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으며 상부와 문제가 생기면 자꾸만 고소를 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남자. '커피 없으면 나는 말린 염소고기다'라는 어록을 남기고 학생들에게 하도 증오당해서 얼굴이 다트판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바순 주자에게 너무 심한 모욕을 한 바람에 상대가 각목으로 자신을 때리려 하자 태연하게 칼을 빼들고 방어한 남자. 여덟 아이의 아버지이자 두 여자의 남편, 그리고 수많은 작곡가들에게 존경받은 작곡가.
기행을 바흐로 시작했는데, 19편이 되어서 다시 만나니 또 기분이 새롭다. 그동안 작곡가 박물관에 대해서 쓰는 실력이 좀 늘었는지 이제 옛날 글을 보면 어색하게 느껴진다. 1편은 처음이다 보니 '음악의 아버지'라는 거창한 별명이 붙은 바흐에게 바흐가 받아야 마땅한 대접을 못 해준 느낌이 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정성을 들여서 글을 쓰려한다. 박물관이 바흐에게 정성을 들인 만큼 나도 바흐에게 정성을 들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아이제나흐 역에 내리자마자 본에서와 마찬가지로 "Geburtsstadt Johann Sebastian Bachs"라는 글자가 나를 맞이했다. 역시 3B는 팔아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법이다. 아이제나흐는 튀링겐, 독일에 가 본 지인들 말로는 가장 볼거리 없다는 주에 위치해 있다. 아이제나흐에서 내 목표는 바흐박물관에 가는 것이었고 시간이 많이 남으면 루터박물관까지 갈까 고민하고 있었다. 역에서 바흐박물관까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버스를 타야 한다. 알트슈타트까지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바흐박물관은 도심이 아닌 바람에 중앙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를 가야 한다. 그래도 나름 배차간격이 짧은 편이기도 하고, 전형적으로 독일스러운 소박하고 수수한 건물들과 정원들 풍경을 차창 바깥으로 보며 가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나는 정기권으로 버스, 지하철, 기차를 전부 한 번에 끊어서 다니다 보니 사실상 버스가 무료라서 버스를 탔지만 다시 검색해 보니 걸어가는 데 2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하니... 그냥 걸어가도 나쁘지 않긴 할 것 같다.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국립공예박물관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규모의 현대적인 로비가 펼쳐진다. 오른쪽에는 티켓오피스, 왼쪽에는 박물관 카페가 있다. 전체적으로 하얗고 밝은 모델하우스 분위기 때문인지 잠깐 한국 박물관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입구 맞은편에는 카페테라스를 지나 정원으로 이어지는 유리문이 나 있다. 이것이 바로 바흐박물관 신관, 노이바우다. 티켓을 받기 전 잠깐 다시 바깥으로 나가 보자. 다시 건물을 나오면 무뚝뚝하게 서 있는 바흐가 우리를 맞이한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바흐 기념비가 있다. 라이프치히에서 봤던 바흐 동상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이 동상은 바흐박물관을 세울 당시 프란츠 리스트 (18화 참고)와 클라라 슈만 등이 돈을 모아 바흐박물관 앞에 건립한 동상이라고 한다. 19세기, 낭만주의의 한 갈래로 일어난 역사주의 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낭만주의가 불러일으킨 '천재' 신화가 굳건해지며 작곡가의 음악만큼이나 작곡가 그 자신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기 때문인지 과거 작곡가들에 대한 발굴이 진행되고 박물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발디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에게 서양 음악의 전통을 시작하는 작곡가로 받아들여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사실 클래식 역사 전체를 통틀어 놓고 봐도 유례가 없을 정도의 역주행 작곡가다. 최초이자 최고의 역주행이지 않았을까 싶다. 1685년 태어나서 1750년 죽은 바흐는 동네하고 근방 정도에서나 이름이 알려져 있는 작곡가였다. 오히려 그 아들들인 WF 바흐, CPE 바흐 (일명 함부르크의 바흐, 2화 참고), JC 바흐 (일명 런던의 바흐) 셋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명성을 구가했다. 특히 이 가운데서도 CPE 바흐는 하이든이 가장 존경했던 작곡가 가운데 하나였고 베토벤이 '바흐는 개천이 아니라 바다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될 정도로* 실력 있는 작곡가였다. 아버지의 곡을 말 그대로 엿 바꿔 먹은 (엿은 아니었겠지만) 형 WF와 다르게, CPE 바흐는 평생 최선을 다해 아버지를 홍보했다. 1788년 CPE 바흐가 사망하고, 그런 CPE를 존경했던 하이든까지 죽은 1809년, 지금의 우리가 아는 바흐를 만들어줄 작곡가가 태어났다.
