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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시험

by 이월생

면접(3차 시험)은 PT(직무역량) 면접과 인성 면접으로 나뉜다. 이 중 PT 면접은 응시생이 직접 발표를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발표 시간이 너무 길어도, 너무 짧아도 안 되었다. 통상 7~8분이 가장 이상적이라 여겨졌다. 그랬기에 정확한 시간을 체크하고자 손목시계의 스톱워치 기능을 사용했다.


‘삑삑’


하지만 시계를 조작할 때 생기는 삑삑 소리가 신경 쓰였다. 혹시나 면접관이 좋아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계 뒷부분을 열어 선을 조작해서, 소리 기능을 없애 버렸다.


물론, 면접을 준비하며 걱정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질의응답 이전, 먼저 주어진 자료를 보고 문제지를 작성해야 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이었기에, 늘 압박감을 느꼈다. 면접관(역할을 맡은 스터디원)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응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그 외에 체력 안배도, 정책 공부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신경 쓰인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늦잠이었다. 만약에 면접 당일, 늦잠 자는 바람에 면접을 못 본다면? 그럼 평생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3년이 넘는 긴 수험생활 동안 나의 기상시간이 13~14시로 맞춰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실제로 당일에 늦잠을 자버릴 가능성은 충분했다(‘늦잠’ 에피소드 참고).


그랬기에 그 습관을 고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우선 오후에는 좋아하던 커피는 물론이고 음료도 일절 마시지 않았다. 밤에 화장실 가느라 중간에 깨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면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충분히 잠을 자서 다음날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였다. 알람시계도 하나 샀다. 휴대폰과 갤럭시탭, 다이소에서 산 탁상시계까지, 아침마다 총 3개의 알람이 울리도록 세팅했다. 그렇게 매일 6~7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였다.


세 번씩 치러본 1, 2차 시험과 달리, 면접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이어야 했다. 이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날짜가 다가오기까지 스터디는 계속되었다. 우리는 스터디원의 전원 합격을 기원하였다. 한편으로 불안감도 커져갔다. 면접 준비를 하며 맞닥뜨렸던 어려운 문제들이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그때, 합격자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 숙인 스스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고삐를 당겼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가을 풍경


마침내 운명의 날이 밝았다. 다행히 무사히 일어날 수 있었다. 씻고 머리를 만지고, 풀정장으로 갈아입었다(두 번의 공기업 면접 때 이미 정장을 입어봐서,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근처 김밥집에 가서, 돈까스 김밥 두 줄을 시켰다. 점심에 먹을 식량이었다.


면접장은 경기도 과천에 있는 청사에서 진행된다. 버스에서 내리자, 정장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어디론가, 하지만 하나같이 같은 곳을 향했다. 나도 그들 사이에 섞였다.


10월이었다. 붉은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나무들이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가을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쳐다보지 않았다. 애써 고개를 숙이며, 주위를 외면한 채 오직 앞만 보고 걸었다.


왜냐고? 이전에 본 면접 후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후기를 작성한 주인공도 나와 같이 가을에 면접을 봤고, 나와 같은 길을 걸어 면접장으로 갔었다. 그때도 주위에는 붉고 노란 나무들이 경관이 펼치고 있었다. 주인공은 그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하며 합격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 해, 주인공은 떨어졌다.


그러니 지금 내가 풍경을 감상한다면, 그 주인공처럼 나도 떨어질 것 같았다.


기계직


면접 장소인 과천 청사에 들어갔다. 나처럼 검은 정장에 구두에 넥타이까지, 풀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 사람들 모두 2차를 합격한 사람들이구나.’


내가 2차 합격자들과 섞여 있다는 게 신기했다. 가슴이 벅차오르려는 순간, 또 다른 현실이 나를 덮쳤다.


‘이 중 몇 명은 떨어지겠지.’


면접 경쟁률은 약 1.3 : 1이다. 아무리 혼신의 힘을 짜내어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라도, 우리 중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져야 했다. 그게 내가 아니어야 할 텐데...


