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시험 난이도 어땠어요?”
스터디원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는 나와 같은 기계 직렬이었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혹여나 나만 시험이 어려웠을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2차 합격자는 모두 15명. 그러나 그중 면접을 통과하여 최종 합격하는 사람은 12명뿐이다.
그런데 만약 면접 성적이 비슷하다면, 2차 시험 성적순으로 줄을 세운다. 그래서 2차 합격을 한 지금도, 그 시험 성적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래서 나는 내 2차 시험 성적이 하위권일까 봐 겁이 났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적당히 면접을 잘 보는’ 정도로는 최종 합격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에게 면접 준비는 더욱더 중요했다.
면접은 여태까지의 필기시험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정보도 없었다. 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랬기에 치열하게 달렸다. 면접 준비를 위해 스터디를 하는 건 물론, 별도로 면접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혼자 자료를 정리하고, 공직가치 등을 외웠다.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는 정책에 대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스터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누군가와 함께 공부하는 것은, 3년이 넘는 수험생활 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터디를 하는 매 순간순간은 절박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혼자가 아닌 함께 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스터디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우선 시간을 재고 각자 자료를 읽은 뒤 페이퍼를 작성한다. 이후 한 명이 응시생이 되어 발표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면접관이 되어 질의응답을 진행한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응시생과 면접관 역할을 수행한다.
쉽지 않았다. 여러 장의 빼곡한 자료를 모두 분석하고, 그걸 페이퍼에 녹여내는 작업은 복잡할뿐더러 시간도 많이 걸렸다. 초반에는 페이퍼를 끝까지 쓰지 못한 적도 많았다.
질의응답도 쉽지 않았다. 특히 예상치 못한 질문에는 순간적으로 생각해서 답변해야 했다. 당연히 막힐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비록 모의이기는 하지만) 응시생과 면접관 사이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이러다가 실전에서도 이럴까 봐, 우리는 늘 마음을 졸였다.
스터디는 주 7일, 저녁에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한 번은, 응시생이 발표를 마치고 질문을 기다린 적이 있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5명의 면접관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뭘 질문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중 몇 명은 다크서클이 있는 듯했다. 그렇게 30초나 지나서야 누군가 질의를 하였고, 스터디는 재개되었다. 오랜 시험 준비에 모두가 지쳐 있었다.
한 번은 합격자를 초빙하여 화상 면접을 본 적도 있었다. 그는 실제 면접을 통과한 대다가, 무엇보다 서로 익숙해지고 친해진 스터디원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우리는 객관적이고도 엄정한 평가를 받으리라 기대(걱정)하였다.
“실전을 위해 압박 면접을 할 거예요. 이상한 질문도 할 건데, 그럼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넘어가시면 돼요.”
화면 너머의 합격자가 말했다. 그는 마치 우리와 다른 세상에 있는 듯했다.
우리는 순서를 정했고, 돌아가면서 발표하였다. 압박 면접이 이어졌고,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제 내 차례였는데,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 심지어 페이퍼를 한참 전에 미리 작성해 놓은 탓에,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 더 열심히 하셔야 할 것 같고요. 지금 ㅇㅇ님은 발표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문구를 그대로 읽기만 했어요.”
‘이러다가 당신, 미흡(무조건 탈락) 받아’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안경을 낀 그 사람의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배겨 있었다.
그날, 집에 간 나는 그 문제를 똑같이 한 번 더 풀고, 혼자 다시 발표를 하였다. 아까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슴이 갑갑했다.
스터디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부도 공부지만, 스터디원들 간의 관계 또한 몹시 중요하다. 처음에 나는 우리 스터디가 잘 진행될지, 혹시 싸우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ㅇㅇ스터디가 폭파되었다더라’는 식의 이야기는, 고시생들 사이에서 종종 출몰하고는 한다. 지방에 혼자 박힌 채, 그동안 한 번도 스터디를 하지 않은 나조차 알 정도로 말이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다들 성격이 좋아서일 수도, 아니면 고시생끼리만 통하는 특유의 유대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함께 웃었고, 또 함께 한숨을 쉬었다.
어느 날은 PT 면접을 연습했다. PT는 신문기사 등을 읽고 한 장짜리 정책 페이퍼를 만드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고, 재빨리 자료를 읽었다. 전국에 빈집이 너무 많다는 내용이었다. 그로 인해 범죄의 위험성이 커지고, 집 없는 사람들의 박탈감도 커진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건 진짜 문제다’라고 생각을 한 순간, 다음 자료가 눈에 띄었다. 법안이 통과되어, 일정 기간이 지난 빈집을 주인의 동의 없이 철거할 수 있도록 되었다는 기사였다.
‘아, 이거다’. 나는 머릿속에 전구가 번뜩이는 듯했다. 서둘러 페이퍼를 작성했고, 나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였다.
“빈집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강한 정책을 사용하여 혁신을 이룰 필요가 있습니다.”
이어서 말했다.
“과감한 철거를 통해, 빈집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면접관 역할을 맡은 스터디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재산권이 침해되지 않을까요?”, “집주인이 소송하면 어떡하죠?”
그때마다 나는 ‘과감한 철거’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어필하였다.
