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행정고시나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을 뜻한다.
언젠가 미디어에서 들어봤던 고시생의 이미지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츄리닝을 입고 독서실을 배회하며, 두꺼운 책 여러 권에 둘러싸인 채 책과 씨름하고 있는 모습. 혹여나 아는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할까 봐 늘 주위를 살피는 모습. 그러면서도 몇 번이나 시험에 낙방하고, 다시 책을 펼치는 모습. 고시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내 모습이었다. 기맥정 입실 이후, 나는 정말로 말로만 듣던 그런 고시생이 되었다. 책에 둘러싸이고, 다른 대학 동기를 만날까 주위를 살피고, 결국 2차 시험을 또 불합격한 내 모습이었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수험생’ 대신 ‘고시생’ 용어를 사용하겠다)
대학생에서 고시생으로 신분이 전환되며, 나에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비록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지만, 나에게는 나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우선 혼밥. 학부 시절 나는 정말 혼밥을 못 하는 성격이었다. 혼자 식당에 앉아 있다가, 옆 테이블에 아는 애들이 우르르 들어와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떡할까! 그래서 나는 발도 넓지 않은 주제에 어떻게든 혼밥하는 걸 피하기 위해, 거의 목숨을 걸고 점심 약속을 잡았다. 오전 강의에 집중하는 것보다, 당장 잠시 뒤 점심을 혼자 먹지 않기 위해 같이 먹을 사람을 찾는 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덕분에 2학년 복학 후 세 학기 동안, 딱 두 번 정도 빼고는 혼밥을 피하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고시생이 된 이후, 어느샌가 혼밥에 익숙해져 있었다. 매일 11~12시에 한 번, 5~6시에 한 번, 학식을 먹기 위해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고시생활의 패턴이었다. 물론 가끔은 학식이 아닌 학교 앞 백화점이나 식당을 가기도 했지만, 혼자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재미있는 건 학부 시절과는 달리, 고시생이 되자 혼밥하는 것이 그리 외롭거나 부끄럽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공부가 너무 중요하기도 했고, 어쩌면 혼밥 도중에 ‘아는 사람’을 마주칠 일 자체가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커피도 전보다 훨씬 많이 마시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나는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하루에 아메리카노 큰 사이즈 하나와 작은 사이즈 하나는 기본으로 마시고는 했다. 커피를 마셔야 강의를 듣는 중 졸음을 쫓아낼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시생이 된 뒤로는, 마시는 커피 양이 훨씬 더 늘었다. 하루에 아메리카노 큰 사이즈 하나에 더하여, 캔커피 5~6개 이상을 추가로 마셨다. 그러니까, 커피를 아침에 한 번, 점심 먹고 한 번, 공부하다 잠시 쉴 때 여러 번, 문제 풀면서 여러 번 마시는 격이었다. 점심 이후 생기는 식곤증을 없애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였지만, 다른 기맥정 실원들은 내 건강을 우려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다 보니 늦잠을 자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늦잠’은 나에게 워낙 중요해서, 다음 에피소드에서 다루겠다).
고시생의 일상은 단순했다. 오직 집과 기맥정만을 반복했고, (늦잠을 자지 않는다면) 매일 09시부터 시작하여 밤 22시~23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기맥정 건물 자체도 대학생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 세워져 있다. 따라서 외부인 입장에서는 사실 고시생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매일 똑같은 하루였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고시생으로 지내는 동안, 나는 속세에서 잠시 벗어나 아날로그형 인간이 되었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다녔기 때문이다. 워낙 의지가 약한 편이라, 폰이 기맥정에 있으면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폰을 멀리 치워둬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심하면 5분에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폰을 보기도 하였다.
폰을 두고 다니는 바람에 때로는 필요한 연락도 하지 못하는 등 약간의 부작용은 있었지만, 확실히 집중력이 올라간 것이 느껴졌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폰 조금 하다가 기맥정에 가고, 밤에 집으로 돌아와서 밀린 카톡을 보는 것, 그게 고시생으로서의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였다.