어느덧 건물에 도착했고, 직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대강당으로 들어갔다. 개인마다 자리가 지정되어 있었고, 자리에는 내 이름과 면접용지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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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는 직렬별로 배치된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와 같은 기계 직렬 응시생들이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반가움을 느꼈다. 여기 있는 수많은 사람 중 우리 직렬은 소수여서 동료 의식이 생겼다. 게다가 우리는 같은 과목을 공부하고, 같은 2차 시험장에서 만났었다. 우리 모두, 그 숱한 관문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경쟁자였다. 우리 직렬은 15명이었지만, 면접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12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여기 있는 사람 중 3명은 탈락해야만 했다. 모두가 함께 할 수는 없었다.


‘그게 내가 아니어야 할 텐데...’


아까 했던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자리에 앉아 한창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스터디원이었던 사람이 일어나 시험장을 향해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평소에 항상 밝던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PT 문제지 작성


오늘 오전에는 PT 면접을, 오후에는 인성 면접을 치른다. 면접을 보기 전, 먼저 시험장으로 이동하여 문제지를 받아 주어진 자료에 맞게 작성한다. 그리고 면접장으로 이동하여, 작성한 문제지를 바탕으로 면접을 진행한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오전 PT 면접을 보기 전, 발표할 문제지를 작성하는 시간이다.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어떡하지?, 문제지를 다 못 채우면 어떡하지?, 제한 시간 동안 다 못 풀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드디어 시험장에 앉아 문제지를 받았다. 주제는 ‘메타버스’였다. 메타버스에 대한 우리나라 정책의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개선방안을 정리하는 것이 과제였다. 다행히 지난 공기업 면접 때에도 메타버스 주제가 나왔기에, 익숙했다. 게다가 주어진 자료는 매우 읽기 쉬웠다. 그동안 스터디와 학원에서 너무 어렵게 연습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30분의 시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내가 작성한 발표문을 손에 꽉 지었다. 이제 그걸 가지고 면접을 보게 된다.


대기


면접 진행을 위해 또 다른 대기실로 이동했다.


기다리던 중 잠시 화장실을 갔다. 풀정장 차림의 응시생들, 그리고 아마도 면접관처럼 보이는 중년의 사람들이 있었다. 어쩌면 나의 담당 면접관일지도 몰랐다. 그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목례를 했다.


내가 속한 6조가 불렸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나는 진짜 면접을 진행하는 면접실 주위 자리로 이동했다.


“저희가 면접 시작 3분 전에 성함을 불러드릴 거예요. 그럼 저 의자에 가서 앉아 계시면 돼요.”


직원이 말했다. 나는 면접실 앞에 놓여 있는 작은 의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1분 전에 저희가 한 번 더 불러드리면, 그 의자에서 일어나서 기다리시면 돼요. 그다음 마지막으로 또 성함을 부르면, 노크하시고 입장하시면 됩니다.”


‘3분 전... 1분 전...’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의자에 앉았을 때, 특히 일어났을 때 대체 얼마나 떨릴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응시생에 대한 배려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서 있게 할 수도 있는데, 겨우 2분을 위해 앉아 있게 해주는 거니까.


시간은 또다시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 이름이 불리고, 나는 내가 들어갈 면접실 앞 의자에 앉았다.


“3분 전입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실수하면 어떡하지? 말문 막히면 어떡하지? 잘못하다가 미흡(무조건 탈락) 받으면 어떡하지?


“1분 전입니다.”


의자에서 일어났다. 심장은 더욱 쿵쾅거렸다. 이제는 걱정조차 되지 않았다. 억겁의 시간이 흘렀다.


“입장해 주세요.”


운명의 시간이었다. 심호흡을 했다.


‘똑똑’


노크를 했다. 조심스래 문을 열어 입장했다.


PT 면접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원래는 세 명인데, 코로나 시국 때문에 두 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들은 국장(2급 공무원) 급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정보였다.


“어서 오세요. 앉으시죠.”


면접관들 앞에 의자에 앉았다. 아까 써 둔 문제지로 발표할 준비를 했다.


‘8분보다 길어지면 어떡하지?’

‘목소리가 너무 작으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딴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발표를 진행해야 했다.


“메타버스 활성화를 위한 정책 방안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나는 준비한 발표를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자, 긴장감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냥 평소처럼 면접스터디를 하는 느낌이었다.


“7분 32초 걸렸네요. 적절한 시간입니다.”


