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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래 Jul 12. 2024

14. 총 맞은 것처럼

장편 현장소설 《카페 가는 길》

14. 총 맞은 것처럼



  한주는 연이어 사흘 동안 한 사람도 없었고, 그다음 주도 3일은 종일 나 홀로 앉아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에 단 두 잔을 판 적도 여러 날이었다. 공부를 못 하는 학생이 등교하기 싫어하는 것처럼, 나는 점점 아침에 이불을 걷고 일어나기 싫어졌다. 순간순간의 두려움과 걱정에 싸여 매장에 와서 쌓아 놓은 땔감을 담으러 화장실 옆으로 돌아가다가 나는 걷는 감각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 체중이 실려서 땅바닥을 확실히 디디는 것 같지 않았고 다리가 흔들리며 약간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 누가 조금만 나를 건드리면 바로 넘어져 버릴 것 같았다. 앉아있을 때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한 증상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기억력도 떨어졌다. 집의 가스 밸브를 잠갔는지(방금 나섰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 확인했다.), 변기 물을 내리고 나왔는지, 주유소에서 차 주유구 마개를 막았는지(출발했다가 차를 세우고 내려서 보았다.), 거기서 체크카드를 다시 빼 왔는지(운전하면서 지갑을 꺼내 꽂혀있는지 살펴야 했다.), 집으로 가면서는 문을 다 걸었는지, 튜브 히터의 플러그는 뽑았는지(그럴 때는 차를 돌렸다.), 내릴 때 차 문을 잠갔는지, 차창을 내려놓은 것은 아닌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매장에 오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증상이 유독 두드러졌다. 나는 마당에 내려서서 땅에 쿵쿵 발을 굴러서 그러한 증세를 없애려 해 보았다. 나는 소설을 쓸 수 있기는커녕그러려고 들어왔는데책이라도 붙잡고 화목 난롯가에 앉아있어도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매장은 천장이 높아서 훈기가 내려오는 데 몇 시간씩 걸렸다. 기본 온도는 깔아 놓아야 하기에 계속 돌려야 하는 튜브 히터의 네 칸 연료 잔량 표시등에서 한 칸만 달랑 남았을 때는 그날 장사가 안된다면 당장 기름값부터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해서 초조하기만 했다. 난방 효율을 올릴 공기 순환기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조그만 것이 2만 6000 원쯤 했는데, 나는 그 정도 돈도 따로 준비할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도 못 자른 지 몇 달 되어 귀밑으로, 목뒤로 보기 싫게 뻗어내렸다. 그런 것은 관계없었다. 누가 머리만 쳐다보는가. 

  화목 난로의 연통을 처음 설치할 때부터 보이지는 않는데 실같은 틈이 있는 것 같았다. 집에서 입고 온 코트에 자꾸 연기 냄새가 배는 뒤로는 매장에서는 겨울에 승마장에서 일할 때 입던 양털 안감 청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내가 그 옷이 부러웠던 청소년기의 겨울철에는 있는 집 자식들이나 입는 것이려니 했었다. 승마장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나는 적어도 수십만 원이나 하는 승마용 겨울 코트를 입을 형편이 아니었고, 인터넷에서 3만 원쯤 주고 젊었을 때 선망했던 그 구제 옷을 기어이 구했는데, 말 위에 앉기에도 길이가 딱 알맞았다. 나는 그러한 옷차림으로 일하면서, 날씨만 조금 추워졌다고 하면 보기도 싫게 퉁퉁한 수십만 원 이상씩의 다운 패딩을 하나같이 뒤집어쓰고 형형색색으로 다니는 모양새가 우스웠다.

  나는 사람 없는 매장에서 무릎이라도 따듯한 화목 난롯가의 흔들의자에 많이 앉아있었다. 그 흔들의자는 예전에 내가 부친에게 사다 주었었는데, 거의 안 쓰고 있다고 하여 본가에서 다시 실어 온 것이었다. 나는 그 의자에 앉으면서 불현듯 아버지를 느끼고 생각했다. 


