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돌이켜보며,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확보
바로 며칠 전, 올해 행정고시 3차 시험*이 종료되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탓일까. 작년까지만 해도 시험 일정을 꿰고 있었는데, 이제는 직접 인터넷에 쳐봐야 알게 된다. 그만큼 행정고시에 대한 나의 관심이 약해진 것일까. 한 때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고시생 시절의 기억도, 이제는 서서히 희미해진다. 기계공학 전공책들에 둘러싸인 채, 문제와 씨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 면접시험이자 최종 관문으로, 이 시험에 합격한 응시생들은 2025년도 혹은 2026년도에 5급 공무원으로서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됨
나는 군 복무 시절, 함께 같은 생활반에서 지내던 동기로부터 ‘행정고시 기술직’이라는 시험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땐 참 신기한 시험이라 생각했었다. 행정을 전혀 모르는, 계산기 두드리는 공대생이 공무원을 한다고? 그것도 5급으로 시작한다니? 사법시험이나 일반 행정고시(일반행정직)와는 다른, 조금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마침 그 당시 나는 전역 후 뭘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이었고, 그 후 호기심이 생겨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검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느껴졌다. ‘아, 이건 날 위한 시험이구나’. 행정고시 기술직을 합격한 뒤에는 공익을 위한 일을 하며 이 세상의 불합리함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 문과와 이과가 융합된 흔치 않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이끌었다. 물론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고, 현실적인 이유들도 많았다. 나는 수능 성적에 맞추어 전공(조선해양공학과)을 선택하였고, 그래서 대학 공부에는 큰 흥미를 갖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행정고시는,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공부’가 되어 주었다. 한편으로, 소위 ‘뽕’도 한 몫했다. 행정고시는 SKY 대학생들이 준비하는 어려운 시험이라고 들었다. ‘이 시험만 합격한다면, 나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외에 로스쿨과는 달리, 준비하는 데 있어 돈이 많이 안 든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 행정고시 기술직은 학원이나 강의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음(모집인원이 매우 적으므로)
그리고 시작된 수험생활. 겉으로 보기에 쳇바퀴 굴리는 삶을 사는 고시생의 일상에도, 마음속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온갖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오갔다. 어떨 때는 터무니없이 낮은 실력에도 반드시 붙는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기도 하였고, 반대로 어떨 때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왜 더 잘하지 못할까, 왜 더 열심히 하지 못할까 하며,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 적도 많았다. 또 한편으로는, 오직 나 스스로를 위한 공부에 매진할 수 있다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꿈과 같은 합격 이후. 그렇게 고대하던 합격 후의 생활은 어떨까? 당연히, 현실은 상상과는 다르다. 하루하루가 녹록지 않다. 매일 밤이면 다음날 출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친한 기맥정 형과는 이따금씩(사실은 자주) 직장 생활을 하며 느끼는 ‘현타’를 공유하기도 한다. 변호사나 의사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는 월급, 보직을 받기까지 아직 10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적체된 승진 체계. 그리고 가끔 나 스스로의 IQ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어렵고 복잡한 업무들. 무엇보다도, 주위에서는 공직을 그만두는 동기들의 소식이 종종 들려올 때면 마음이 더욱 복잡해진다.
정말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잘한 것일까? 만약 내가 창업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요새 대세인 로스쿨을 가서 대형 로펌에 간다면,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그만두고, 유학이나 로스쿨을 간 동기들의 선택이 현명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버리지 않고 집에 고이 모셔둔, 그 시절 몇백 번이고 펼쳤던 전공 서적들을 볼 때면 온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흐르는 것을 느낀다. 제발 꼴찌로라도 시험에 붙여만 준다면, 세종정부청사가 있는 방향을 향해 절이라도 하겠다고 말하던 그 시절. 실수를 하며 자책하고, 단칸방 고시원에서 잠을 자며, 하루에 커피를 6잔씩 마시며 공부하고 또 공부하였다. 지금 처한 어려운 현실은 이따금 한숨이 나오게 하지만, 고시생 시절 느꼈던 설렘과 간절함 또한 진짜이다. 그런 나 자신을 봐서라도, 그때의 초심을 품고 열심히 살아줘야 할 것 같다.
한 달 뒤에, 기맥정 송년회를 하기로 했다. 예전에 같이 기맥정에서 생활했던 사람들과, 또 다른 기대감을 품고 살아가는 실원들을 보기로 했다. 내가 합격자로서, 현직자로서 찾아간다니 어떻게 보면 정말 꿈과 같다. 실원들을 보며, 이제는 없는 고시생으로서의 나 자신을 추억하며, 지금의 삶에 에너지를 얻어야겠다.
3년 4개월. 고시 진입으로부터 최종 합격까지 걸렸던 시간이다. 이 브런치북, ‘5급 공무원의 길 1부’에서는 고시생으로서 겪었던 모든 추억과 희로애락, 희망과 절망이 담긴 그 모든 시간을 앞으로 글로서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 속에 담긴 에너지를 통해,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앞으로도 힘이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