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고시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보통 시험은 그동안 공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치르는 지식 기반형 유형에 해당한다. 하지만 행정고시 1차 시험, 즉 PSAT(공직적격성평가)은 전혀 다르다. PSAT은 이해력·순발력·판단력 등을 측정하는 일종의 적성 시험에 해당하며, 별도의 지식을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극단적으로는, 아무 공부도 하지 않고 시험지를 펼친 사람이 고득점을 할 수도 있다. 공기업의 NCS, 삼성의 GSAT, 로스쿨의 LEET와 비슷한 유형의 시험이라 하겠다.
내가 처음 기맥정에 들어가서 공부한 것은 기계공학 공부(2차 시험)가 아닌 바로 이 PSAT이었다. ‘일단 무조건 PSAT을 통과하고 봐야 한다’고 강조한 실장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그 강도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PSAT은 세 과목으로 나뉘며, 각 과목당 40문제를 90분 내에 풀게 된다(어림잡아 1문제당 2분). 모든 시험은 시간 싸움이겠지만, PSAT은 그 정도가 훨씬 심했고, 문제를 풀던 중간에도 스톱워치를 보며 내가 지금 시간 분배를 적절히 하고 있는지 수시로 체크해야 했다. 그러면서 문제 난이도 자체도 하나하나가 쉽지 않아, 처음에는 4문제를 풀었는데 시간이 20분이 넘어가던 때도 있었다. 심지어 일부러 실수를 유발하거나 ‘절대 2분 내외에 풀 수 없도록’ 설계된 문제들도 많으므로, 이를 유의하며 풀어야 했다.
심지어 PSAT에 더하여, 헌법 과목도 공부해야 했다. 공대생인 나는 법 공부 자체가 생애 처음이었고, 온갖 생소한 조문과 판례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1차 시험은 1년에 1번뿐이며, 이 날 시험을 떨어지게 되면 다음 해까지 시간이 텅 비어 버린다. 따라서 무조건 붙어야 하며, 그로 인한 부담감과 압박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마치, 낭떠러지를 달리는 기분이랄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기맥정에 입실한 지 얼마 안 돼서 모의고사를 푼 날, 한 과목 점수가 30점대 초반이 나온 적도 있었다(100점 만점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였지만 해결법은 공부뿐이었고,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멘탈을 부여잡고 달렸다. ‘나는 행정고시를 치겠다’라고 호언장담 해놓고는 시작하자마자 떨어지면 안 되니까. 돌이켜보면, 수험 기간 중 이 시기에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2019년 3월 초, 나는 처음으로 1차 시험을 응시하였다. 그러나 가채점 결과, 점수는 실망스러웠다. 친구와 함께 식당에서 시험지를 매기고는, 그 자리에서 크게 한탄하던 것이 생각난다.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합격 발표 날까지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다행히, 컷에서 겨우 한 문제 차이로 합격할 수 있었지만.
지금도 만약 내가 또 1차 시험을 본다는 생각을 하면.. 머리가 조여 온다. 어찌 보면 2차 시험보다도 부담 가는 것이 1차 시험이다.
그리고 그다음 2차 시험. 전공서 책 전체가 전부 범위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한 권의 책만으로는 아예 커버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다섯 권 이상의 전공서를 보더라도, 시험 범위의 100%를 충족한다는 보장은 없다.
기계공학에는 ‘역학’이라는 분야가 있다(대강 설명하자면, 어떤 물체에 힘이 가해지는 상황에 대하여 연구하는 과목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학부 1학년 때, 이 역학 분야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과목을 굉장히 어려워했었다*. 아니, 역학은 그냥 나와 안 맞다고 생각했다. 수업 3일 차부터 포기하고 던졌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제 그보다 어려운 상위 역학 과목들과, 그것도 구석에 있는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들과 지엽적인 개념까지도 씨름해야 했다.