  그 옛날 아버지가 앉아있던 의자에

  이렇게 석고처럼 앉아있으니……(정수라, 〈아버지의 의자〉)


  그리고 나는 이제 중학생이 되는 내 딸아이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여기 앉아서 나는 꿈을 키워 왔어요. 아버지의 체온 속에서 

  따스했던 말씀과 인자하신 미소를 언제나 생각했죠.(정수라, 〈아버지의 의자〉)


  그 아이가 어려서 조그마할 때는 한 팔로 안거나 목말을 태우거나 해서 거의 몸에 붙이고 다녔다. 나는 그 아이가 당당하게 크길 바랐다. 그러려면 나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전처럼 어디 가서 날품팔이를 할 수도 없었다. 한겨울에 일도 드물뿐더러 카페는 열어 놓아야 할 것이었다. 가끔 아랫길로 내려가 과수원 언덕의 그 카페를 쳐다보면 주차된 차가 서너 대씩 보였다. 겨울 바다는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화목 난롯가의 그 선장 석에 앉아서 외로이 항해를 이어갔다. 그즈음 나는 《성》을 읽고 있었다. 아니, 읽으려고 힘들이고 있었다. 나는 긴장해 있었고 피로했다. 


  석유가 조금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론 램프 불꽃을 크게 할 수는 없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성Das Schloss》 


  소설 쓰기는 벌써 먼 과거의 일인 듯 되어, 이제 나도 K처럼 본래의 목표를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손에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무엇을 들고 있다가 놀라서 곧바로 쥐어 떨어뜨릴 뻔한 것을 모면하고는 했다. 천하의 나도 살려고, 내 가족을 살게끔 만들려고, 그리고 소설을 써가려고 이다지도 겁을 먹고 있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매장에 필요한데 없는 것이 많았다. 테이크아웃 컵 꽂이도 내가 다녀본 카페 중에 없는 데가 없었다. 나는 그딴 것 필요 없었다. 글을 쓰는 것처럼 무에서 유를 만들면 되었다. 나무 재질의 벽걸이 수납함 두 개를 카운터 테이블 뒤쪽 아래에 나사를 박아 걸고, 하나에는 종이컵, 다른 하나는 아이스 컵을 꽂았다. 원래는 우편물이나 영수증 등을 꽂는 용도로 여겨졌는데, 예전에 역시 처제가 필요 없다고 언니네에 싸다 준 것 중에 있던 것이었다. 

  집에서 잠깐이면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제법 큰 마트가 있다. 아침부터 가는 눈이 날리던 날이었는데, 나는 그 앞 편 주차장 가에 내다 놓은 것 중 하나를 보아 두었다. 때가 낀 흰색의 철제 껌 매대 같았는데, 이튿날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아마 껌 회사에서 새것으로 온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을 매장으로 실어 와서 남았던 래커 스프레이로 다른 색을 입혔다. 매장 이리저리로 옮겨보다가 카운터 테이블 뒤쪽 밑으로 집어넣으니 높이도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 단짜리 철제 매대에 곧바로 꺼내 써야 할 이것저것을 수납하니 마침맞았다.

  며칠 뒤에는 매장에서 쓸 우유를 사서 그 마트를 나오는데, 이번에는 빨간 책꽂이 비슷한 것이 내어져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보니 익히 아는 미국 맥주의 판촉용 3단짜리 포맥스 진열대였다. 나는 그 물건도 차에 실었다. 껌 매대 옆에 붙여넣으려고 맨 윗부분을 조금 잘랐다. 그 미국 맥주 진열대에는 조그만 유리 찻잔들이며 그 받침, 유리 티포트 따위들을 넣어놓으니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꺼내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 물건들을 내려다보자니, 본디의 용도로 쓰이다가 폐기될 뻔한 것을 카페에서 새 용도로 요긴하게 쓰게 되어

  ‘보라! 나는 이렇게 해 놓고도 카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자부도 일었고, 싱크대 공장에 200만 원 주고 시킨 카운터 테이블이었다면 없었을 괜한 정감이 들었다. 나는 그러한 소꿉장난 같은 것이 재미가 있었다. 




