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그날 치의 작업이 끝났다. 열이 식지 않아 아직 멍한 상태로 막사 뒤로 끌려간 그는 서정락에게 또다시 그날 치의 분량을 얻어맞았다. 머리털에 지린내가 남아있었다. 그의 기분만 그런 건지도 몰랐다. 밖에선 좀 덜한 듯했는데 취사장에 앉으니 알키 했다. 손대지 않은 저녁밥을 잔반 통에 쏟아 버렸다. 누가 보는 이는 없는 듯했다.
“어이, 삼 소대 신병!”
그가 식기세척장에서 나오는데 1소대 병장 하나가 불러 세웠다. 1소대는 국가대표를 보유하고 있었다. 곧 대단한 체격의 이등병이 걸어왔다. 그 이등병은 적어도 그보다는 두 체급 정도 위로 보였다.
“우리 태꿘이랑 한번 붙어볼래? 너 정돈 껌이라고 하데?”
이름 자체가 태권이었다. 그의 기분은 더 엿 같아졌다. 국가대표든 국가대표 할아비든 승부는 해봐야 아는 것이었다. 벌써 예전 일이지만 그는 기껏 도장에서만 수련하지 않았었다. 1 소대 병장이 낄낄거리고 있었다. 지나친 자만은 굉장히 위험하지. 그는 슬슬 치밀어 올랐다.
그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 이등병은 국가대표는 아니고 상비군이었고 고향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했다고 했다. 처음에 그 선수는 상무부대*1로 갔는데 제 후배가 거기 병장이었다. 홱 하고 돌아선 그는 다시 수도방위사령부 태권도부로 뽑혀갔다.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후배가 상병을 달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았던 후배들의 ‘쫄따구’가 되기 싫었던 그는 느지막이 다시 입대했고 결국에 오게 된 곳이 4사단 정찰대였다.
그가 26세의 관장(館長)과 마주 섰다. 그는 자기가 어떤 역사적인 인물, 그러니까 기다란 수염과 후덕하게 불룩한 배가 없을 뿐 막《삼국지연의》속에서 걸어 나온 무슨 관운장과 대면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찰대장은 저녁마다 그 관장이 해주는 스포츠마사지를 받고 나서 퇴근했다. 그러고 보니 대장의 마사지사는 상병 주임이 건 집합 때마다 없었고 그래서 어쩐지 낯설었다. 마사지사의 키는 대충 184cm가 좀 넘어 보였는데 어깨와 가슴, 그리고 골반의 골격이 대단했다. 그는 젬병인 축구도 그 마사지사는 어마어마하게 잘했는데, 센터링받은 공을 점프 뒤차기로 꽂아 넣을 정도였다. 그렇게 까불다가 가끔 실수도 했는데, 그러면 남이 그랬을 때보다 더 심한 욕을 얻어먹었다. 원래 그는 국민학교 때 축구선수였다고 했다. 그 학교의 태권도부 코치가 태권도부로 빼낸 것이었다. 축구부와 태권도부의 엄청난 운동량을 너무 어릴 때부터 무리하게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었는지 다리가 약간 바깥쪽으로 휘어진 그가 아까 전, 턱을 쭉 내밀고 구부정한 상체의 쫙 벌어진 골격으로 인해 벌려진 양팔을 흔들며 접근하던 모습은 흡사 고릴라의 움직임과도 같았다. 피차간에 인사―거수경례 든 목례든―같은 건 집어치웠다. 둘은 즉시 자세를 잡았다.
