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26] 기세(氣勢)의 힘
D-426. Sentence
기세(氣勢)의 힘
기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보다 기세라는 말이 요즘 따라 유독 마음에 남는다. 그동안 나는 결과물 중심의 일을 해왔고,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를 증명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완성된 디자인, 정리된 결과물,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형태의 것들 속에서는 비교적 안정감을 느끼며 일을 해왔다. 그런데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다르다. 결과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설명해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멈칫하게 된다.
기획과 전략이라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설득하는 일이다. 근거를 만들고, 논리를 쌓고, 자료 속으로 깊이 들어가 인사이트를 끌어올려야 비로소 한 방향을 제안할 수 있다. 그렇게 쌓아올린 것 위에서야 내 생각을 힘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과정 자체보다, 그 과정에 들어가기 전부터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경험이 부족한 것 같고, 지식이 부족한 것 같고, 무엇보다 아직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계속 나를 작게 만든다. 작년부터 로컬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시범사업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고, 그 사업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기회를 제안받았다. 청년 한 달 살기. 제안서를 쓰고, 선정되었고, 이제 첫 회의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면 정해진 것은 거의 없다. 예산도, 용역 범위도, 구체적인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방향을 만들어야 하고, 그 방향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회의자료를 만들면서 몇 번이나 멈춰섰다. 이게 맞는 방향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쓰고 있는 것인지, 괜히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계속 검열하게 된다. 고치고 또 고치고, 문장을 바꾸고 흐름을 바꾸면서 점점 더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이미 로컬사업을 경험하고 있는 한 청년대표가 했던 말. 지금 주어진 기회가 얼마나 기적인지 잊지 말라는 것, 안 되는 건 없고 닥치면 굴러가게 되어 있다는 것, 내일의 일은 미래의 내가 책임지는 것이니 일단 하라는 말. 그 말이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 중 처음부터 익숙했던 일은 하나도 없었다. 늘 처음이었고, 늘 서툴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해냈다. 그렇다면 이번 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직 해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세차게 뻗어나가는거다. 그럼 되는거다.
내 안의 한 줄
기세는 준비가 끝난 뒤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하는 순간 만들어진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