서 버벅거린 것도 결국 자만에서 오는 연습 부족이다. 모든 것에서 그러하니 배움에 있어서도 겸손해야 한다는 깨침, 벼는 익을수록 고개 숙이듯 잘할수록 더욱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진정한 실력인이 되기 위해서 늘 겸손, 겸손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비교의 틀 속에서 교만과 겸손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나는, 아직 그렇고 그런 인간임을 댄스 속에도 자각한다.


나의 포기는 ㅇ팔림이다.


그러나 모든 자존심의 팔림도 자만심의 발로라는... 후후


나의 비교 대상자는 '어제의 나' 일 뿐이다.


댄스 생활 속에서도 교만과 겸손으로 오락가락하는 나, 언제나 고개 숙인 알찬 벼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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