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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by 이월생

면접시험 당일부터 최종합격 발표일까지의 기간은 불과 2주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니 (1년 만에 합격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년간 공부해 온 고시생에게 있어 고작 2주라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만약 1·2차 시험에 이어 면접마저 합격한다면, 그걸로 수험생활은 끝난다. 그러나 반대로 면접에서 떨어진다면, 다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터널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양 극단을 오가는 고시생의 운명은 단 2주 만에 결정된다. 그러니 그 시간이 금방 지나갈 것 같지는 않다.


그 짧고도 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최대한 떠오르는 대로 글로 써보려 한다. 다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어느 정도 떠오르는 것 같다. 적어도 ‘몸이 기억하기에는’, 면접이 끝났다는 안도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불안의 교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 것으로 기억한다.


코로나 창궐, 그로 인한 기맥정 폐쇄, 1차 시험 연기, 갑작스러운 2차 시험 합격… 모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그동안 긴 시간을 고시생으로 지냈건만, 나는 당장 내일, 아니 1분 뒤의 미래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 무려 2주 뒤를 예측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폭풍전야


일단 면접시험 이후, 나는 어떠한 공부도 하지 않았다. 고시생이 된 그날 이후 처음 있는 일었다. 그동안은 ‘슬럼프 때문에 공부를 안(못)한 기간’은 있었어도, 의도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스터디원 중 한 명은 ‘숙취 아니면 술취’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한 마디로 발표 날까지 술을 계속 마셔서, 도저히 갈 생각을 안 하는 시간을 억지로 끌고 가겠다는 뜻이었다. 술을 많이 먹어서 숙취 상태이거나, 아니면 술을 많이 먹어서 술취(술에 취한) 상태이거나... 이것도 좋은 방법 같았지만, 차마 따라할 자신은 없었다. 나는 술에 약하기 때문이었다.


바로 부산으로 내려가지 않고, 신림동에 며칠 더 있었다. 그리고 스터디원들과 약속을 잡았고, 막걸리집에 가서 회포를 풀었다. 그동안은 스터디원들과 (간단한 식사 외에는) 스터디만 했지,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화려한 네온사인의 술집들을 뒤로한 채 스터디룸에 들어가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물론 아직 최종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든,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길 권리는 있었다. 우리가 아직 고시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동안 못했던 신림동 구경도 했다(많이는 못했다). 서울 온 김에, 여의도 인근 직장을 다니는 기맥정 형도 봤다. 그렇게 잠시 서울 생활을 만끽하다, 마지막 시간은 부산 본가에서 보내기로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글 서두에 쓴 것처럼 편히 지내지는 못했다. 혹시나 면접에서 미흡을 받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미흡을 받으면 ‘무조건’ 탈락하기 때문이었다. 면접관이 질문 하나를 놓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면접 마지막에 뭔가 울먹이지 않았나?’, ‘목소리를 너무 작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있는지도 몰랐던 고시생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면접 미흡’을 검색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떨어진다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나마,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는 최종합격한 상태였다(행정고시 면접 준비 도중 시험 치러 갔었다). 또 최종합격 발표일의 바로 다음날에는 또 다른 공기업인 코레일의 면접시험이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 ‘마음의 평안’이 생기지는 않았다. 내 눈에 보이는 건 행정고시뿐이었다.


주문


마침내 합격 발표날이 밝았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전에 PC방에 갔다. 물론 마음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게임보다는 고시생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면접 미흡’을 검색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리고 처음 기맥정에 갔을 때 상담을 했던 그 실장 형과 카톡을 했다. 주제는 당연히 ‘합격’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발표는 정확히 18시에 난다. 문자가 오면 합격, 오지 않으면 불합격이다. 어느덧 오후를 지나 해가 지기 시작했고, 나는 PC방에서 나왔다. 그동안 PC방에서 결과를 기다리다가 문자를 받지 못한 적이 두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관을 향했다. 그곳은 3년 전 7월, 내가 처음으로 고시 서적을 펼쳤던 공간이었다. 처음과 마지막에 같은 장소에 있으면 그것이 일종의 ‘상징’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 그날 도서관은 일찍 닫았고, 나는 합격 발표 전 도서관에서 나와야 했다. 그때 시각은 17시 50분. 어디를 갈까 하다가, 평소 스터디카페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그 길을 가기로 했다. 실장 형과 카톡을 계속한 채,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보냈다.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순간이 오고 있었다. 5분 전, 3분 전, 1분 전...


그리고 정확히 18시 00초.


문자는 오지 않았다.


아직이다. 시간이 통일이 안 돼서 그런 것일 거다.


1초 1초가 억겁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KakaoTalk_20250413_211349677.jpg


문자가 왔다.


최종합격을 알리는 문자였다.


이야기의 끝


만약 불합격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2차 시험 합격 직전, 내 멘탈은 저점을 찍은 상태였다.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어쨌든 2차 시험 합격 경험이 생겼으니 한 번 더 재도전을 했을까?


하지만 문자는 왔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좀 편하게 있어도 되겠구나. 놀 때 죄책감 안 가져도 되겠구나.


‘노력과 의지’만으로 붙은 게 아니다. 온갖 행운과, 부모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지원·희생이 동반된 결과였다.


이것으로 3년 4개월 간의 수험생활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합격이어서 너무나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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