  차로 가면 멀지 않은 곳에 컨테이너 상자를 한쪽에 놓고 쉬면서 과수원을 하는 친구가 있다. 쉬는 날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여 거기 들러보았더니 그 컨테이너 앞에 독수리의 등신 모형들이 한 군데 쌓여 있었다. 내가 그것들을 들춰보며 물으니 태양전지판이 달려서 소리를 낸다고 했다. 

  “그런데 왜 다 떼어놨어?”

  “효과 없어. 새들이 그 앞에 모여서 놀아.”

  나는 그중에 태양전지판이 떨어져 나간 것 하나를 찾아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다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나는 남의 멀쩡한 물건을 탐하기 싫었다.

  “나중에 또 쓸 일 있을지 모르잖아. 고장 난 이거 하나만 줘.”

  폐품이 되어 버려진 것이라야 내게는 일관된 있었다. 매장에 와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이제는 없는 상품으로 진귀해진 것을 구한 것이었다. 며칠 뒤 그 새 모형을 놓을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앞마당 복판의 느티나무였다. 살아있는 새를 섭외해서 항시 앉아있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사다리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그 나무의 가지 한 군데에 그 새 모형을 얹고 붙였다. 나는 매장 안에서도 독수리라고 하면 독수리고 큰 매라고 하면 매로 볼 수 있는 그 새와 언제든 눈길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새는 그렇게 내 구역에서 다시 살아나게끔 되었다. 




  휴대전화에 지인 부친의 부고 메시지가 떴다. 나는 그의 부친을 알지 못했으나, 조문을 안 할 수 없는 친분이었다. 곤란스러웠다. 그 내외가 일전에 한번 커피 마시러 온 적은 있었다. 나는 두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하기로 했다. 저녁에 나는 그날 차림 그대로 병원 장례식장에 갔다.

  "조의금도 못 가져왔어요. 아뇨, 염치도 없이 식사는 못 하겠고 그냥 갈게요."

  그의 자녀들 인사까지 받았으나 빈소를 나서서 나는 다르게 말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실상 예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돈이 중요한데, 통장에 잔고가 없었고 당장 어디서 구할 데도 없었다. 이 같은 문화! 나는 반이라도 했는데, 그가 내게 어쩔 것인가. 

  나는 가끔 저녁 무렵에 냉장 쇼케이스에서 이제 일주일 정도 되어 곰팡이가 필 것 같은 머핀을 꺼내 데어와 화목 난롯가의 자리에서 커피와 함께 씹어 넘겼다. 카운터 테이블 아래에 넣어놓은 문 하나짜리 소형 냉장고는 예전 내 사업장의 대표실에서 간이로 쓰던 것인데 냉동실이 없어서 조각 케이크 같은 것은 보관할 수가 없었다. 머핀은 미국에서 들어온 유명한 창고형 대형 할인마트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시켰는데, 싸고 컸다. 

  ‘왜 그런 걸 꼭 알리고 그래? 젠장……. 냉동실 있는 냉장고도 없어서 다 썩어 나가는 주젠데 부의금 십만 원이 어디 있나?’

  나는 어느 날은 호두 머핀을 먹어 없앴고, 다른 날은 블루베리 머핀 여러 개를 집으로 싸 가는 식으로 지냈다.




  지난여름에 단골 목욕탕의 이용사에게 들은 적이 있었던 카페였다. 북쪽 교외의 강가에 무슨 국제행사를 유치한다고 시에서 지은 건물 일 층에 들어왔는데, 처와 가 보았더니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쉬는 날 점심 무렵 그 카페를 찾아갔다. 주인으로 보이는, 나보다 한참 젊은 여자 혼자뿐이었다.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받아와서 어떤가 보려고 두 시간여를 앉아있는 중에 남자 한 명이 들어와서 커피를 마시고 나간 것이 다였다. 일부러 바깥을 내다볼 만큼의 풍광도 아니었고 인테리어도 흔한 것이었으며 커피 맛도 그저 그랬다. 역시 영혼적인 측면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없었으므로 나는 주인 여자에게 나도 카페를 한다고 얘기하고서 월 임차료를 물어보았다. 

