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맥정*에 들어오시면, 계속 여기서 공부해야 해요”
실장님이 말했다.
“붙을 때까지, 몇 년이든 계속이요. 할 수 있겠어요?”
“…”
*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고시반. 행정고시(기술직)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여기서 수험공부를 함
몇 번이고 고민한 끝에 신청한 기맥정 입실 면접이었다. 그러나 나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고개를 들자, 황색의 독서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수북이 쌓여있는 전공서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몇 년을 있어야 한다고? 붙을 때까지? 그때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그럼, 이제부턴 지금처럼 못 지내는 거야? 친구들도 못 만나고, 놀러가지도 못해?’
합격할 때까지는 다른 엉뚱한 짓 하지 말고 고시반에서 계속 공부해야 한다. 몇 년간, 그리고 매일 자는 시간만 뺀 모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사실 이건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에게는 당연한 상식이다. 나도 그동안 몇십 번이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런 나를 본 실장님은 표정이 어두웠다. 작은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좀 더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기맥정 문을 닫고 나오는 나의 발걸음은 어두웠다. 이 시험, 정말 내가 해도 되는 걸까.
무더운 2018년의 어느 여름이었다.
행정고시 기술직은 기계·화공·전기·토목 등 여러 가지 직렬이 있고, 그중에서 나는 기계 직렬을 선택하였다. 이유는 별 거 없다. 내 전공인 조선해양공학과와 그나마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다. 복학 후 대학을 다니며 배웠던 두 과목이 시험과목과 겹쳤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학부에서는 그 과목 내용의 극히 일부만을 배우는 반면(3학점 과정), 행정고시 시험 범위를 맞추기 위해서는 해당 과목의 전공서 한 권 전부를 보더라도 모자라며, 여러 권의 전공서를 교차로 봐야 겨우 가능하다. ‘과목이 전공과 일부 겹친다’는 건 겉모습만 그럴 뿐이었다.
또 이 시험은 매우 소수의 인원만을 선발하기에(2020년 기준 8명), 시장논리에 따라 학원이나 인강이 형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남의 전공(기계공학과) 공부를,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파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나는 지방대 출신이고, 이 시험은 SKY와 같은 최상위권 대학에서 합격자의 절대다수가 배출된다. 우리 과에는 단 한 명의 행정고시 합격자도 없었으니, 나는 선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행정고시는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에 속한다. 결국 합격하지 못하고 떨어지면, 한 마디로 ‘답이 없었다’. 불합격생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남는 건 나이뿐이기 때문이다. 몇 년을 날린 채,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집은 부유한 편이 아니었다. 내가 돈을 제때 벌어야 했는데, 자칫 수험기간이 늘어지면 큰일이었다.
그럼에도, 하고 싶었다*. 내가 직접 이 세상의 불합리함을 타파하고 싶었다. 이런 모든 고민에도, 나는 나도 모르게 행정고시 합격자들의 합격수기를 읽고 있었고, 내 마음은 이미 행정고시로 가 있었다.
* 자세한 지원동기는 ‘프롤로그(1부)’ 참조
군대를 전역한 나는 2017년 봄에 2학년으로 복학하였다. 복학 직전에, 나는 스스로를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내가 정말 행정고시를 칠 자격이 있는지를. 우선 지금 내가 속한 학과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조차 하지 못한다면, 최상위권 대학생들이 전력으로 달리는 행정고시에서 승산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학과 공부에 매진하였다. 지하철 통근 왕복 3시간 동안, 그날 배울 것과 배운 것을 예습·복습하였다. 이제 막 학기를 시작했는데도, 마치 시험기간인 것처럼 매일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였다. 그 결과, 대학 입학 이후 처음으로 A+ 성적을 받으며 4점대의 학점을 거둘 수 있었다.
‘내가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없다고 증명된 것은 아니구나’.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을 떠올렸다. 여기서 자세히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때는 내 생애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그때를 이겨내었던 나 스스로의 모습을 돌이켜보며 생각하였다. 이제는 또다시 도전할 때가 아닌가를.
대학교 3학년이 되자, 본격적으로 진로 이야기가 동기들 간 주 대화 소재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나는 주위로부터 ‘행정고시’라는 단어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학과에서 공부를 잘하는 소위 ‘과탑’들에게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신 조선소, 공기업, 아니면 대학원 진학, 그리고 이를 위한 토익이나 자격증 이야기가 진로를 주제로 한 대화의 전부를 차지하였다. 사실은, 이게 정상이기도 하다. 우리 과는 배를 만드는 조선해양공학과니까. 그런데 지금 나는, 모두가 선택하는 그런 루트에서 이탈하려고 하고 있다. 이게 맞는 걸까? 괜히 혼자 엉뚱한 거 하다가, 시간만 날리고 남들보다 늦게 취업하는 것은 아닐까? 나도 다른 애들처럼, 토익 공부하고, 다른 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가 스펙을 쌓아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과, ‘셀프 자격 검증’의 일환으로 시작된 학과 공부 속에서 어느덧 시간은 해를 넘겼고, 3학년 1학기도 끝나갔다. 이제 대학원에 학부 연구생으로 가는 애들도, 조선소 특채 전형에 지원하여 합격하는 애들도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정말로 정해야 했다. 그동안 마음먹은 대로 행정고시를 칠지, 아니면 다른 애들과 함께 일반적인 루트로 갈지를.
그리고 다녀온 기맥정 입실 면접.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남들처럼 조선소를 가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아니었다. 설사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떨어져서 뒤늦게 취업을 할지언정, 내가 이 세상에 이루고 싶은 것을 처음부터 접을 수는 없었다.
그럼 이제야 결론이 나왔다. 이 젊음을 걸고, 청운의 꿈을 품고 달려보는 것이었다.
2018년 9월. 2학기가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마침내 기맥정에 입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