* 나는 기계공학과 전공이 아니지만, 이 과목은 공통 역학 과목으로서, 학부에서 3학점 과정으로 학습함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기계공학과가 아닌 조선해양공학과를 전공하였으며 이는 내가 선택한 ‘일반기계’ 직렬과 상이하다(슬프게도 행정고시에 ‘조선’ 직렬은 없다). 그래도 지식 기반형이 아닌 1차 시험을 공부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헌법은 물론 나와 아무 관련 없는 과목이었지만, 어차피 내 경쟁자들도 대부분 공대생일 테고, 이들도 헌법을 모를 테니 쌤쌤이었다.
문제는 2차 시험이었는데, 나는 전 과목의 거의 모든 부분을, 사실상 A부터 Z까지(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했다*. 나무위키에서는 ‘행정고시 기술직은 전공자가 아니면 합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글도 있다. 그래서 나는 특히 수험기간 초반에는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는지’ 종종 의심하였다.
* 학부에서 행정고시 관련 배운 학점은 총 9학점에 불과하였으며, 그나마 배운 내용들도 수박 겉핡기식이었다.
이것과 관련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 한창 2차 공부를 하던 중, 전공서에서 ‘구름 베어링’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걸 본 나는, ‘베어링은 베어링인데, 그 모양이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처럼 생겨서 ‘구름 베어링’이라고 이름을 지었나 보다’라고 생각하였다. ‘구름’이 그 구름이 아니라 ‘(공이) 구르다’의 ing형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무려 약 2년이 지난 뒤였다. 또 나는 학부 1학년 수준 개념(그러나 매우 매우 중요한 기초개념)을 몰라서 관련 문제를 풀 때마다 매번 헷갈리고는 했는데, 그걸 제대로 깨달은 것도 약 2년 뒤였다.
개인적으로 1차 시험은 독학이 괜찮았고, 오히려 같이 공부하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았다*. 다만, 2차 시험은 워낙 소수인원을 선발하다 보니, 1차 시험과는 반대로 스터디(수험생들이 함께 그룹을 지어 공부하는 것)와 자료 확보**가 중요하다. 하지만 기맥정에는 기계 직렬이 나 혼자였고, 합격자도 한동안 없었기에(마지막 기계 직렬 합격자는, 내가 기맥정에 입실하기 6년 전에 배출), 비전공자여서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혼자 독학까지 해야 했다. 기출문제 답안지, 하다못해 최종합격자들의 합격수기도 없어서 직접 수집하였다.
* 혹시 독자 분들 중 행정고시 준비생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PSAT 학원이나 인강을 듣는 것은 비추한다. 대신 문제(기출·모강)를 많이 풀고, 기출을 분석하는 것을 권한다.
** 기출문제 답안, 합격수기, 서브노트 등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기에는, 경쟁자가 문제였다. 상대의 대부분은 최상위권 대학(SKY, 카이스트·포항공대 등)의 기계공학 전공자들이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히, 이들도 최선을 다해서 덤벼든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하던 학우들을 상대로 감히 ‘이기겠다’라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서울권에서 공부하는 이들은 스터디·자료 및 선배 유무, 기숙사 제공 등 인프라 측면에서도 나보다 유리하였다.
의심했다. ‘내가 저들을 제치고 합격할 수 있을까?’
그러나 동시에, 이 모든 사실은 나에게 힘이 되기도 했다. 무슨 말이냐고? 이런 고난이도로 인하여, 시험을 준비하던 나는 ‘자긍심’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줘야지’하는 스스로의 생각. 이것은 내가 시험을 끊임없이 준비하게 해 준 원동력의 하나였다.
매우 어려운 난이도,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생기는 에너지. 나는 그 속에서 매일 싸워나갔다. 고3 때 있었던 개인적인 사건, 그리고 복학 후 학과 성적을 높이는 데 성공하였던 경험이 나에게 큰 용기와 위안을 주었다. 불가능해 보였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