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27] 내가 손으로 쥐는 어떤 그런 현장감
D-427. Sentence
내가 손으로 쥐는 어떤 그런 현장감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이렇게까지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들 줄은 몰랐다. 지난주는 작년 9월부터 7개월 동안 준비해온 리트릿을 실제로 진행한 시간이었다. 수요일부터 삼척에 내려가 정신없이 일정을 이어갔고, 토요일 밤늦게서야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맞이한 월요일. 오전 10시 반에 분당 진흥원 미팅이 잡혀 있었기에 엄마가 없는 동안 흐트러진 두 아들을 어떻게든 챙겨 등교를 시키고 바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새절역에서 야탑역까지는 생각보다 더 길었고,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이동 속에서 부족한 잠을 채울 틈도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결국 거의 두 시간 전에 출발했지만 회의실 문을 연 시간은 약속보다 5분 늦은 10시 35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명함을 건네고, 이야기를 듣고, 적고, 다시 듣고 적는 반복 속에서 미팅을 마무리했다.
미팅이 끝난 뒤 대표님과 야탑역 앞 팀홀튼에 앉아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업무 이야기인지, 그냥 이어지는 대화인지 모를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동네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4시를 넘기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처음으로 진행했던 리트릿의 평가회의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부랴부랴 평가자료를 정리하고, 리트릿을 운영하며 해야 했던 업무 리스트를 다시 써 내려가고, 아카이빙해야 할 자료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목록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를 다시 정리하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불광천을 따라 걸어오는데 아직 떨어지지 않은 벚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문득 작년 9월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상상으로만 그려봤던 장면이었는데, 지난주에는 그것이 실제로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상상하던 시간과 준비하던 시간, 그리고 실제로 진행했던 시간은 서로 닮아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충분히 설계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고, 계획에는 없던 구멍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하지만 그 구멍들은 실패라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직접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걸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일이 단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는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돌아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고, 다시 이어질 시간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각자가 맡았던 역할 속에서 발견한 부족함과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그냥 덮어두는 것은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물론 불편하다. 평가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언제나 그렇다. 각자가 놓쳤던 부분, 예상하지 못했던 실수, 혹은 서로 다른 기준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이 드러나는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긴장이 흐른다. 그 불편한 눈빛과 공기를 마주하는 것이 싫어서 도망가고 싶어지는 마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간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불편함 속에야말로 내가 이번 리트릿에서 가장 값지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현장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준다. 아무리 많은 자료를 보고, 아무리 정교하게 기획을 한다고 해도, 실제 사람과 공간과 시간이 동시에 맞물리는 그 순간에서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아무리 온라인이 익숙해진 시대라고 해도, 대체할 수 없는 오프라인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낀다. 눈앞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표정, 예상과 다르게 흐르는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순간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판단들. 그런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감각은, 화면 너머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나도 모르게 “하루만 쉬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몸은 분명히 지쳐 있었고, 눈은 저절로 감기고 있었지만, 동시에 내일 해야 할 일들도 또렷하게 떠올랐다. 자문자료를 전달해야 하고, 원주에서 수업도 있다.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각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어떤 일을 하고 있든, 그 순간과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이 ‘현장감’이라는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이제 곧 시작될 리트릿 평가회의를,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마주해보려 한다. 여전히 나는 소심하고, 여전히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아줌마지만, 이번만큼은 그 자리에 조금 더 대범하게 서보고 싶다. 현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내 안의 한 줄
현장은, 겪어낸 사람에게만 남는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