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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Jun 14. 2024

안구사(雁丘詞), 정이란 무엇이길래?

신조협려(神鵰俠侶)의 사랑의 테마


중학교 때 처음 알게 되고 난 후 잊혀지지 않고 입속으로 되뇌이며, 지금까지 가끔씩 떠오르고 읊조리게 되는 유일한 중국의 시(詩)가 있다.

 

고시조(古時調)부터 시작해서 일제강점기의 시인들, 서정윤의 홀로서기에서부터 원태연의 시에 이르기까지 시를 좋아해서 우리나라의 시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의 시도 조금은 읽어보았지만, 이상하게 중국이나 일본의 시는 사실 별로 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 중국의 시는 어렸을 적 빠져들었던 대하역사 무협소설의 대가, 故 김용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서 그나마 작품 속에서 소개되는 시를 조금 알게 되었었다.


김용 선생의 소설 중에서도 인기 있는 대하소설들이 여러 시리즈가 있는데, 아마도 여러 번 영화화 및 드라마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소오강호(笑傲江湖)'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스스로 남성성을 제거하고 무림최강 ‘규화보전(葵花寶典)’의 무공을 익혀 ‘흡성대법’의 임아행을 몰아내고 교주가 된 '동방불패(東方不敗)'의 일월신교(日月神敎)와 함께 화산, 숭산, 형산, 항산, 태산의 오악검파(五岳劍派)를 중심으로 하는 명문정파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간다.


주인공 영호충은 술을 좋아하고 세속의 예법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호한이라 할 수 있는데, 그의 스승(군자검 악불군:화산파 장문)에 대한 존경의 마음과 사모하는 여인에 대한 연모의 정은 깊고도 진하였다.  그가 피비린내 나는 과거 전투의 사연이 담겨있는 동굴에서 같은 화산파의 검종(劍宗) 풍청양이라는 선배 고인을 만나 익히게 된 ‘독고구검(獨孤九劍)’은 무공이 그저 그런 중수의 수준이었던 영호충을 단숨에 절세 고수로 만들어 주었으며 (물론 검을 잡았을 때에만),


이 부분은

1)  김용의 소설에서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초절정 검법을 스스로 창안하여 단 한번도 진 적이 없어 자신을 패배하게 만들어 줄 고수를 평생 찾아다니다(求敗) 결국 찾지 못하고 스스로 은거하고 말았다는 선대의 기인 ‘독고구패(獨孤求敗)’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이라는 점,


2) 신조협려의 양과 역시 한 팔을 잘려 외팔이가 된 후에 독고구패의 현철중검을 얻는 기연을 얻어 독고구검을 연마하고 한 차원 위의 절정고수가 된다는 점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고, 작품의 시대 순서상 남송 시대의 신조협려 -> 명나라 시대의 소오강호로 이어지기에 두 등장인물이 같은 선배 고인을 만난 인연과 함께, 양과와 영호충의 독고구검을 비교하는 재미가 솔솔한 점 (각 소설에서 무공에 대한 묘사와 설명의 결이 조금 다름) 등 추가적인 흥미 요소를 많이 느끼게 된다.


이 작품 속에서는 오히려 가장 유명한 중원의 명문정파라 할 수 있는 소림이나 무당, 개방 등의 비중은 미미하게 다뤄지는데, 도곡육선 등 기괴하면서도 유쾌발랄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오며 작품의 전반에 코믹한 요소들이 깔려있어 작가 스스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 밝힌 바 있었다.

김용 선생이 일생의 필력을 다해 마지막 작품으로 탈고한 <녹정기 (鹿鼎記)>는 그동안 그가 보여줘 왔던 소설의 스타일과 상당히 달라서, 발간 당시 이건 그의 작품이 아닐 거라고 하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로 많은 변화를 주었던 작품이었다.  이 소설은 일개 건달이자 일자무식에 게으르기까지 한 평범한 주인공 '위소보'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주인공의 설정에서부터 무협소설의 근간을 비틀어 버리는데, 그가 가장 능한 무공은 바로 '신행백변(神行百變)'이라는 경공술로 바로 도망치는 재간이었다.  변변한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천성으로 위소보를 생존하게 하는 비법은 크게 5가지 절기로 비수, 보의, 거짓말 실력(입담), 신행백변(도망치는 재간)과 함께 늘 그를 구출해 주는 '쌍아'라 여인이었다.  

