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고시 기술직은 선발 인원이 매우 적다. 세부 직렬별로 다르지만, 1년에 선발하는 인원이 적으면 1명부터 많아야 13명이 고작이다. 이렇게 수요도 공급도 작기에, 기술직은 행정직과는 달리 학원이 아예 없다.
그렇기에 자료의 중요성과 배타성은 동시에 올라간다. 양질의 자료를 소지하였는지 여부는 공부의 효율성과 시험 점수 확보로 직결된다. 또한 그런 자료는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다.
누군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자료가 없어도 충분히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한 답변은 아래에서 천천히 하겠다.
행정고시 기술직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필요한 자료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합격자의 합격수기와 기출문제 답안, 각 전공서적의 해설지이다. 하지만 더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서는 합격자 서브노트, 절판된 옛날 전공서적 등도 절실히 필요하다.
기술직은 극소수만 준비하기에 시험에 대한 정보 자체가 전무하다. 이런 상황인 만큼 이전 합격자의 합격수기는 더욱 귀중하다. 어떻게 공부하였는지, 어떤 전공서적을 보았는지 등등 사소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팁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기출문제 답안 또한 중요하다. 행정고시의 경우, 정부는 과거 기출문제만을 공지할 뿐, 이에 대한 모범답안은 별도로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답안이 없으면, 자신이 문제를 푼 방식과 답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다.
서브노트도 중요하다. 전공서적 한 권 전부를 보더라도 시험 범위를 커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선 합격자가 몇 권의 전공서와 각종 시험(7·9급 공무원 시험, 각종 자격증 시험 등)을 총망라하여 정리한 서브노트는 이래서 정말 중요했다. 이게 있어야 넓고도 깊게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전공서적 해설지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전공서적에서 제공하는 문제는 답과 해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설지가 없으면 사실 공부 자체가 진행이 안 된다. 절판된 70~80년대 전공서적 또한 필요한데, 특히 기계직의 경우 옛날 전공서적이 오히려 내용이 풍부하고 시험 경향에도 가까웠다.
이 모든 자료의 확보 여부는 합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귀한 자료를 아무에게나 주지는 않는다. 마치 ‘아는 사람’끼리만 공공연히 공유되는 대학교 족보(중간·기말고사 기출문제)처럼, 자료는 그 대학 고시반 안에서만 공유되는 경향이 크다. 많은 합격자들 또한 자신의 고시반 후배에게만 자료를 주고는 한다.
그런 탓에, 특히 1년에 1~2명 선발하는 소수직렬은 이러한 자료의 영향이 거의 절대적이다. 이러한 직렬은 합격자가 나오던 대학에서만 계속 나오는 경향이 있다. 만약 소수직렬인데 자료가 없으면,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엉뚱한 것만 공부하다 시험장에 들어갈 확률이 매우 크다.
그러나 선배 합격자가 없던 나는, 혼자 힘으로 모든 자료를 구해야 했다. 합격수기나 모범답안과 같은 기본적인 자료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든지 서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전공서적 외에는, 내가 갖고 있던 자료는 없었다.
다행히 내가 선택한 기계직은 그나마 기술직 중에서는 한 해에 무려(?) 8~12명이나 선발하는 다수 직렬이다. 덕분에 답안지 등 자료는 비교적 덜 고여 있었다. 또 전공서적도 많아서 타 직렬에 비하면 자료 자체의 중요성도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자료 때문에 진짜로 애를 먹은’ 축에는 끼지도 못한다.
“자료는 중요하다”
비록 가진 건 없었지만, 이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기술직에서 자료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은 지방대생인 나도 알 정도로 상식이었다.
내가 찾는 각종 자료들은 사실 상위권 대학 고시반에 대부분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타대생인 나에게 접근 권한은 없었다. 남은 방법은 ‘직접 수집하는 것’ 뿐이었다.
초반에는 누구나 그러는 것처럼 인터넷을 글적였다. ‘합격수기’를 검색하니 꽤 많은 글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기본에 충실’, ‘하루 10시간 공부’. 너무 뻔한 말이었다. 더 진솔하고 상세한 합격수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기술직의 합격자는 SKY에 편중되어 있고, 이들의 합격수기는 자신들의 고시반 내에서만 주로 공유되었다.
행정고시 기술직 수험생들이 활동하는 카페에도 들어가 봤다. 어떤 합격자가 기계직 답안지를 공유한 글이 있었다. 너무도 기뻤고, 바로 다운로드했다. 하지만 답안지 하나로는 부족했다. 몇 개월을 허탕 치다가, 자료를 공유한다는 글이 올라와 댓글을 달았다. 정말로 공유해 주셨고, 나는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혹시나 해서 구글링도 했다. 누군가가 시험과목 하나에 대한 답안지를 올려놓은 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가장 어려워하던 과목이었다. 다운로드하며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심지어 변리사 준비생 오픈채팅방에 들어간 적도 있다. 내가 공부하는 과목 몇 개가 겹치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자료를 찾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채팅방 방장님이 답안지를 공유해 주셨다.
그 외에 다른 합격자에게 10만 원 가량을 주고 답안지를 구입하기도 하고, 전공서적 해설지를 공유받기도 하였다. 절판된 옛날 전공서적을 찾기 위해 학교 도서관 전체를 뒤지기도 했다. 큰 도서관에는 없어서 포기하다시피 했었는데, 정작 작은 도서관에서 내가 찾던 책을 발견하였다. 그때의 감정이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가끔 타 대학 커뮤니티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거기에만 올라오는 솔직한 합격수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접속을 위해서는 커뮤니티 계정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 학교에 아는 사람이 없어 빌리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내 친구의 지인이 그 학교에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를 통해 부탁해 보았으나, 끝내 거절당했다. 덕분에 나의 작은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의 대부분을 수집하는 데 성공하였다. 운이 기가 막혔고, 또 내가 기계직이라 그나마 성공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1년에 1~2명 선발하는 소수직렬이었다면.. 아마 끝내 모으지 못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나는 직접 자료를 만들었다. 전공서적과 서브노트를 정리하여 나만의 서브노트를 완성했다. 다른 사람들의 답안지를 참고해서 나만의 답안지도 제작하였다. 자료를 수집하지 않았다면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합격자의 진심 어린 이야기와 팁이 담긴 합격수기는 끝내 거의 모으지 못했다. 또 여전히, 지금까지도 내가 존재조차 모르는 자료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행운아다. 수험생활 초기에 답안지를 바로 공유받을 수 있었다. 또 이름 모르는 누군가가 그 귀중한 자료를 내게 주었다. 내가 만약 그 순간 카페에, 오픈채팅방에 안 들어갔더라면? 때마침 좋은 분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손길을 내밀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기계직은 비록 다른 소수직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료는 중요하다. 그러나 독학을 하는 지방대생에게 자료 수집은 어려운 관문이었다. 나는 온 힘을 쏟았고, 다행히 운이 좋아 대부분의 자료를 확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자료는 나의 수험공부에 큰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