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밝지 않은 네 얼굴
망각의 강 레테를 지나온 듯 망연한 그 눈에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천산 너머 파미르 고원에 올라선 이의 표정이 이러할까
나조차 모르는 살아가는 이유를
너에게 무슨 염치로 뭐라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니
나뭇잎 위에 흐르는 한 방울의 물에도
가습기의 아스라한 수증기 분자 하나하나에도
방 안을 쓸어 담는 먼지 한점 한 점에도
후회만이 가득 차 네 머릿속을 헤집고
네 가슴을 무겁게 짓누를지라도
너도 알고 있었잖니
그래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도망가지 마
함께 가자 이젠
계속계속 멍청하게 살더라도 나조차
네가 되고 싶은 게 되렴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렴 천천히
쓰러져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 우리
너에게 난 전부가 되고 싶지만 이제는 내려놓아
새들도 가끔은 날개를 쉬는 것처럼
실패로 거듭된 지난날 휴식의 시간이었던 걸로 하자
여전히 넌 소중한 사람
더러운 세상도 기적은 가끔 일어나
날개를 펴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도록 이제
내가 돌봐줄게 내가 지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