녹정기는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시대 배경에, 실제로 있었던 명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반청복명(反清復明)을 기치로 내세운  '천지회(天地會)'라는 세력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천지회는 이른바 국성야(國姓爺)라 불린 '정성공'이 대만으로 들어가기 전에 세워진 방회로 총타주(總陀主)로 나오는 '진근남'은 바로 정성공을 섬긴 실존인물인 '진영화'에서 따온 인물이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분쟁, 순치황제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오른 강희제와의 우정 등, 실제의 역사가 스토리 속에 자연스럽게 많이 녹아있는 사실성 높은 역사소설이자, 한 편의 정치소설과도 같다.

 


그런데,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고 인지도가 높았던 작품은 80년대 지금은 없어진 도서출판 고려원에서 판권 없이 번역하여 출간했던 '사조삼부곡(射鵰三部曲)' - 사조영웅전(射鵰英雄傳), 신조협려(神鵰俠侶),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원에서 출간할 당시에는 '영웅문(英雄門)'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사조 3부작의 각 순서대로 '영웅문 1부: 몽고의 별, 영웅문 2부: 영웅의 별, 영웅문 3부: 중원의 별'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었다. ​

 

김용의 소설은 다른 여타의 무협소설과는 달리 주인공을 포함하여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이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들과 함께 정교하게 얽히고설켜, 역사적 사실들이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사조영웅전'에서는 몽고의 칭기즈칸이 등장하며 작품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곽정은 칭기즈칸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다.  '신조협려'에서는 당시 중국에 유행했던 도교의 일파인 전진교가 나오기도 하고, 작품 말미에선 주인공 양과에 의해 몽고(대원제국)의 몽케 칸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마지막 3번째 작품 '의천도룡기'는 '소오강호'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많이 영화 및 드라마화된 작품으로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기도 한데, 여기에서도 역시 실존인물인 무당파의 창시자 장삼봉 진인이 등장하며, 남송의 명장이었던 악비(岳飛)가 자주 언급되고, 원을 멸하고 명나라를 건국하는 주원장(명나라 황제가 되는), 서달, 상우춘 등의 실존인물이 명교의 교도인 것으로 등장한다.

 

의천도룡기에서는 무림의 일파이자 종교이기도 한 '명교(明敎)'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  '명교'는 소오강호에 나왔던 '일월신교(日月神敎)'와 같은 것으로 보면 되는데, 중원의 명문정파들로부터는 '마교(魔敎)' 라 불리며 업신여김과 함께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명교'는 중국에 오랫동안 있었던 종교로 정화(淨化)의 상징인 불을 숭상하여 '배화교(拜火敎)'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이 종교가 바로 페르시아로부터 유래된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인 것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이원론적 일신교로서 아후라 마즈다라는 유일신을 믿고, 선과 악의 싸움, 기독교의 아마겟돈과 같은 세상의 종말론 등 현재 서양의 기독교, 유대교 등 여러 종교의 근원이 되는 종교이다.     

  


사조삼부작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신조협려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양과'와 '소용녀'라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캐릭터가, 그러면서도 공통적으로 당시 세상의 규칙과 예법을 따르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여주는 사회적 일탈에 대한 통쾌함,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사제 간의 사랑이라는 당시로선 엄청난 사회적 금기에 맞서 계속해서 고난을 겪으면서도, 두 사람이 다시 만나 결국에는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결말로 인하여 애잔하고 가슴 아픈 마음의 잔상이 오랫동안 남았던 작품이다.   ​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절절한 사랑'을 상징하는 모티브로 등장하는 설정이 있다.  바로 절정곡(絶情谷)이라는 곳에서만 자라는 신비한 정화(情花)라는 꽃이 나오는데, 이 꽃의 가시에 찔리면 사모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다 결국엔 죽게 되는 무서운 식물로 나온다.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에 못지않게 실연에 사무치고 사랑에 굶주리다 결국 흑화하여 손속에 정을 두지 않고 잔인한 살인을 일삼게 되는 '적련선자 이막수'라는 캐릭터도 작품을 보다 보면 어느 정도 공감도 되고 안쓰러워지는데, 그녀가 정화의 가시덤불 속으로 떨어져 죽어가며 최후의 순간에 나직이 읊조리는 노래가 바로 지금 소개하는 안구사(雁丘詞)란 시이다.     

