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했다. 그렇기에 감사한다.
그러나 더 잘했더라면? 좀 더 일찍 합격했더라면?
붙어놓고 욕심이 과하다고? 왜 굳이 합격했는데도 그런 생각을 하냐고?
그러나 아쉬워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험생활은 끝났지만, 인생은 계속되니까.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걸 고쳐서 앞으로는 반복하지 않으면 되니까.
반대로, ‘내 실력’이 아닌데 상황이 맞아떨어져 합격할 수 있었던 요소들도 다룬다. 그래야 합격이라는 성취를 오직 ‘내 실력’ 덕인 줄 착각하는 잘못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결과를 얻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행운이 있었다. 이건 다른 글에 작성해 두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운칠기삼’ 에피소드 참고).
① 더 빨리 시험을 준비했더라면?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나는 나를 의심했다. 그렇기에 행정고시에 바로 진입하지 않았다. 대신 ‘학과 성적이 잘 나와야 진입하겠다’는 조건을 스스로에게 내걸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 자신을 믿었더라면 어땠을까?
더 나아가서 군 복무 중, 아니 아예 1학년 때부터 준비했더라면? 실제로 SKY 출신 학생들의 다수는 21~22살의 어린 나이에 시험에 진입하고는 한다. 기맥정 실장 형 또한 1학년 때부터 고시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당시 나는 ‘행정고시 기술직’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다. 좀 더 일찍 진로 고민을 하고, 정보를 잘 찾아봤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나도 진작 이 시험을 알고 준비했을지도 모르는데.
아쉽지만 깨달은 게 있다. ‘정보 탐색을 잘해야 하는 것’, ‘다른 진취적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는 것’,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② 시험에 올인했더라면?
학교를 병행하지 않고, 과감하게 휴학하고 고시 준비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단 한 번, 그것도 한 학기만 휴학한 것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학교 수업과 고시 공부를 함께 했다. 처음 결심은 ‘학점도 잘 받고, 고시공부도 잘하겠다’였지만,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였다. 그렇게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되며 자연히 공부 효율성은 크게 낮아졌다.
사실 이 부분은 합격자에게 직접 조언을 듣기도 했었다.
“그냥 휴학하고 올인해라. 그럼 1년 빨리 붙고, 1년 (공무원 근무 시작을) 유예하면 된다.”
하지만 겁이 났다. 괜히 휴학을 했다가는, 합격하지 못하고 시간만 날릴 것 같았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또 부족했던 것이다.
좋게 보면 리스크 관리, 안 좋게 보면 선택과 집중의 부재이다. 학기 병행은 옳은 선택이었을까? 아무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점이 종종 아쉽다.
또 공무원은 애초에 ‘학력’을 전혀 보지 않는다. 그럼 일찍 붙고 나서 그냥 대학을 자퇴했으면 어땠을까? 너무 극단적인 생각인가?
여기서 깨달은 점은? 나 스스로를 믿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과 포기할 건 내려놓는 것이다.
③ 공부를 더 효율적으로 했더라면?
첫 번째 2차 시험을 치른 뒤, 4개월 이상의 슬럼프가 있었다(‘슬럼프’ 에피소드 참고). 정말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때 정신 차리고, 조금만 쉬다가 바로 돌아왔더라면 어땠을까?
일요일에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고 내내 쉬었다. 하지만 3~4시간만 쉬고, 공부를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카페 같은 편안한 공간에서 가볍게 하더라도 말이다.
늦잠을 어떻게든 적게 잤더라면 어땠을까(‘늦잠’ 에피소드 참고)? 지금 생각하면 운동 부족과 커피 과다 섭취가 늦잠의 원인 같기도 하다. 하루 2시간만 덜 잤어도 1년은 일찍 붙지 않았을까?
신림동으로 진작 올라가서 다른 사람들과 스터디를 했다면 어땠을까? 기맥정에는 선배도 자료도 없었다. 매우 쉬운 개념에 대해 2년 이상 혼자 고민하기도 했다. 어차피 수험생활 비용은 신림동이나 기맥정이나 비슷했을 것 같은데.
기계 분야가 아닌 다른 직렬을 선택했더라면? 어차피 전공과 무관해서, 처음부터 공부했어야 했다. 게다가 기계 직렬은 소위 ‘고인물’들이 많은 레드오션이다. 좀 더 전략적으로 합격하기 좋은 직렬로 갔다면 어땠을까?
요새도 늦잠을 많이 잔다. 출근 시각이 9시인데, 8시 30분에 일어나 씻지도 않고 부랴부랴 출근하기 일쑤이다. 일찍 일어나서 시간을 챙겨야겠다. 그리고 혼자 고민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잘 보며 조언을 얻어야겠다. 새로운 환경에도 도전해 보고, 주말이라고 무조건 쉬지 말고...
단언컨대 행정고시 기술직은 수험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시험이다. 학원이 없기 때문에, 딱 대학생만큼의 생활비만 있으면 된다. 비싸다는 전공서적도 사실 한 번만 구입하면 더 이상 돈이 나갈 일은 없다.
그럼에도 어쨌든 취업 공백기는 발생한다. 시험을 준비하지 않고 공부를 했더라면 생겼을 연봉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만약 부모님이 나를 지원해주지 못하셨다면, 내가 빨리 일을 해야 했더라면? 그럼 나는 다른 회사를 다니며 고시를 준비했을 테고, 그만큼 합격도 늦어졌겠지. 아니 어쩌면, 도전조차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게 아니다. 사실은 큰 축복이었다.
내가 합격하는 데 있어 가장 크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요소 중 하나이다. 다음 에피소드에서 자세히 서술하겠다.
물론 수험생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합격 여부 그 자체이다. 세상에 ‘합격’과 ‘불합격’만큼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것도 드물다.
그럼에도 솔직한 마음으로 아쉽다.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
이 아쉬움을 거울삼아, 앞으로의 인생은 더 잘 살아야겠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미래는 만들어나갈 수 있으니까. 언젠가 내가 지금 이 순간을 돌이켜보며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또한 지금까지 나에게는 수많은 희생과 운, 유리한 제도가 함께 해왔다. 가끔은 이 사실을 잊고, 혼자 자만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니, 이 모든 성취는 사실 내 덕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