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착각이었다.
하나님을 믿으면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잘 성장하리라 믿었었다.
이십여 년 동안 참 열심히도 교회를 다녔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게 순조롭기만 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둘째 아이는 중학생 때부터 술과 담배를 했다. 그걸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술과 담배가 잘 못 됐다는 게 아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될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학생의 본분을 잊은 걸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했다.
"아휴, 착하게 잘 자랐네. 성실하고 부모 속 썩이지도 않고 자기 일은 알아서 척척해내니. 자식은 잘 키웠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아이는 속이 썩어서 썩은 내가 진동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울증 약을 먹고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아이.
집에 있으면 불안하고 우울하다면서 허구한 날 집 밖으로 나간다.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이 아빠는 그런 딸이 못마땅했다. 아예 얼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화는 단절되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고 했을 땐 걱정이 됐다. 아이가 어떻게 되지는 않을까 나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했다. 성 정체성에서는 또 한 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는 아예 자식의 기대감 따위는 일찌감치 버렸다.
부모가 서운해봤자 성인이 된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참견한다고 불만일 것이다. 이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할 나이가 올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알아서 개척해야 할 나이다. 품 안의 자식이라 하지 않던가. 부모의 기대와는 반대로 간다고 질책해도 아무런 소용없다. 서운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뿐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당당하게 날개를 쫙 펴고 날아가게끔 지켜보는 방법밖엔 없다.
그저 자신이 선택한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무사히 그 모든 걸 헤쳐나가기만을 응원할 수밖에.
부모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딸은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