*2024년 12월 05일 오후 12시 35분: 며칠 전 글을 발행하고 나서 바흐 마니아 친구에게 정정 요청이 몇 군데 들어왔다. 베토벤의 저 말은 아마도 CPE 바흐를 가리킨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JS바흐와 CPE 바흐 중 어느쪽인지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하이든이 죽은 1809년 태어난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은 바흐를 존경하는 스승 카를 프리드리히 젤터 아래서 작곡을 배웠고, 고모 또한 바흐의 제자 키른베르거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멘델스존이 12살이었던 1821년 멘델스존은 고모에게서 선물로 바흐의 '마태 수난곡' 악보를 받게 된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고, 갓 스물이 된 멘델스존은 젤터의 징아카데미에서 마태수난곡을 올리겠다는 결심을 한다. 멘델스존은 청중들을 위해서 지루한 부분은 개정하거나, 삭제하고, 축소하면서 원래 버전과는 다소 달라졌지만 그래도 바흐의 정수를 유지하고 있는 마태수난곡을 공연했다. 베를린의 청중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응답했고 공연은 꾸준히 매진이었다. 이후 1841년 멘델스존은 무삭제판 마태수난곡을 공연하며 바흐를 꾸준히 홍보했다.
물론 멘델스존보다도 바흐의 명성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 있지만 본격적인 바흐 발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사람은 멘델스존이었다. 이후 1850년, 로베르트 슈만 (17화 참고) 이 바흐 협회를 발족했고, 이 바흐 협회의 원래 목표는 바흐의 모든 곡들을 개정하고 출판하는 것이었으나 1900년 무렵 이 목표가 달성되며 '신-바흐 협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협회의 세 가지 목표 가운데 하나가 바흐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었다. 앞서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과 클라라 슈만, 프란츠 리스트 등의 공헌으로 기념 동상도 세웠고, 바흐가 살던 집에 '이곳에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태어났음'이라는 동판도 붙였으니 이제 박물관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원래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학교에 지어질 계획이었던 박물관은 라이프치히 시에서 성 토마스 학교를 철거해 버리며 취소됐고, 대신 아이제나흐에 바흐 박물관이 세워졌다. 역시나 요제프 요아힘이 개관식에 참석했고, 그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제나흐 바흐 박물관은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바흐 관련 소장품을 많이 가진 바흐박물관으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간 방문객 60000명이 넘는 바흐 박물관에 얽힌 역사는 바흐가 얼마나 후대 음악가들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제프 요아힘(1831~1907):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멘델스존의 학생이자 브람스의 친구였다. 브람스 박물관에서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는 "고독하지만 자유롭다" "자유롭지만 고독하다" 모토를 브람스와 함께 썼던 친구.