  “월세가 아니고요. 삼천에 일 년 입찰 받았어요.”

  그러면 한 달 임차료가 250만 원이라는 얘기였다.

  “언니하고 둘이 해요. 여름엔 바빴는데, 겨울부터는 어째 사람이 뜸하네요.” 

  처음 얼마간 바글대다가 쭉 빠져버리는 카페를 한다고 일 년 치 3000만 원을 먼저 내던져버린 것이었다. 카페 이용객들은 단골 개념이란 것이 없다. 새로 생기고 괜찮다고 하는 데면 메뚜기떼처럼 몰려서 옮겨 다니는 존재들을 믿었는가.  

  본가에 들렀는데 부친은 손님이 없는 이유가 매장 아래 길가의 입간판 때문 같다면서 무슨 ‘문학적인’ 것이 중요하지 않고 ‘카페’가 중요하니, ‘CAFE’ 글자를 빨간색으로 하여 세로로 크게 붙여서 새로 높다란 입간판을 세우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말했다.

  “카페는 천지입니다. 정체성이 더 중요하죠.”

  부친은 매장으로 올라가는 길의 석축에 현수막이라도 하나 맞춰서 붙이라며 5만 원권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카페’를 더 크게 넣으라고 덧붙였다.

  나는 결국 현수막을 맞추지 못했다. 옷 속 어디 잘 넣어두었었는데 길에 흘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없을 때 항상 더 죽어라, 죽어라 했다. 지금 남 좋은 일 시켜 줄 형편이 아닌데,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속이 상했다. 

  그날 한 잔도 못 팔았을 때 나는 가슴에 총을 맞은 심정이 되어 카페를 나섰다. 나는 인적 없는 밤길로 돌아가면서 계기판 아래턱에 올려둔 휴대전화로 한 노래의 아래 구절을 들으려고 서너 번씩 다시 트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인적 없는 밤이 오면 휘청거리는 내 마음(심수봉, 〈눈물의 술〉)


  하루 뒤면 1월이 지나가는데, 여당의 소위 대권 주자로서 유력 정치인인 현직 도지사가 징역 2년을 얻어맞고 법정 구속되는 것으로 고꾸라졌다. 그자는 내가 극히 싫어하는 인간 유형으로 그러한 인간에 대해 시간을 쓰며 머릿속과 손을 더럽히기 싫다만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니 어쩔 수 없다.

  그자의 실제 죄상 자체가 너무 잡스럽고 치사해서 내가 일일이 거론하고 싶지 않은데, 그자가 오랫동안 바깥을 시끄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다들 익히 알 것이다. 그자는 나보다 생년이 한해 빠른데, 이 나이쯤 살아보면 내 나잇대의 대개의 인간형을 파악할 수가 있다.

  그자는 유독 뻔질거리는 면상으로 이 나이까지를 연기만 해야 하는 거짓된 인생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러한 삶을 멸시한다. 게다가 그자는 저의 범죄 의혹이 불거지자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소설 같은 얘기”라고 뇌까렸었다. 이것이 그러한 류의 인간들이 소설에 대해 가지는 인식이다. 저의 인생은 온통 거짓이면서 진실은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이 진실이다! 지금 이 소설을 읽게 될 때는 다들 알 것이나, 그 뒤로 그자의 ‘정치생명’은 끝나게 된다.  

  1월 한 달의 매출이 38만 6000원이었다. 그러나 그자 같은 인생보다는 나처럼 산속에서 당장 등윳값을 걱정하며 힘겨운 겨울을 견디고 있는 것이 백배 더 낫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을 징역 삼 년에 처한다.”

  그자로 인해 내가 그 같은 선고를 받고 당장 감옥에 들어간다고 상상해 보았다. 상상력을 사용하지 않았던 때문으로 벌어졌던 오류가 내 인생에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차라리 탈주자가 되리라. 힘들어도 숲속에 숨어서 사는 것이 훨씬 낫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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