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새벽에 그가 택시만 한 사단장용 500MD*를 지키고 섰던 격납고 근무를 다녀와서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았는데 금세 기상 시간이었다. 다시 황망하고 정신없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악을 쓰고 손뼉을 쳐대면서 야산 꼭대기까지 달려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끈적거리는 몸으로 손정원의 침상정리를 배웠다.
그가 이제 씻으려고 자신의 관물대에서 세면 백을 집어 드는데 뒤쪽에 쌓여 있던 군납 ‘소보로 빵’들이 미끄러져 내렸다. 10여 봉지는 될 듯했다. 침상에 떨어지는 빵 봉지들을 본 손정원이 다가와 그에게 귓속말로, 먹고 싶음 몇 개 먹든지 하고 나머지는 몰래 버리라고 넌지시 귀띔했다. 군납 ‘소보로빵’이나 ‘코코아 카스텔라’ 등은 특전여단들이나, 공정대, 정찰대, 기습대 등 병사들이 봉급 외에 따로 특수근무수당을 받는 부대들로 매일 인원수만큼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일단 맛이 없어서 배가 아주 고플 때가 아니면 병사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 빵의 품질은 허리 밴드의 노란 고무줄이 금세 늘어나 흘러내리는 군용 팬티와 진배없었다. 그거라도 많이 먹고 힘내서 군 생활 잘하라고 격려하기 위해 소대 고참들이 저도 먹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서 귀여운 막내의 관물대에다 정성을 모았는지, 아니면 그걸 다 먹고 배가 터져서 죽으라고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그 빵들을 조금도 먹고 싶지 않았다. 정찰대에 전입된 후, 식판에 고봉으로 타다 주는 하루 세끼 밥을 억지로 다 욱여넣었더니 움직이는 게 비둔해졌고 살이 퉁퉁 부은 것 같았다. 신병교육대에서는 일부러 그는 조금씩만 타서 먹었었다. 잔반 통 앞에 지켜선 박 일병이 어느 놈 식판에 남기는 게 있나 하고 항시 검사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대변이나 좀 보고 싶었다. 속은 계속 더부룩했고, 탱탱하게 뱃가죽이 부풀어 올라 괴로웠지만 그게 해결될 기미가 없었다.
그가 당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던 오전의 어느 때였다. 그가 화장실에서 소변을 누고 돌아서는데 거즈를 댄 반창고가 십자로 머리에 붙은 오기식이 막 김기진과 같이 들어왔다. 그가 머리가 깨진 오기식에게 사유를 묻자 오기식은 시선을 돌렸다.
“씨팔. 이 자슥, 병장 새끼한테 야삽(野-) 자루로 쎄리 맞아가 대갈빠리 깨졌다 아이가. 의무대 같은데 가야 카는데 우짜노?”
각목을 안에 대고 얄팍한 합판을 붙인 화장실 출입문 너머를 투시하듯 신중하게 돌아다본 후 김기진이 조그맣고 빠르게 말했다. 그는 가슴께가 쏴 해졌다. 그가 안 아프냐고, 참을 만하냐고 물었을 때 여전히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으며 오기식이 입을 뗐다.
“그냥 죽고 싶다. 씨팔.”
그가 그 병장 놈이 도대체 왜 그랬냐고 다시 물었고 김기진이 얘기했다. 전날 저녁 식사 후였다. 오기식이 제 관물대 안에 수북한 그 곰보빵들을 체육복 상의 배 부분에 넣어가지고 구부정하게 어디론가 가려다가 붙들렸다는 것이었다. 오기식은 그 병장의 야전삽 자루에 맞아 머리가 터지고 나서도 발로 밟힌 다음 빵 여섯 개를 그 자리에서 욱여넣어야 했다. 병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 빵 다 처먹어라, 잉? 저번처럼 낙오하지 말고”
오기식이 끝내는 게워대기 시작하자……, 김기진이 거기까지 상황설명을 하던 참이었다. 텅, 하고 화장실 문짝이 열려 젖혀지며 불쑥 서정락이 들어섰다.
서정락이 오기식과 김기진을 노려보면서 그가 멈칫하고 서 있는 쪽으로 다가오더니 사정없이 그의 뺨을 두 대 갈겼다.
“벌써 동기 새끼들끼리 쪼가리를 씹어? 이런 개새끼들이…”
서정락이 그에게 욕설을 뱉었다.
“이 개새끼. × 나게 빠져가지고”
아니나 다를까. 그 욕이 끝나는 거와 동시에 그의 가슴팍에 주먹이 꽂히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머리에 구멍이 난 동기 일행은 화장실을 조심스레 빠져나갔다. 어느덧 서정락이 주먹질을 멈췄다.
“대가리 박아.”
그가 통로 바닥에 머리를 박으려고 상체를 숙일 때 서정락이 다시 욕을 했다.
“거기 말고 이 새꺄.”
화장실 통로 한쪽 벽엔 하얀 자기로 된 소변기 열 개가 붙어 있었고, 그 소변기 밑 배관들은 잘려있었다. 소변을 보면 끊어진 배관에서 떨어진 오줌이 시멘트 도랑을 따라 흐르다가 맨 끝 벽 밑에 뚫린 배수구로 빠져나가게 되어 있었는데, 뿌옇고 걸쭉한 오줌 찌꺼기로 막혀서 시큼하게 썩은 오줌물이 도랑에 20 센티미터 깊이로 고여 있었다.
“여기다 박으란 말이야. 개새꺄.”
그는 별수 없이 오줌물이 찬 도랑에 천천히 머리를 담갔다. 그의 콧구멍 속으로 역한 오줌물이 넘실대며 들어왔다. 발효된 오줌물의 지독한 냄새가 콧속을 찔러서였는지, 뭔가 정말로 괴로워서였는지는 그 자신도 잘 몰랐지만, 오줌물 속에 잠겨 질끈 감은 그의 두 눈 끝에서 어떤 체액이 흘러나와 오줌물과 섞였다. 그는 뜬금없이 여자가 필요해졌다. 아니, 절대로 필요 없었다.
* 미국 휴즈 사가 개발한 경 공격형 헬리콥터. 가격이 싸고 운용이 용이하여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운용 중이다. 관측용으로 쓰이는 OH-6 이외에 500MD는 공격헬기로써의 역할을 맡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공격헬기에 투자할 예산이 부족한 국가에서 기관총과 TOW 등을 장착하여 공격헬기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500E형에 TOW를 장착한 버전을 500MD Defender라고 부르며, 이 기체의 개발에는 한국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당시 코브라헬기를 요구했던 육군의 입장과 부족했던 경제 사정이 타협점을 본 것이 500MD에 TOW를 장착한 500MD Defender였던 것이다. 이 기체는 대한항공에서 1999년까지 300여 대 가량이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