대장의 안마사로서, 집합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말고 또 다른 특전은 아침 식사를 혼자만 밥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장을 주무르면서 속이 쓰리다고 하소연했고, 지휘관의 특명을 받은 취사병이 매일 아침 한정식 일 인분을 따로 조리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순간 안마사의 기가 강하게 찔러왔고 그는 재빨리 발을 바꿨다. 오른발을 전방에 두는 ‘언 가드 포지션(on guard position)’이었다. 그는 원래 오른발잡이였지만 오랜 관록을 가진 국가대표상비군과 대치해서 전통적인 오른발잡이 포지션을 고집한다는 것은 대책 없는 짓이었다. 그래서는 승산이 없었다. 정확히 말해, 그는 그런 자세로는 본능적으로 안마사에게 콱 꿀리는 자신을 알았다. 안마사는 보통 강한 파이터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직감했다. 도대체 오기식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가 머리를 굴리기 이전에 육감으로 몸이 먼저 그 교활성을 발휘한 것이었다. 그것은 강한 쪽을 앞에 두는 절권도(截拳道)*2의 언 가드 포지션이었다. 그랬다. 그건 전투 자세였다. 언 가드 포지션은 그가 몇 차례 나갔던 도내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강적을 만났을 때나 싸울 때 취했었는데 공격은 몰라도 방어만큼은 완벽한 것이었다. 물론 그는 일반 태권도선수처럼 흐늘거리며 양팔을 내려뜨리지 않고, 오른쪽 턱을 왼손으로 커버하고 오른 ‘가드(guard)’도 중단으로 올렸다. 태권도경기에서처럼 양팔이 늘어지면 실전에서는 치명적이라는 걸 그는 숱한 직간접적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준비된 그의 가드는 전문선수 출신의 가공할 연속발차기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안마사가 뒷발에 체중을 옮기며 교과서적인 ‘받아 차기’ 폼을 취했다. 이제 안마사는 제 앞발로 몇 번 유인할 것이며, 두려움 때문에 그걸 참아내지 못한 자신의 발차기가 들어가는 순간 준비해 놓았던 뒷발로 끝내버린다는 안마사의 전략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걸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그는 손가락을 펴 갑자기 안마사의 눈으로 오른손을 던졌다. 절권도의 ‘페인트’였다. 손이 불쑥 제 얼굴로 날아오자 움찔한 안마사가 뒤로 상체를 젖히며 스텝을 빼는 그 순간이었다. 체중이 꽉 실린 그의 앞발이 피할 수 없는 미처 속도로 안마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옆구리가 꺾인 안마사의 숨이 콱 막혔다. 그대로 밀려 나간 안마사는 취사장 뒷벽 밑, 설거지한 구정물이 흐르는 고랑에 처박혔다. 무도인이 안마나 하고 저 혼자만 밥을 처먹어? 당신은 비겁해서 진 거야. 그는 씁쓸했다.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은 기습적이고 전형적인 절권도 ‘사이드 킥(side-kick)’ 한 방에 고꾸라졌다. 취사장 안쪽에서 줄줄이 상병 주임에게 두드려 터지는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고랑에서 기어 나온 안마사가 잘 쉬어지지 않는 숨으로 신음처럼 입을 열었다.
“제, 제가 진 게 아닙니다. 쟤! 태권도 아, 아닙니다.”
병장은 신병이 분명히 옆차기를 한 번 뻗었고, 제 소대 선수가 고꾸라진 걸 확실하게 보았다. 병장은 제 선수의 말 같지 않은 해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병장은 구정물에 젖지 않은 안마사의 뒤통수를 세게 갈겼다.
“병신 새끼.”
일석점호 정리가 끝나고 전체 인원이 2 내무반에 집합했다. 침상 위에는 새우 스낵과 몇 땅콩을 만 동그란 과자 등 몇 종류가 식판들에 담겨있었다. 반합 속 뚜껑―속 따까리라고도 한다―에 북동부지역의 군납 소주가 부어졌다. 쓴 소주가 몇 순배 돌았다. 그건 다음 날이면 군복을 벗는 병장 둘을 위한 회식 자리였다.
“상병 이·기·열. 노래 일발 첩보!”
2소대 인원이 페치카 앞에 서서 경례했다.
“수집!”
전체 다 받았다. 몇이 내려가 노래를 불렀고 손정원이 그에게 눈짓했다. 그는 손정원을 따라 통로로 내려섰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노래에 맞춰 박수를 쳐대면서 어깨를 들썩거리는 것이었다. 머리 깨진 오기식 등 그의 동기들이 뛰어 내려와 미친 듯이 흔들어댔고, 곧이어 일, 이등병 전체가 내려서서 팔다리를 나댔다.
그는 원래 못 추는 춤을 남들 흉내를 내면서,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추는 게 알딸딸해진 정신으로도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그럴 기분도 전혀 아니었다. 두 명 건너 역시 몸뚱이를 흔들고 있는 안마사를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가장 광란적으로 팔다리를 허우적대고 있는, 무슨 짐승 같은 동기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내무반의 요란하고 후텁지근한 열기 속에서 자신을 에워싼 인간들에 대한 경멸과, 어떤 수치심이 섞인 더럽고 구차스러운 일종의 치욕감에 침잠해 있었다.
*1 국군체육부대.
*2 영화배우이자 무술가 이소룡(李小龍)이 창시한 무술. 영문명은 ‘Jeet Kune Do’. 이소룡이 자신이 배웠던 영춘권(詠春拳)과 홍가권(洪家拳), 공력권(功力拳), 복싱, 태권도에 펜싱의 스텝을 차용하여 만든 종합무술이다. 그러나 이론을 정리하던 중 이소룡이 급서함으로써 미완성의 무술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