역사에 관한 짧은 전시를 보고 뒤로 돌면, 웬 유리커버에 보호되어 있는 문짝이 있다. 웬 문짝이 있나 싶어 봤더니 1902년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학교가 헐리면서 그곳에 있던 바흐 집 문짝을 통째로 뜯어와 보존한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나올 멘델스존하우스에서 멘델스존 하우스를 보수하며 원래 집의 못을 뜯어와 전시 중이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독함이었다. 역시 진심 어린 '팬' '마니아' 또는 '오타쿠'들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사람의 흔적이 남은 것이면 아끼고 사랑하고 보존하는 습성이 있는 모양이다. 1902년 사람이더라도. 라이프치히에서 가져온 문 원본을 지나가면 옛 바흐하우스가 나온다. 박물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바흐가 살던 옛 집, 특별전시관과 신관 이렇게. 전시는 옛 집 쪽에서 시작한다. 전시실에서는 앞서 나온 바흐협회 이야기에 더해 바흐 박물관이 어떻게 건립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는데, 그 내용은 내가 위에 대략적으로 요약해 놓았으니 넘어가겠다. 또 개관 당시 기증받은 시대악기들 (바흐와 동시대, 약 1700년대의 악기들) 이 전시되어 있다. 흥미롭게 생긴 각종 관악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현악기도 있었지만, 클래식과 관련된 악기라고는 몇 년 쳐 본 피아노와 유치원 때 억지로 1개월 배웠던 바이올린이 전부였던 내게 시대악기는 그다지 흥미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도, 1시가 되자 열린 문을 향해 돌진하긴 했다. 아이제나흐 바흐박물관의 티켓은 다른 박물관 티켓들에 비해서 굉장히 예술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박물관들과 비교했을 때 정보값이 하나 더 담겨 있다. 입장하자마자 발급되는 티켓에는 "11:00, 12:00, 13:00"처럼 시각이 찍혀 있다. 이 시각이 바로 옛 건물 1층에서 매 시간 열리는 연주회의 시각이며, 손에 들린 티켓에 찍힌 시각은 그 시각 타임의 연주회를 들으러 가면 된다는 뜻이다. 나는 열두 시 반 언저리에 바흐하우스에 도착했기 때문에 13:00 티켓을 받았다. 평상시에는 잠겨 있는 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진열장에 시대악기가 아무리 못해도 열 개는 넘게 진열되어 있고, 소규모 공연장이 늘 그렇듯 부채꼴 모양으로 놓인 의자 맞은편에는 클라비코드, 오르간 계열의 악기가 네 대 놓여 있다. 정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박물관 직원 분께서 와서 각각의 악기를 연주해 주신다. 설명도 많이 해주시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전부 독일어로만 해주신다. 이런... 하긴 아무리 바흐 팬이라고 해도 라이프치히 선에서 끝내지 아이제나흐까지 가지는 않기 때문인 걸까. 스피넷으로 시작해 클라비코드 두 대를 연주하고, 마지막 순서가 하우스 오르간이다. 하우스 오르간을 연주할 때는 한 사람이 옆에서 발을 계속 움직여줘야 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원자를 받는데, 시대악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대악기 위에 발 올려보는 것보다 짜릿한 일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악기들의 소리야 당연히 내게는 생소했고 기묘했다. 늘 영화나 음반에서만 듣던 소리를 현실에서 들으니 무척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옛날 악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매시간 연주하신다는 점은 더 신기했다. 원래 악기는 연주하라고 있는 것이지 전시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고, 쇼팽 박물관 인스타그램을 팔로해 두면 때때로 '쇼팽이 쓰던 악기를 연주해 보았다' 릴스가 올라온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건 뭔가 특별한 감시 하에서 삼엄하게 진행되는 행사 같은 반면 바흐박물관에서는 18세기 인테리어 그대로인 방에서 18세기 악기들을 매 시간, 별 다른 관리감독도 없이 연주하니 (물론 박물관 직원 분이 감독이시겠지만) 그저 탄성만 나왔다. 사람들이 입은 옷을 빼면 모든 것이 바흐 시대의 것처럼 느껴졌다. 영어 지원 따위는 고민도 하지 않고 독일어로 말하는 것도 평생 독일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바흐답고 바흐박물관다운 이벤트 진행이었다.
20분 정도 시대악기 연주회가 끝나고 나면 2층으로 올라가... 는 게 아니라 정원으로 나가서 1~2분 정도 거리에 있는 다음 방으로 이동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내가 갔을 때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 바흐박물관에서는 친절하고 사려 깊게도 이 방에서 다음 방으로 이동하는 사이 관람객들이 비를 맞을까 봐 우산꽂이를 비치해 두었었다. 우산꽂이 속 우산은 바흐 악보를 프린팅 해놓은 우산이었다. 바흐 팬이라면 한두 개쯤 사도 나쁘지 않을 장우산이다. 나야 우산이 있었기 때문에 따로 쓰지는 않았지만, 이 구관 전시실에서 우산을 집어 들고 특별전시실로 들어가면서 우산을 반납하면 된다. 바로 맞은편에는 전형적인 팀버프레임의 독일 가옥이 있고 낮게 깔린 잔디 가장자리를 자잘한 돌로 둘러놓은 작은 정원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작은 정자도 하나 있는데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더 자세히 둘러봤을 것 같은 곳이었다.
