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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이 필요한 거리>

계산 오류

by 윤그린

늦은 오후, 말없이 카페에 마주 앉아 손을 붙잡다.

마침내 내 눈동자 너머부터 파내는 듯한 눈 바라봤을 때 그 공간에는 분명 한 얼굴만 존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시선이 웃음과 함께 저마다 다른 곳으로 흩어진다.

너는 금세 어떤 생각에 잠기고, 나는 그 모습을 찍기 위해 몰래 핸드폰을 든다.

줌을 해야지 하고 카메라 앱을 켜면 이미 화면이 너의 얼굴을 다 담지 못한다.

결국 광각렌즈가 내 손이 나오지 않는 프레임 끄트머리까지 너 팔을 잔뜩 늘려둔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 오늘 하루가 필름처럼 돌아간다.

나는 왜 탁자 하나 거리에 망원렌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가.

멍청한 착각에 변명을 찾으려 머릿속을 뒤지다가 갑자기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가까이서 바라볼 때, 멀리 보는 것처럼 본다고 했다.

이해하지 못하던 문장을 써먹곤 웃음이 새어 나온다.

덜컹거리는 스를 따라 머리가 창문 위에서 몇 차례 연달아 통통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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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이 필요한 거리>

윤그린 :: 그날의 여운

2025년 01월 5일 (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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