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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왜 여기 언니가 있지?

늙은 남자와 여자의 집, 기억의 저편

by 명랑 숙영

멀리서 차 소리가 들리고 집 주변을 떠도는 냥이가 구슬프게 울었다. 아빠는 몸이 눌린 채 이불도 덮지 않고 ‘드르릉’ 거리며 잤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하고 귀를 쫑긋 세워 그쪽을 살폈다. 아빠 콧구멍으로 들어간 공기가 목 안 어딘가에 걸렸다가 터져 나왔다. 숨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해서 이상했다. 이젠 그 소리가 안 들리면 아빠를 유심히 살피게 된다.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기운이 스며 나올 때쯤 아빠가 일어났다.

“자두야, 할머니 집에 가자.”

아빠가 뒷좌석 문을 열고 나를 태웠다. 희미하게 엄마 냄새가 났다. 엄마는 항상 나를 안고 뒷자리에 앉았다. 창문을 내려줘서 콧바람도 쐬고 무릎 위에서 바깥 구경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없다. 왜 없는지, 왜 아빠 하고만 사는지 사람의 일을 난 알 수 없다.

차가 달리자 서둘러 아빠 옆 좌석으로 건너갔다. 문을 두 발로 긁으니 아빠가 창문을 조금 내려주었다. 차갑고 거센 바람이 들이닥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아빠와 어디로 가는 걸까.


차멀미를 할 때쯤 아빠가 차에서 내려주었다. 사방에 내가 타고 온 것들이 빼곡히 세워져 있었다. 아빠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 올라갔다. 아빠는 우리 집도 아닌데 비밀번호를 누르더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입구에서 늙은 여자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 여자는 내 이름을 부르며 머리에 손을 대려고 했다. 으르렁거리며 경고했는데도 만지려 했다. 난 울대를 열어젖히고 ‘컹컹’ 큰소리로 짖었다. 늙은 여자는 당황하며 손을 거두고 물러나며 나무랐다.

“자두야, 짖으면 안 돼! 여긴 내 집이야.”

아빠는 한 손으로 내 주둥이를 꽉 쥐고 '안돼'라고 했다. 주둥이를 옴싹달싹할 수 없었고 아빠가 무서워 짖기를 멈췄다. 엄마나 아빠는 내가 심하게 짖을 때 이렇게 했다. 그러면 난 어쩔도리없이 차분해졌다.


거실 소파에 늙은 남자가 TV를 보고 있었다. 아빠보다 키가 작고 살집이 통통하고 배 둘레가 풍만했다. 아빠가 옆에 앉았지만 서로 별 말이 없었다.

집안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살펴보니 언젠가 한 번 와 본 곳 같았다.

내가 어렸을 때였던가. 늙은 남자가 오줌 쌌다고 막대기로 위협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래서 늙은 여자보다 경계했나 보다. 그때 늙은 여자는 짜고 향이 강한 두툼한 고기를 몇 점 주어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안쪽 어딘가에서 언니들 냄새가 났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안방 문을 코끝으로 살며시 밀고 들어가 보았다. 큰 언니와 작은 언니가 침대 위에서 몸을 엎치락뒤치락하며 자고 있었다. 놀랍고 반가워서 아빠코를 닮은 큰 언니 코를 사정없이 핥았다. 큰 언니는 그러든가 말든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 자두 왔구나.

작은 언니는 반쯤 감긴 눈으로 중얼대더니 금세 잠 속으로 빠졌다. 언니들 곁에 있고 싶어 침대 밑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눈을 붙였다.


그런데..

2025년 7월 14일 늙은 여자, 그러니까 언니들의 할머니가...

하늘나라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큰언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언니들이 상심이 크다. 그래서 걱정이 많이 된다. 무지개다리 건너 그 어딘가에 하늘나라고 있다고 하던데. 부디 그곳에서 행복하시길...


그때 주셨던 그 고기 정말 맛났어요.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감사했습니다.

제가 있으니 언니들 걱정은 마시고 편히 쉬세요.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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