    ​

그토록 잔인무도 한데도 그녀의 가슴에 맺힌 그 애상에 왜 그리도 가슴이 아리던지..



안구사 (雁丘詞) 시 전문

問人間 情是何物 直敎生死相許

天南地北雙飛客 老翅幾回寒暑

歡樂趣 離別苦 是中更有癡兒女

君應有語 渺萬里層雲 千山幕景 隻影爲誰去

橫汾路 寂寞當年蕭鼓 荒煙依舊平楚

招魂楚些何磋及 山鬼自啼風雨

天也妬 未信與 鶯兒燕子俱黃土

千秋萬古 爲留待騷人 狂歌痛飮 來訪雁丘處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름하느뇨?

천지간을 나는 두 마리 새야!

너희들은 얼마나 많은 여름과 겨울을 함께 맞이했는가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 가운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

임께서 응답해 주셔야지

아득한 만리에 구름 가득하고,

온 산에 저녁눈 내릴 때,

한 마리 외로운 새 누구를 찾아 날아갈지를..

분수의 강물을 가로질러도

다만 피리와 북소리 적막하고

초나라엔 거친 연기만 의구하여라.

초혼가를 불러도 탄식을 금하지 못하겠고

산귀신도 비바람 속에 몰래 흐느끼는구나.

하늘도 질투하는지 더불어 믿지 못할 것을..

꾀꼬리와 제비도 황토에 묻혔네.

천추만고에 어느 시인을 기다려 머물렀다가

취하도록 술 마시고 미친 노래 부르며

기러기 무덤이나 찾아올 것을..

 

雁丘詞 - 元好問 (1190-1257), 邁陂塘 中.

金朝 章宗 泰和 5年 (1205)

 

신조협려 소설의 초입에서 이막수가 이 시를 읊으며 등장하고, 또한 그녀가 최후를 맞이할 때에도 이 시가 등장한다.  삶과 죽음 모두 서로에게 의지하는 간절한 정(情)의 표현이며, 이는 신조협려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이기도 하다. ​

 


덧. 안구사( 雁丘詞 )는 금나라 시인 원호문(元好問, 1190-1257)이 금나라 황제 장종(章宗) 태화(泰和) 5년(1205년)에 사(詞)의 형식으로 지은 시이다.  


당시 그는 병주(幷州)로 과거를 보러 가는 중, 분수(汾水) 가에서 우연히 기러기를 잡는 사람을 만났다. 그가 원호문에게 말하길, "내가 기러기 한 쌍을 잡았는데 한 마리는 죽었고 한 마리는 그물을 피해 요행히 도망을 쳐 살았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기러기는 도무지 멀리 도망가지 않고, 그 주위를 배회하며 슬피 울다가 땅에 머리를 찧고 자살해 버렸답니다." 라고 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한 원호문이 죽은 한 쌍의 기러기를 사서 분수(汾水) 물가에 묻어 주고 돌을 쌓아 표시를 하고는 그곳을 기러기의 무덤이란 뜻으로 『안구(雁丘)』라 칭하였는데, 본인의 시집 '매파당(邁陂塘)'에 이를 기리는 시를 남긴 것이다.



