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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by 이월생

대학생이 흔히 사는 원룸은 사실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간다. 우리 학교 앞의 원룸은 보통 월세 40만 원에 관리비도 별도로 10만 원 정도는 나온다. 조금 더 좋은 곳으로 가면 그만큼 월세도 뛴다. 무엇보다 보증금이 부담스러운데, 500~1,000만 원 정도의 나름 목돈을 한 번에 구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고시원은 보증금이 아예 필요 없다. 월세도 싸게는 17만 원부터 비싸야 25만 원 선이다. 관리비도 아예 내지 않는다. 에어컨을 마음껏 틀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게 끝이다. 방은 좁은 단칸방이고, 화장실은 공용이다. 그러니 밥을 준다는 것 외에는(문자 그대로 ‘밥’만 준다), 고시원은 사실 원룸의 하위호환이다. 그래서 돈이 없거나,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로 고시원을 택하고는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자취?


기맥정에 처음 들어갈 당시, 나는 기숙사 생활을 했다. 본가가 비록 부산이었지만, 왕복에는 3시간이 걸렸기에 통학을 할 수는 없었다. 기숙사는 그럭저럭 지낼만했으나, 2인 1실인 것이 아쉬웠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나는 밤에 쉬더라도 ‘쉬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다. 게다가 산 꼭대기에 있는 기숙사 위치도 걸렸다. 기맥정에서 20분 이상 땀을 흘리며 위로 올라가야 겨우 기숙사가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어쩔 때는 ‘통학’을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방학 기간 중 기숙사를 운영하지 않는 기간도 있었고, 이때는 어쩔 수 없이 본가에서 통학을 해야만 했다. 아 물론, 비싼 가격 때문에 원룸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맥정 실원에게 고시원을 추천받았다. 좁지만 어쨌든 개인 공간이 확보된다는 점, 기맥정에서 3분 거리에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밥도 나온 댔다, 밥값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생애 최초로 ‘자취’를 해보는 것이기도 했다. 고시원도 혼자 지내는 거긴 하니까. 이렇게 해서, 나는 기숙사를 퇴실한 채 약간은 설렌 마음을 안고 고시원으로 짐을 옮겼다.


현실


어차피 잠만 잘 거라 생각했다. 가격도 그만큼 착했기에, 나는 고시원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시원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부모님이 반찬을 싸주셨다. 고시원에서는 밥을 제공하니, 반찬만 해서 차려 먹으면 되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스팸, 김치부침개 등 맛있는 반찬을 잔뜩 펼쳐놓았는데, 식사가 맛이 없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어느 날 밥을 먹다 문득 깨달았다. 가장 기초가 되는 밥 자체가 맛이 없었다. 그러니 진수성찬을 아무리 차려놔도 소용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같은 고시원에 살던 실장 형은 그래서 햇반을 먹는다고 하였다.


고시원에서는 개인별로 미니 냉장고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지내면서 냉장고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다름 아닌 소음 때문이었다. 사실 본가에서 살 때는 냉장고에서 소리가 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넓은 공간으로 소리가 퍼지기에,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좁은 단칸방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소음은 방 전체를 차지하였고, 밤에 잠을 못 잔 나는 콘센트를 빼 버렸다. 그렇게 냉장고는 (안 그래도 좁은 방의) 자리만 차지하게 되었다.


단칸방이다 보니, 빨래를 안에서 말릴 수는 없었다. 대신 고시원 옥상에 단체로 빨래를 말리는 공간이 있었다. 문제는 옥상 천장이 뚫려있는지라 비가 오면 말짱 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빨래를 널어놨더니 비가 쏟아져서 다시 세탁기를 돌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빨래 전 일기예보 사전 확인은 필수였다.


결정적으로 벽이 검은색이었다.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모기도 검은색이기에, 벽에 붙어 있으면 보이질 않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에프킬라를 뿌리자니 좁은 방이라 환기가 안 되었고, 창문을 열자니 아침에 햇살이 정면으로 들어와 눈이 부셨다. 여태껏 모든 것을 참았지만, 모기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다. ‘고시원에서 사는 설움’이 그제서야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렇게 나는 결국 고시원에서 퇴실하게 된다.


본질


그럼에도 모기만 제외하면, 나름 괜찮았다. 중요한 건 공부니까. 잠을 고시원에서 자든, 원룸에서 자든 상관없었다. 오직 잘 공간만 있으면 충분했다. 깨어 있는 시간은 모두 기맥정에서 보냈고, 또 그래야 했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 한 번쯤은’ 이렇게 좁은 고시원에서 지내는 것도 경험이라 생각하였다. 20대니까 가능한 거였다.


터전


약 1년의 기간 동안, 나는 매일 고시원과 기맥정을 왕복하는 삶을 살았다. 밤에 기맥정 문을 닫고 고시원으로 돌아가던 장면이 아직 눈앞에 또렷이 펼쳐진다.


기본적으로 고시원은 ‘좋은 곳’이 될 수가 없다. 공간도 시설도 열악하지 그지없다. 그럼에도 고시원은 지친 나에게 좁지만 소중한 개인 공간을 제공하였다. 편의점 치킨을 사 와 고시원에서 몰래 혼자 파티를 하는 것, 일요일 쉬는 날 멍 때리며 있는 것. 고시원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고시원은 내 수험 생활의 분명한 일부분이다.


지금은 (비록 전부 빚이지만) 전세로 아파트에 살고 있다. 분명 똑같은 나인데, 언제는 고시원에 살다가 또 언제는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이 뭔가 불공정한 것 같기도 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시의 나에게 안방을 기꺼이 내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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