발표를 마치자, 면접관이 말했다. 시간까지 정확하게 말해 주다니. 응시생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말씀하신 정책 좋은 방법 같아요. 특히 이러이러한 방향이 효과적일 것 같네요.”


면접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코로나 시국이라 서로 마스크를 끼고 있던 탓일까. 오른쪽에 앉아 있던 면접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혹여나 중요한 걸 놓칠까 봐, 귀를 최대한 쫑긋 기울였다.


“응시생이 나중에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들으려고 해요.”


면접관이 질의를 이어갔다. 바짝 긴장했다. 어떤 질문일까?


“그런데 이해관계자인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잖아요. 그 많은 목소리를 다 들을 수가 없을 거예요. 같은 집단이라 해도 저마다 생각이 다를 거고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문이 막혔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하지?


“...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아 그럼그럼, 물론이죠.”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해야 하지? 대답 못하면 안 되는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럴 땐 해당 이해관계자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돼요.”


면접관이 웃으며 말했다.


“그 집단의 의견을 대표자들이 모은 거니까요.”


‘아 그렇구나. 그러면 되는구나.’

‘대답을 못해버렸네. 여기서 점수가 깎였을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인성 면접


점심시간이었다. 처음 모였던 대강당으로 돌아가 준비해 둔 김밥을 먹었다. 머리 회전을 위한 초콜릿도 함께. 김밥 두 줄을 준비했는데... 한 줄밖에 못 먹었다.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전에 대답 한 개 못 했는데... 하나 못한 걸로는 괜찮겠지? 오후엔 잘해보자.’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후 일정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인성 면접을 준비하기 위한 시험이었고, 나는 또다시 시험장으로 이동하였다.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안 될 텐데...


스터디를 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기출문제를 푼 적이 있었다.


‘남을 위해 거짓말한 경험을 서술하시오.’


아무리 고민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곧잘 써냈는데... 제발 이렇게 막히는 문제가 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시험이 시작되었고, 문제지를 받았다. 바로 질문이 뭔지 확인했다.


‘본인이 리더십을 발휘한 경험에 대해 서술하시오.’


다행히 쉽고 전형적인 문제였다. 미리 연습해 둔 예상 문제이기도 했다. 물론 소심한 성격이던 나는 ‘리더십 경험’ 자체가 별로 없긴 했지만, 그래도 미리 준비해 둔 답변이 있었기에 술술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이어서 두 번째 면접 시간. 오전에 한 번 겪어서인지, 아까보다는 침착할 수 있었다.


“이해관계자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 집단 사람들의 의견도 다양하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면접관이 물어보았다. 와, 오전과 똑같은 질문이었다. 덕분에 이번에는 곧바로 답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질의응답은 계속 이어졌다. 그중 어려운 질문이 하나 있었다. 질문의 정확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말문이 막힌 나 자신의 모습은 생생히 떠오른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또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때 상황은 이러이러해요...”


다른 면접관이 말을 이었다. 그는 나에게 힌트를 주고 있었다. 아니, 말이 힌트이지 사실은 정답의 거의 70%를 다 알려주고 있었다.


“면접관님께서 힌트를 주신 덕분에 답을 생각해 낼 수 있었습니다. 답변드리겠습니다...” 나는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나는 답변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제 이거 끝나면 집 가는 거예요?”


면접관이 물었다. 면접 막바지였다.


“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졌다.


“다 끝났네. 고생하셨어요. 집 가서 푹 쉬시고요.”


그 말을 듣자 무언가 울컥했다. 하지만 그 순간, ‘면접장에서 누가 울어서 탈락했다더라’라는 말이 떠오른 탓에 나는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었다. 만약 이번에 합격한다면, 그간 해왔던 모든 고시 공부는 오늘로써 끝나는 것이다.


면접 종료


바깥의 가을 풍경은 여전했다. 붉고 노란 나무들과 길가에 떨어져 수북이 쌓인 낙엽들, 그것을 비치는 저녁 햇살. 그리고 나는 눈길을 피했다. 오직 앞만 쳐다보며, 고시원을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겨우 7시였다. 그런데 밤을 샌 것처럼 너무너무 피곤했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묘한 해방감이 나를 감쌌다.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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