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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사건] 1917년 10월 15일

마타하리, 간첩으로 처형당하다

by 나그네 Oct 15. 2024

본명은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으나 그녀의 아버지가 파산하는 바람에 삶이 궁핍해졌다. 그러던 때에 군대 대위가 낸 배우자 광고에 응해 그와 결혼하고 인도네시아 자바로 가서 살게 된다. 그러다가 1902년 26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프랑스 파리에 나타난다. 그녀는 풍만한 금발 미녀가 아니라, 키가 크고 몸매가 가냘프고 피부색이 어두워서 동양 미녀의 모습에 가까웠으며, 자바에서의 경험과 관능적인 춤을 이용해 마타 하리라는 이름으로 거의 옷을 입지 않은 채 '동양적인' 춤을 춤으로써 출세의 길을 개척했다. 그녀는 독일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프랑스어와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국제적인 매춘부였다. 


젤러는 군복에서 느껴지는 성적 매력에 약했다. 그녀의 기본적인 생활 방식은, 무엇이든 남성이 요구하는 일을 해줌으로써 불확실하지만 상류생활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1914년 7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 베를린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매춘과 댄서를 겸하고 있었지만 그녀와 애인 관계를 유지한 남성들 중에는 해군 장교와 육군 장교, 그리고 베를린의 경찰서장이 있었다. 이로인해 정부기관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되고 마타하리는 고향이면서 중립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반데어 카펠렌 남작의 경제적인 후원을 받았지만 화려한 독일, 프랑스에 비해서 네덜란드는 심심하고 지루하고 따분하기 그지 없었다. 


이때에 독일 영사 크라머가 그녀에게 접근했고, 그녀는 프랑스 돈 2만 프랑을 조건으로 프랑스의 군사 기밀을 알아 오라고 제의를 하고, 마타하리는 이를 수락한다. 그녀는 영국을 경유하려했는데 그곳에서 스파이 혐의로 붙잡혔지만 아무런 혐의가 없어서 풀어주게 되고, 그녀는 프랑스에 도착한다. 


파리 정보원의 라두아 국장은 마타하리가 프랑스 첩보를 캐내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고 도리어 그녀에게 스파이 활동을 제안한다. 즉, 독일의 첩보원을 프랑스의 첩보원으로 삼는 이중간첩 제안이었다. 여기에 마타하리는 긍정적인 의사를 표하고 대신 100만 프랑을 요구한다. 


이중간첩을 제안하긴 했지만 일개 첩보원에게 주기에는 너무 많은, 아니 말도 안되는 금액적 조건이라 판단한 프랑스 정부는 1917년 2월 13일 마타하리를 체포하여 6월 21일까ᆞ지 생 라자르 교도소에 수감시켰으며, 7월 24-25일 재판을 거치면서 8가지 간첩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고 총살형을 선고한다. 그리고, 10월 15일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마타하리는 재판에서 주구장천 주장한 내용은 자신은 독일로부터 스파이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즉, 이중간첩이 아니며 자신이 재판정에 서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죄라면 프랑스 첩보원 제의에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안한 것만 시인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를 부인하고 마타하리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면서 독일의 프랑스내 스파이 혐의를 공개적으로 알림으로 인해서 반독일 정서로써 프랑스 국민의 힘을 하나로 합하는데 큰 성공을 한 셈이다. 


세상 잘 된 일에는 남자가 우선시 된다. 나라를 건국하고, 전쟁에 승리하고, 나라의 번영과 영광은 모든 남자들이 우선순위로 취득한다. 그러나, 나라의 멸망, 전쟁의 패배 등의 이유에는 남자가 잘못이 아니라 여자에게 그 원인을 떠넘긴다. 이는 동서양의 역사를 막론하고 그러하다. 동탁의 멸망은 초선이며, 당나라 멸망은 양귀비이며, 대한제국의 멸망은 명성황후에게 있다고 덮어씌우듯이 프랑스는 국민 통합의 힘을 모으기 위해서 마타하리라는 여성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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