기맥정은 주위와 동떨어져 있고, 내부 또한 다들 공부하느라 조용하다. 그래서 가끔 기분 전환을 위해 일부러 학교 앞 정문으로 가기도 하였다. 그곳의 분위기는 기맥정과 전혀 달랐다. 대학생들의 활기찬 소리, 젊음의 거리를 가득 채운 불빛과 그 모습은 대학가의 활기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비록 거기에 속하지는 못하였지만, 평소에는 채울 수 없었던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을 쉬는 날로 정해놓고 쉬었다. 그날은 친구도 가끔 보고, PC방에 가서 도파민을 충전하기도 하는 등 머리를 조금 식혔다(사실 원래는 일요일 오전에도 공부하려고 했는데,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도, PC방에서 게임을 할 때도, 나는 마음 한편이 불편하였다. 노는 것은 사실 즐겁지 않았고, 대신 죄책감이 내 온몸과 마음을 지배하였다. 그럼에도 하루를 쉬지 않으면 뇌에 과부하가 왔기에, 하루를 쉬는 걸 빼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고시생 시절, 늘 쉬거나 놀 때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일요일에는 죄책감을 조금 덜었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의지가 약한 편이다. 그래서 일요일이라는 정해진 휴식일이 아닌 이상,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예외’를 둬버리면, 나의 모든 패턴이 무너질까 두려웠다. 어느 날, 친한 친구가 학교 앞까지 찾아온 적도 있었지만, 나는 그날이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라 만나지 않고 그냥 보낸 적도 있다. ‘밥만 먹는 것도 안 되나’라는 친구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명절 또한 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명절이 빨간 날 이긴 하지만 일요일은 아니지 않은가. 비록 친척들과 친했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놓을 수는 없었다.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 밀려올 그 죄책감을 마주할 자신도 없었다.
나는 행정고시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숨겼다. 예외라면 친한 친구들과 대학 동기 일부였다. ‘네가 할 수 있겠어?’라는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고, 아직 붙지도 않았는데 괜히 나서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비밀을 공유한 친구들에게도 느낀 적이 있었다. ‘네가 할 수 있겠어?’
불안도 나의 몫이었다. 3년이 넘는 수험기간 동안, 주위 대학 동기들은 취업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히 누가 대기업에 갔다더라, 누가 OO교수님 연구실에 갔다더라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 친한 대학 동기 중 한 명은 한 학기당 500만 원이나 되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졸업 후 곧장 대기업으로 취직하는 특채에 선발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남들이 변하는 동안 나는 고시생으로서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돈을 벌지 못하고 있었다. 집안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닌데.. 무엇보다도, 끝내 불합격하면 이 모든 나의 노력은 허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럼 남들보다 2~3년은 늦게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내가 괜히 이러고 있는 것인지..
그러다 보니 웃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웃음을 잃었다는 것을.
그래서 다짐했다. 웃어보자. 일상의 작은 것에 재밌어하고, 주위에서 웃긴 걸 찾아보자. 이후 나는 억지로라도 웃었다. 책에 쓰여진 어이없는 오타를 보며 일부러 웃고 즐거워했다. 사람을 피하지 않는 용감한 비둘기를 보며 웃었다. 그러자 남은 고시생으로서의 일상은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나는 웃음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다(이렇게 웃은 것은 이후 지금까지도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 외로움, 돈을 벌지 못하는 것, 2평짜리 고시원에서의 생활, 밀려오는 죄책감,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이 모든 것은 내가 안고 가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십 번이고 생각하였다. ‘당연히 내가 합격’한다고. 그건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이라고.
힘들어도 괜찮았다. 놀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내가 더 공부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였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겪는 이 모든 것은, 내가 진정 원하는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고시생은 외롭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둠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시생으로 지내면서 나는 나름 성취감을 느꼈고, 공부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도 하였다. 내 삶과 공부 패턴을 스스로 주도한다는 것, 무언가에 진심으로 크게 몰입한다는 것도 너무나 좋았다.
고시생의 시간은 그저 합격을 위해 거쳐가는 시간이 아니다. 나를 성장시켜 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충분히 빛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