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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다

아무튼, 머리카락

by 김진오 Mar 05. 2025

인류가 애초부터 머리카락 없이 태어났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누구도 머리를 빗을 필요가 없고, 미용실이 존재하지 않으며, 샴푸와 컨디셔너 대신 두피 케어 제품만이 있을 것이다. ‘대머리’라는 단어 자체가 필요하지 않으며, 탈모라는 개념도 사라진다.

거울을 본다. 거기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지만, 이마와 정수리는 완전히 매끄럽다. 이마가 넓다거나, M자형 헤어라인이 고민될 일도 없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머리카락이 없으니,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패션의 중심도 변했을 것이다. 우리는 헤어스타일이 아닌, 두피 문양이나 독특한 광택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개성을 드러낸다. ‘스컬 스타일’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여, 사람들은 다양한 두피 문신이나 색채로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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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모발 이식이 아니라 두피 문신이 성행하고, 두피의 윤기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전용 크림이 대중화되었을 것이다. 미용 산업의 방향이 바뀌면서, 우리는 ‘자연스러운 매끈함’을 유지하는 것이 미의 기준이 되었을 것 같다. 영화 속 히어로들도 풍성한 머리칼 대신 매끄러운 두피를 반짝이며 등장할 것이다. 슈퍼맨이 초강력 태양 반사력을 가진 두피를 무기로 활용하거나, 탐정들이 범인의 두피 패턴을 단서로 추적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 

기후 변화에 따른 대처 방식도 달라졌을 것이다. 비 오는 날 우리는 우산을 쓰지만, 머리카락이 없는 세상에서는 방수 크림이 우산을 대신한다. 여름철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선글라스 대신 ‘두피 보호 모자’를 착용하며, ‘자외선 반사율이 뛰어난 두피 전용 로션’ 같은 제품들이 인기다. 미용실 대신 ‘두피 스파’가 유행한다. 

모든 것이 편리하기만 했을까? 사람들은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두피에 문신을 새기거나, ‘스컬프 케어(Scalp Care)’ 제품을 사용하여 나만의 독특한 윤기를 강조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가발이 지금의 ‘머리카락’처럼 중요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이 가발이 나한테 어울릴까?”라는 질문이 “이 헤어스타일이 어울릴까?”만큼 자연스러운 대화가 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두피 패션이 등장하면서, 특정한 광택이나 패턴이 신분과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기준이 되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정장이나 헤어스타일을 통해 사회적 이미지를 표현하듯, 머리카락이 없는 세계에서는 반짝임과 패턴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표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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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도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지금 머리카락과 관련된 치료를 연구하고 있지만, 이 세상에서는 ‘탈모 치료’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 없어진다. 대신, 두피를 더 건강하고 매끈하게 만드는 기술이 각광받고, ‘이마 광택 유지 시술’ 같은 것들이 개발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두피 탄력 강화 주사가 존재했을 수도 있다. 마치 우리가 지금 피부 탄력 유지를 위해 보톡스를 맞는 것처럼, 사람들은 매끄러운 두피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시술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심리적인 부분도 변화했을 것이다. 머리카락이 없는 것이 기본이라면, 외모를 판단하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은 머리숱이 많은 사람이 동안으로 보이고, 탈모가 진행된 사람이 나이 들어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머리카락이 없는 세상에서는 ‘두피 윤기’나 ‘두피 탄력’이 젊음의 기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너 요즘 두피 관리 어떻게 해?”라는 질문을 하며, 마치 지금 우리가 헤어스타일을 고민하는 것처럼 두피 스타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머리카락이 없는 세상이든, 지금의 세상이든 본질은 같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자신을 가꾸려 한다.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한 존재다.

이제 다시 거울을 본다. 머리카락이 있는 나와, 없는 나.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하는 상상 속에서, 나는 한 가지 확신이 든다. 머리카락이 있든 없든,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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