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수험생 때 맨날 늦잠 잤어”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겸손한 줄 안다. 마치 조금 늦잠 잔 거 가지고 허우적대는 것마냥.
“에이, 늦잠 자봐야 얼마나 잔다고.. 9시쯤 일어난 거야?”
“아니, 오후 2시”
“뭐??!”
지금은 웃으면서 말한다. 그리고 내가 수험생 시절,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도 계속 잤다는 걸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그러고는, 대체 내가 어떻게 합격한 건지 의아해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수험기간 겪은 나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늦잠이었다. 고시 합격에 대한 나의 열망과 각오를 무참히 뭉개버린 늦잠. 그것은 수험생으로서의 나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기맥정에 막 입실한 극초반에는 일찍 일어났다. 보통은 오전 7시 정도에 도착해서 책을 펼쳤다. 심지어는, 새벽 5시 반에 와서 기맥정 문을 가장 먼저 열기도 하였다.
타오르던 초기 열정이 점차 꺼졌던 것일까. 늦잠은 이듬해 봄, 첫 번째 1차 시험을 치른 뒤 본격화되었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지’ 생각하면서 눈을 떠 보면 9시. 덕분에 9시에 하는 출석체크는 빠지기 일쑤였다. 그만큼 벌금은 쌓이고, 늘어나는 결석 숫자를 보며 실원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하지만 고작 9시에 일어나 놓고는 늦잠 잔다고 하는 거였으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는 눈을 뜨니 오후 1~2시였다. 가끔 그렇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일주일 3~4회는 그랬다. 사실상 매일 늦잠을 잔 셈이다.
눈 떴을 때 집에 들어온 그 따스한 햇살. 눈을 비비며 휴대폰 시계를 봤을 때의 그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늦잠을 자다가 1시에 일어난다. 그러고는 ‘내가 미쳤지’ 하면서 후다닥 씻는다. 그러고 점심을 20분 만에 대충 먹고 기맥정 가서 공부하고. 그러다 밤 11시쯤 집으로 돌아와서는 굳게 다짐한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지’. 그리고 다음날 또 1시에 일어난다. 그게 내 일상의 패턴이었다.
내가 느낀 자책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1분 1초가 아까운 수험생이 오후 1~2시에야 눈을 뜬다고? 상식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다. 남들이 오전 8시에 일어난다면, 나는 ‘매일 5~6시간’을 날리고 시작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늦잠을 잔 날은, 남은 시간 동안 아무리 집중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어 절망하였다.
어떻게든 늦잠에서 벗어나려고 별 짓을 다해보았다. 일찍 잠들어본 건 당연한 거고, 밤을 새서 패턴을 바꾸려고도 해 봤다. 심지어는 약국에 가서 수면유도제를 먹기도 했다(수면제와는 달리 약국에서 바로 살 수 있음). 그러나 결과는 전부 실패. 다음날 눈을 뜨면 언제나처럼 또 1~2시.
당연히 공부량은 급감하였다. 내가 남들처럼 오전 8시에 일어났더라면, 수험기간은 조금 짧아졌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나 스스로의 의지가 그리 강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수험생활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열정 있게 잘하리라는 나의 초심은 늦잠 앞에서 참혹히 무너졌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수험 기간 내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합격자에게 상담을 받으며 이 이야기를 했었다. 합격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인 의지로 안 된다면, 기숙학원을 고려해 봐라”. 그 말을 들은 나는 나의 약함을 인정해야만 했다.
굳이 좋게 생각하자면.. 늦잠 덕분인지 수험기간 내내 체력은 괜찮았다. 늦잠을 잔 날이면, “요새 얼굴 좋아졌어”라는 말을 듣고는 했다. 푹 잔 덕분인지 공부 집중력도 나름 괜찮았다. 밥 먹고 커피 사러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쉬는 시간도 없이 쭉 공부하기도 했다. 그 체력과 집중력의 뒤에 있던 것은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늦잠이었지만(사실 이조차 아니었다면 합격을 못 했겠지..).
‘이러다 시험 때도 늦잠 자버리는 거 아닐까?’ 하는 마음에, 시험을 치르기 전날이면 항상 알람을 여러 개 맞추어놨다. 그러고도 불안해서, 시험을 같이 치러 온 다른 실원과 매일 아침 (숙소) 1층 앞에서 만나며 서로 일어난 걸 확인하기도 하였다.
다행(?)인 건, 다음날이 시험인 것과 같이 정말로 일어나야 할 때면, 늘 정상적으로 일찍 일어났다는 것이다. 반면 다음날이 ‘하루 정도는 빠져도 되는 날’이라면, 늦잠을 자고는 했다. 하루 정도로 빠진 게 아니어서 문제지..
이 같은 늦잠은, 어쩌면 내 무의식 중에 공부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투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공부하고 싶다’를 외쳤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리 간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매일 시험을 치른다고 생각하고 일어나서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늦잠은 목표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나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친구에게 늦잠으로 하소연한 적이 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그건 네가 공부를 별로 안 하고 싶다는 거다”.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집중해서, 쉬지도 않고 공부를 하는데. 그러나 반박하기에는 무언가 마음이 시원하지 않았다. 다음날이 시험 치는 날이라면 일어나면서, 그냥 공부하는 날이라면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아마도 역대 행정고시 합격자 인원 전체 중 늦잠 많이 잔 걸로 순위를 매기면, 내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할 것이다.
3년이 넘는 수험기간 동안 늦잠 때문에 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일까? 합격하고 나서도 늦잠 자는 걸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도, 늦게 일어나면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연수원 동기들과 “기상소모임”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일찍 기상해야 하는 모임이다. 매일 평일에 8시까지 일어나서 인증해야 한다. 수험생들이 하는 기상스터디와 사실 똑같다.
그리고는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거 왜 하는 거야?”
나는 그때마다 말한다.
“늦잠이 너무 싫어서”
그래도 다행히 지금 직장 생활은 잘하고 있다. 출근 시각인 9시에 딱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덕분에 기상소모임(8시까지 기상)에는 맨날 벌금 내는 신세이다. 저번 주에도 평일 5일 중 4일을 결석했다.
그런데 다음 날이 직장 출근이라던지, 시험과 같이 ‘진짜 중요한 날’이면 일어나 진다. 그런 걸 보면, 친구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수험생 시절 그렇게 늦잠을 잔 것은, 그만큼 내가 덜 간절해서일까? 수면유도제보다는, 마음가짐을 다잡는 게 늦잠 해결의 진정한 열쇠였을까?
내일부터 또 기상소모임 시작이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요새 쓰고 있는 책을 아침에 꼭 써야겠다는 생각? 무엇이 되었든, 간절함을 가져야겠다. 그래야만 늦잠에서 진정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