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도저히 생각이 없었지만 어쩔 수가 없는 ‘빌어먹을’ 점심밥을 골을 찌르는 지린내와 함께 꾸역꾸역 욱여넣은 오후가 되자 그는 몸이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 정찰소대는 전원 평탄작업에 투입되었다. 연병장에 태양이 바작거렸다. 그는 바삭거리는 열기가 어쩌면 머리털에 밴 악취를 제거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오기식과 같은 조였다. 담가를 들면 무조건 뛰어야 하는 건 맞지만, 앞쪽의 오기식은 무언가에 놀라서 도망가는 토끼 모양 너무 내달렸다. 따라 뛰자니 그는 너무 힘이 들었다. 며칠 새 비둔해진 자신의 육중한 발걸음이 지면을 쿵쾅쿵쾅 울리는 것 같았고, 실제로 그게 들렸다. 숨이 차오른 그가 오기식에게 천천히 좀 가자고 했는데 오기식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밉상 맞게 톡 튀어나온 오기식의 뒤통수에다 그가 조용히 뇌까렸다.
“야, 이 새끼야! 대가리가 깨지고도 그리 뛰고 싶냐?”
“뭐라고, 새꺄?”
하며 오기식이 뒤돌아보았을 때 저를 쏘아보고 있는 그의 섬뜩한 눈빛과 마주쳤다. 오기식은 곧 속도를 줄였다.
찬찬히 그렇게 두세 번 왕복하던 중이었다. 연병장 가장자리 잡목둔치의 나무 그늘 밑에다 비닐돗자리를 깔아놓고 조그만 간이용 자석 장기를 두느라 몰려 앉아있던 병장들 중 하나가 손짓으로 그들 조를 불렀다. 그 병장은 훈수를 두고 있다가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모를 담가 조를 목격한 것이었다. 돗자리 위의 병장들 전투복은 물이 거의 다 빠져 희끄무레했는데 베일 듯이 줄이 세워져 있었다. 바지춤에서 빼낸 은은하게 광택 나는 전투복 상의 앞 단추는 두어 개 따져있었고, 둘은 잘 잡힌 줄들이 무뎌질까 봐서 그러는지 줄 부분이 바닥에 눌리지 않게끔 한 팔로 머리를 괴고 모로 누워서 장기 돌들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이 약간씩 몸을 뒤척일 때마다 심혈을 기울여 다림질한 허연 전투복의 줄, 반사광을 받는 그 줄의 한쪽 면은 초로 문댄 것 마냥 번질번질했다. 장시간 물광을 낸 듯 그들의 전투화 역시 티끌 하나 없이 반짝거렸다. 작업인솔자인 2 소대장은 그 나무 그늘에 서 있었는데 장기 두는 병장들과는 좀 떨어져서 회초리처럼 가는 나무막대기를 하나 해 들고 작업 인원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조가 자기들을 부른, 키도 작고 비례적으로 다리도 짧은 병장에게 다가가자 그 병장은 날이 뜨거워 모든 게 귀찮다는 듯 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너넨 왜 안 뛰니?”
동기의 몸이 좋지 않다고 오기식이 즉흥적으로 둘러댔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동기의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을 발견한 다른 병장 하나가 천천히 일어나더니 그의 앞으로 왔다. 귓바퀴 위에 담배를 끼운 병장은 키가 크고 마른 편이었다.
“넌 얼굴도 하얀 게 장교처럼 생겨가지고 뭣 하러 사병으로 왔니?”
그 병장은 상체가 길어서 다리가 짧아 보였는데 거기다, 또 약간 오(O)다리였다. 오다리가 소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딱 장교 스타일이야. 안 그래요? 소대장님?”
오다리가 다시 말했다.
“쫄따구는 단까 잡았을 땐 무조건 뛰는 거야. 알았어?”
오다리에게 그는 관등성명 없이 그냥 알았다고만 했다. 키도 작고 다리도 짧은 병장이 옆에서 을렀다.
“어― 얘! 눈빛 봐라? 이 새끼 골 때리네? 얘! ……넌 눈빛에 살기가 있어. 첨부터 생활 조심해라. 잉?”
바삭바삭 햇볕이 부서졌다. 깨끗하고 날카롭게 잡힌 줄에다 허옇게 물 빠진 그들의 전투복이 무슨 신선이나 조정 고관대작이었다가 물러 나온 지체 높은 대감들이 걸치는 옷 같다고 그가 생각하던 때였다. 갑자기 지린내가 확 풍기는 바람에 비위가 뒤틀렸다. 그는 그들이 그랬거나 말거나 오기식에게 계속 천천히 가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가 그렇게 버티는 데야 오기식은 어쩔 수가 없었다.
“쟤는 뭔 사고를 칠 것 같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키 작고 다리 짧은 병장 김신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