< 해설 >

* 독고구패(獨孤求敗) : 선대의 고수로 별호는 '검마(劍魔)'이며, '홀로 외로이(獨孤) 패배를 구한다'(求敗)는 의미의 별호는 누구도 자신을 패배시킬 수 없어서 패배를 원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의 시대는 독자들의 추측이 난무할 뿐인데, 그가 영웅문 시리즈(사조삼부곡) 시대의 최고수인 ‘천하오절 (동사/서독/남제/북개/중신통)‘들과 접촉한 바가 없다는 점에서, 그들보다는 앞선 시대인 당나라 때의 인물로 보는 것이 중론이고 (실제로 중국 무협작가들의 작품들에서 무림의 최전성기이자 절세고수들이 가장 많았던 시대로 당나라 때가 자주 언급된다), 아니면 오대십국(五代十國) 혹은 그보다 더 늦더라도 북송시대 초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 줄 자를 죽을 때까지 찾지 못했다는 그 전설적인 강함 덕분에 김용 소설의 최강자 논쟁에 숱하게 나오는 인물이기도 하며, <천룡팔부>의 소림사에서 청소하던 무명승과 함께 김용 무협세계관 내 최강의 고수로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 독고구검(獨孤九劍) :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내용이 필요하기에 패스..하려다, 간단히 말하자면 방어 초식이 일절 없는 검술이며 오로지 공격을 통해 적을 압도한다.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강해지는 검법.  독고구검의 검의(劍義)는 선발제인(先發制人)으로, 선발제인은 "먼저 행동하여 남을 제압한다"라는 뜻으로 기선을 제압하여 승리한다는 얘기다.  


이 무공은 양우생(梁羽生), 고룡(古龍)과 함께 신파(新派) 무협 삼대작가의 최고로 꼽히는 김용(金庸) 작품의 대표 무공 중 하나로, 구파(舊派) 무협의 대표작가인 이수민(李壽民)의 대표작 촉산검협전(蜀山劍俠傳) 같은 작품에 나오는 보검과 이기, 영물, 신선 같은 동양의 SF 내지 환타지적인 무공들을 제외하면 가히 최상급의 무공이라 할 수 있다.


현철중검을 사용하는 양과의 독고구검중검무봉 대교불공(重劍無鋒 大巧不工) - 중검은 검이면서도 날이 없고, 이와 같이 현묘한 기교로움은 공교롭지 않다는 뜻으로 노자 도덕경의 구절을 인용한 사상이라면,

영호충의 그것은 무초파유초(無招破有招) 혹은 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가 핵심요결이다 (초식이 없는 초식으로 초식이 있는 초식을 파하고 이긴다 는 의미).  초식이 없다는 것은 격식이 없고 임의대로 행동한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영호충이 검을 아무렇게나 휘두르거나 초식상으로는 나올 수 없는 동작들을 한 것들을 초식과 연결한 것을 의미한다. 즉, 격식이 없고 형식이 없기 때문에 기존의 초식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초식이 창조된다. 그러함으로써 그 상황에서만큼은 적에게 파해되지 않는 새로운 초식이 되는 것이다.  풍청양이 영호충에게 독고구검을 가르칠 때 기존 화산파의 검식을 비롯한 모든 검식을 잊을 것을 주문했었다.


이는 또한 의천도룡기에서 무당파의 장문인 장삼봉 진인이 조민의 급습으로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자신이 얼마 전 스스로 창안한 무공인 태극권과 태극검을 제자인 무당칠협들의 무공 수준이 떨어져 전수를 못하고 있다가, 시동으로 위장해 있던 장무기에게 신나서 가르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때 장삼봉 진인도 초식을 한번 시연하고 나서 잠시 동안 시간을 주고 기다리다 ‘이제 다 잊었느냐’ 하고 묻는다.


* 구파/신파무협 : 1950년 중국에 불어닥친 문예정책의 변화로 중국 대륙에서 무협소설은 이후 30년간 완전히 사라지고 홍콩, 대만 작가들이 그 뒤를 잇게 되는데 이들을 일컬어 신파(新派) 무협작가라 한다. 김용 역시 홍콩의 유력지 ‘명보’의 사장이며 주필이자 신무협의 대가였다.


