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비리, 짧지만 강렬했던 고3 기억

by 시크매력젤리


고 3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 재단 비리가 밝혀지면서 수업 거부와 등교거부를 하게 됐다.

학생과 선생님들이 함께 단체 행동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난리 통에 학교는 교문을 닫게 되었다.


고 3학년이었고 몇 달 후엔 졸업인데 강제로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서너 달이 지나고 다시 등교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그동안 뿔뿔이 흩어졌던 학생들은 돈을 벌러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간 뒤였다.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해 1, 2학년은 유급 상태가 되었고 돈을 벌러 간 친구들은 학교로 돌아오지 못해 퇴학 처리가 된 경우도 많았다. 재단 비리 밝히기에 동참했던 선생님들도 해고되었다.

결국 피해를 입은 건 옳은 소리를 했던 선생님과 학생이었다.


그 시절 학교에 갈 수 없으니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인천에 있는 친구집에 갔다.

인천에 도착해서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취직했다.

친구들이 3,4명 정도 있었는데 학교를 다녀야 하는 나이인데도 학교를 가지 않는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

몰려다니며 공장에 갔다가 힘이 들면 며칠 못 다니고 그만 두기를 반복했다.


내 기억으로는 3명 다 중학교도 졸업 못한 아이들이었다.

한 명은 미성년자인데도 누가 봐도 어른스러운 외모로 밤업소에 나가 일을 했다.

깡마르고 키가 큰 동갑내기 친구도 있었고, 나이가 나보다 3살 정도 어린 친구도 있었다.

깡마른 친구는 손목에 칼자국 나게 긁어 피를 내며 자해하는 아이였다.

술, 담배, 본드까지 흡입하는 아이들이었다.

검정 비닐봉지에 본드를 짜서 입가에 가져다 대고 들숨 날숨을 했다.

그렇게 하고 나면 거울에 서서 마주 선 자신과 알 수 없는 말들을 뱉어내곤 했었다.

횡설수설 술에 취한 것보다 더 심각한 모습들을 보였 줬다. 그걸 본 나는 왜 그러냐고 껄껄 웃었다.

본드 흡입을 같이 하자고 권해도 하지 않았다.

멋 모르고 철없던 시절 다행히도 옳고 그름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운 좋게 보육원 선생님이 직접 데리려 와서 고등학교 졸업은 할 수 있었다.

그 후론 몇 달을 함께 지냈던 친구들과는 영영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어렸지만 사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 부모가 있는 집을 떠나 스스로를 책임지려 했던 그 어린 날들을 잠깐동안 함께 했던 아이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요즘은 학교 밖 청소년들이 더 늘어난 걸로 알고 있다.

학교에 적응 안 되니 부모들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친구 딸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적응 못해서 고 1학년 때 자퇴를 했다.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지금은 공부해서 검정고시도 보고 내년엔 대학 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부모 된 입장으로 자녀가 학교를 자퇴한다면 걱정부터 앞서게 된다. 나라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 딸을 보면서 걱정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딸을 보면서 건강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에 책임을 지려는 모습이 더 의젓하게 보였다.

그런 딸을 보면서 친구는 자식 걱정을 놓을 순 없는 것처럼 보였다.

부모란 자식을 걱정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학교 밖 청소년에게 비행청소년이라는 오명을 씌운다.

사회가 변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 한 상처받는 아이들은 많아진다.

좀 더 어른답게 사회 일원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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