하지만 스터디원들의 반응은 갸우뚱했다. 이후 피드백에서도 ‘과감한 철거라는 표현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전날 일은 까맣게 잊은 채 평소처럼 면접을 준비했다.
“ㅇㅇ님은 이런 경우 어떻게 생각해요?”
“전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제가 얼마나 마음이 여린데..”
“뭔 마음이 여려요?!”
그때 또 다른 스터디원이 갑자기 폭소하며 소리를 질렀다.
“과감한 철겈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강한 말을 쓰면서 마음이 여리다니, 무슨 소리냐는 뜻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스터디원들은 크게 웃으며 공감하였다.
그러고 며칠 뒤에는 “한미 FTA 체결을 통해, 전 세계에 만연한 보호무역주의를 혁파하겠습니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돌아온 피드백은 “아니, 사무관(5급 공무원) 따리가 어떻게 보호무역주의 혁파를 해요?! UN 사무총장도 못하는데..”였다.
또 어느 날은 면접관 역할을 맡은 스터디원이 응시생 역할을 맡은 다른 스터디원에게 돌발 질문을 하였다.
“본인을 닮은 과일은 무엇인가요?”
엥?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스터디원이 과연 뭐라고 답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저는 딸기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딸기는 달콤하고 신선합니다. 저도 그렇게 달콤하고 신선한 공직자가 되겠습니다.”
뭔가 이상했다. 달콤하고 신선한 건 딸기만의 특징이 아닐 텐데? 그런 생각을 한 나는 응시생에게 추가 질의를 하였다.
“달콤한 건 딸기만의 특성이 아니라 모든 과일에 해당하는 거고, 신선한 것도 딸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수확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거 말고 딸기만의 다른 특징은 없을까요?”
“저..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면접을 마친 뒤 그 스터디원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ㅇㅇ님 왜 그런 질문을 해요?! 그냥 넘어갈 것이지!! 에잇.. 복수할 거야..” 겁이 난 나는 그 스터디원의 원망이 담긴 눈길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닮은 과일은 뭘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다음날도 언제나처럼 스터디가 있었다. 내가 응시생 역할을 맡아 앞자리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전날 그 딸기 스터디원이 내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냥 옮기는 것이 아니라, 뭔가 행동이 크고 나를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면접을 진행하며 그건 곧 잊어버렸고, 나는 평소처럼 다른 스터디원들의 질문에 대응하였다. 그런데 질문이 막바지로 갈 무렵, 전날 그 과일 질의를 했던 스터디원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본인을 닮은 과일이 뭐라고 생각해요?”
와, 나한테도 물어보는구나. 다른 스터디원들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애써 참는 소리가 들렸다. 그나마 전날 잠시 고민을 했기에,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저는 수박을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수박은 과즙이 많습니다. 저도 공직자가 되면 국민에게 많은 좋은 영향을 끼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수박은 크기가 아주 큽니다. 저도 수박처럼 큰 사람으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딸기 스터디원이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과즙이 많은 건 다른 과일들도 다 그런 거고, 보니까 지금 응시생은 덩치도 별로 안 큰 거 같은데, 그거 말고 다른 특징은 없어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후속 답변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딸기 스터디원은 씩씩거리고 있었다.
“본인 이름으로 삼행시 해보시죠.”
다른 스터디원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다들 웃음을 참는데 실패하였다.
“저.. 잠시 생각할 시간을..”
“저희 지금 시간 없거든요! 자, 해보세요! 김!”
딸기 스터디원이 재촉하였다. 나는 내 이름 석 자로 삼행시를 급조해 낼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내가 잠시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딸기 스터디원이 전날 있었던 일을 모두에게 공유한 것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웃음소리 속에서 처절한 복수극은 막을 내렸다.
스터디 외에 면접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겨우 3주 과정, 주 2회 가는 데에 40만 원 이상이었으니,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하지만 달리 선택지는 없었다. 안 다니기엔 괜히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학교 지원금이 적용되어서, 조금은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같은 직렬끼리 수업이 진행되었다. 덕분에 나 말고 다른 기계직 응시생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묘한 적막과 긴장감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사람 중,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면접 학원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한 번은 인성 시험을 보는데, 완전히 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너무 잘했고, 강사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다. 수업이 끝난 뒤, 나는 그 사람에게 페이퍼 쓰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부스러진 멘탈을 어떻게든 회복하였다.
모의면접도 진행되었다. 불안했던 나는 면접관에게 질문을 쏟아내었고, 더 자세한 피드백을 요청했다. 시간이 한참 오버된 뒤, 면접관은 문 밖에 서서 나갈라말라하며 나에게 답하기도 하였다. ‘이제 그만 물어라’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래도 계속 물었다. 피드백 하나하나가 너무 간절했다.
주 7일 저녁 면접스터디, 주 2회 면접학원. 그 외에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개인 공부를 하였다. 면접시험 날짜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3주에 불과했고, 그렇기에 달려야만 했다.
그래도 이전 1·2차 시험공부를 할 때와는 달랐다. 내가 2차를 붙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 면접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 현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잘하면 이번 면접 준비로 수험생활은 끝난다. 매일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기를 바랬다.
일정은 타이트했지만, 그럼에도 나름 할 만했다. 특히 스터디카페에 있는 콜라맛 슬러쉬가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