* 김용(金庸) : 중화권의 무협소설 작가이자 홍콩의 명보(明報)를 창간한 언론인이다.  무협이라는 장르가 대중성을 넘어 작품성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도록 크게 기여한 인물.  김용을 부르는 호칭으로는 대협(大俠) 또는 신필(神筆)이 있으며, 막대한 업적과 영향력으로 인해 동서고금공전절후(東西古今空前絶後)의 작가로 불렸다.  또한 중국의 셰익스피어, 중국 문학의 톨킨 등으로도 불린다.  김용의 작품은 김용이 사망한 지 오래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드라마, 영화 등으로 각색되고 있다.  


이 부분에 있어 사견을 얘기하자면, 김용 선생님을 너무 존경하고 좋아하지만 중국에서 특정 작가의 작품에 대한 대중문화 소비에의 의존도가 이렇게 높다는 것은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그리 건강한 상태는 아니라고 본다.

또한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로는 수천년을 이어온 전통의 문화예술, 도서를 포함해 수많은 작품을 훼손하고 없애버렸던 문화대혁명-마오쩌둥을 원흉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 있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준 역사의 죄인..


어리디 어린 홍위병들에게 막대한 권한을 주고 광신적으로 만들어 조종한 것도 용서할 수 없지만, 그 당시 문화재를 파괴하고 약탈한 것은 주로 보황파 홍위병이 저지른 것으로 문화대혁명 이후에는 이들이 기득권 집단으로 복귀하여 현재 중국 공산당의 권력을 나눠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분노를 느낀다.  일제 해방 이후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 신세로 뭐 크게 말할 것도 아니겠다만 말이다.


- 권력자인 부모로부터 좋은 출신성분을 세습받은 소수의 홍위병 집단을  보황파(保皇派) 홍위병이라 한다.  반면 권력자들에게 혁명의 대상으로서 핍박받아온 다수의 홍위병은 조반파(造叛派) 홍위병이라 한다.  이들은 서로 적대했으며 매우 다른 행보를 보였다.  권력자를 공격한 것은 주로 당 간부에게 핍박을 받아왔던 조반파 홍위병이 저지른 것으로 이들은 문화대혁명 이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채 하방되어 대부분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老子英雄兒好漢、老子反動兒混蛋

부모가 영웅이면 자식도 호걸이고, 부모가 반동이면 자식도 개차반이다

- 보황파(保皇派) 홍위병의 대표적 선동 표어


革命無罪、造反有理

혁명에는 죄없고, 반란에는 이유있다(혁명무죄 조반유리)

- 조반파(造叛派) 홍위병의 대표적 선동 표어


* 천하오절(天下五絶) : 사조영웅전 이전에 무학비급 구음진경을 놓고 화산논검을 벌였던 다섯 명의 초절정 고수들로, 사조영웅전 마지막에서 2차 화산논검이 열리지만 인원수에는 변동이 없었고, 신조협려 마지막에서 결원을 채워 넣으며 새로운 천하오절이 탄생한다.


1차 화산논검: 원조 천하오절

중신통 왕중양, 동사 황약사, 남제 단지흥, 서독 구양봉, 북개 홍칠공


2차 화산논검: 새로운 천하오절

중완동 주백통, 동사 황약사, 남승 일등대사, 서광 양과, 북협 곽정


이들 중에서 전진교의 교주 왕중양과 그를 도왔던 주백통, 운남 대리국의 황제였다가 나중에 출가하여 일등대사가 된 단지흥만 실존인물이며 나머지는 모두 가공의 인물이다.


보통 천하오절을 기준으로 각 작품들에 나오는 무림고수들의 고하를 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적으로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무명승, 소봉, 허죽, 소원산, 모용박, 구마지, 천산동모, 이추수 등과 사조삼부곡이나 소오강호에 나오는 황상(구음진경 창시자), 독고구패, 동방불패 같은 절세고수들을 천하오절보다 윗줄로 보고, 후대의 장삼봉 진인과 장무기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하는 편이다


* 생각난 김에 김용 소설에 나오는 일류, 혹은 초절정 무공(비급)을 떠오르는 대로 나열해 본다.  등장인물들 중 누가 가장 강한가, 어떤 무공이 최고인가 하는 토론과 논쟁은 이미 숱하게 열혈 독자층들 사이에서 있어 왔고, 김용 본인도 여러 인터뷰에서 부분적으로 언급한 바 있으니 참고하시라.


일양지, 육맥신검(대리 단씨), 탄지신통(황약사), 합마공(구양봉: 영화 쿵푸허슬에서 최종빌런인 화운사신 역의 양소룡이 돼지촌에서 주인공 싱-주성치와의 최종 대결에서 두꺼비가 엎드리듯 자세를 잡았다가 공격하는 무공으로 오마주 됨), 쌍수호박(주백통/곽정), 타구봉법, 항룡십팔장 (개방), 규화보전 (명 황실의 환관이 창시: 그래서 남성성을 제거해야만 익힐 수 있는 무공으로 나오며, 영화 동방불패에서 당시 중성적 매력을 뽐내던 ‘임청하’가 그 역으로 캐스팅된 이유이다), 구음진경, 구양진경, 건곤대나이, 정반양의검법, (사조삼부곡), 북명신공(무애자), 생사부, 팔황육합유아독존공(천산동모), 소무상공(이추수), 두전성이(고소 모용씨), 달마역근경, 금강불괴, 소림 72절기 (소림파)“


* 신행백변(神行百變) : 철검문(鐵劍門)의 대표적 절기이자, 벽혈검-녹정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경신술로 전승자로는 목상도인, 원승지, 구난사태, 옥진자, 위소보가 있다. 이 중 목상도인이 원승지와 구난사태에게 신행백변을 전수했으며, 구난사태는 위소보의 성격을 짐작하여 특별히 신행백변을 전수하였다. 다른 시전자들보다 위소보와 궁합이 너무 잘 맞는 경공이다. 위소보가 무공이 없음에도 천지회부터 홍안통, 귀종, 풍석범 같은 당대 최고수들의 공격을 신행백변 하나만으로 위기를 자주 모면했다.  신행백변은 소설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소요파의 비전(祕傳) 경공술이자 내공심법으로 단예가 구사하던 능파미보(凌波微步)를 떠올리게 한다.

* 명말청초(明末淸初) :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한 1618년부터 명나라가 멸망한 1644년, 또는 남명이 멸망한 1662년까지,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패권다툼 시기를 이르는 말이다. 직후에 벌어졌던 삼 번의 난과 동녕 왕국(명정시기) 등 한족의 대청 반란을 포함하여 1681년 또는 1683년까지로 보기도 하며 명청교체기(明淸交替期)로 부르기도 한다.

* 오악검파(五岳劍派) : 동악 태산파(泰山派), 서악 화산파(華山派), 남악 형산파(衡山派), 북악 항산파(恒山派), 중악 숭산파(嵩山派)


* 무목유서(武穆遺書) : 김용의 소설 '사조삼부작'에 걸쳐 등장하는 가공의 비급 병서이다.  작중 설정에 따르면 남송의 명장 악비 장군이 자기가 써온 시와 서찰, 상소, 죽으면서 유서로 남긴 병서를 묶은 서적이다.  악비는 후인이 이 책을 보고 금나라를 깨부수길 기대하며 책 이름을 '금나라를 부수는 방법'이란 뜻으로 <파금요결(破金要訣)>이라 지었지만, 작중에서는 다들 '무목유서'라고 부른다.  여기서 무목(武穆)이란 1178년 송의 효종이 악비에게 내린 시호이다.  무목유서란 '악비가 남긴 책'이라는 뜻으로 부르는 존칭인 것이다.

*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 중동의 박트리아 지방에서 자라투스트라(Zaraϑuštra, 조로아스터)가 세운 종교라고 알려져 있다. '조로아스터교'라는 이름은 창시자인 자라투스트라에게서 유래한다. 본래 이름은 아베스타어로 '자라수슈트라(Zaraϑuštra)'인데, 이게 그리스에서 전사라는 뜻의 '조로아스트레스(Ζωροάστρης, Zōroastrēs)'가 되었고, 그것이 라틴어를 거쳐 영어로 '조로아스터(Zoroaster)'가 되었다. 창시 시기와 자라투스트라의 생존 연대에 대해서는 기원전 2,000년에서 기원전 550년경 등으로 의견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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