다음 전시실 두 개는 연속으로 특별전시실이다. 특별전시실은 아까 전의 시대악기 연주실과 연결되어 있지만, 평소에는 시대악기 연주실에 출입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정원을 돌아가는 루트가 일반적이게 된다. 바흐박물관은 매년 '바흐와 여성' '바흐와 루터' '바흐의 초상화' '바흐의 두개골' 등등 다양한 테마로 특별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내가 갔을 때는 바흐의 평균율에 관한 전시를 하는 중이었다. 평균율, 평균율 하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어도 평균율이 뭔지 잘 몰랐던 내게 바흐박물관은 어린아이에게 이유식을 떠먹여 주는 것보다 친절하게 조율법, 평균율 이전의 순정률과 순정률의 문제, 그리고 순정률을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새로운 방법인 평균율, 그리고 평균율에 감동을 받아 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까지 매끄럽게 이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라면 순정률과 평균율 정도는 다 알고 있겠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피타고라스가 말한 대로 정수비로 진동수를 조절하면 정작 옥타브에서 두 개 음이 달라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불협화음이 생겨 조성이 바뀔 때마다 조율을 새로 해 주어야 하는 문제가 생겼던 것이 순정률이었다. 평균율은 이 정수비를 포기하고 음정 간격을 전부 동일하게 나눈 것으로, 진동수가 정수비가 아니라서 아주 예민한 사람이면 눈치를 챌 수도 있겠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 정도가 되게 함으로써 모든 조성을 하나의 조율만으로도 그럴싸하게 들리게 하는 조율법이었다. '평균율 곡집'이라고 할 때 늘 평균율이 뭔지 궁금해하기만 하고 찾아보지 않았던 내게 딱 맞는 눈높이 설명이었다. 작은 피아노를 눌러서 순정률로 조율했을 때의 음과 평균율로 조율했을 때의 음을 직접 들어 차이를 느껴볼 수도 있었다. 바로 위층에는 흔히 각 음계에 연결된다고 생각했던 색 이야기와, 바흐의 평균율에 영감을 받아 16명의 작곡가가 작곡한 각 조성별 곡을 들을 수 있는 리스닝 스테이션이 있다. 베토벤, 슈만 부부, 리스트처럼 우리가 이미 기행에서 만나 본 작곡가도 있고 쇼팽, 파니 멘델스존처럼 나중 기행에서 보게 될 인물도 있으며 스크랴빈, 쇼스타코비치, 라흐마니노프처럼 우리 기행에서는 만나볼 수 없지만 익숙한 작곡가들도 있었다. 바흐에게 영향을 받은 작곡가들을 이렇게 한 곳에 모아놓고 보니까 전에 참 구식이라 생각했던 '음악의 아버지' 별명도 갑자기 무척 잘 어울리는 별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벽 두 면 하고도 절반 정도가 작곡가마다 다른 색으로 세로로 길게 칠해져 있는 패널들로 덮여 있어 그 사이에 서자 숲 속 거목에 둘러싸인 듯한 압도감과 장엄함마저 느껴졌다. 박물관 층고가 높지도 않고 그리 화려한 전시도 아니었는데도!
내 마음에 쏙 들었던 특별전시-이 특별전시를 할 때 가서 다행이었다-를 지나고 나면, 1층에서 바흐 박물관 이야기와 바흐가 태어나기 전 집 이야기는 충분히 했으니 드디어 바흐의 인생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제나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바흐가 아버지 일을 돕느라 학교를 자주 빠진 이야기처럼 소소한 이야기도 확인할 수 있고, 바이마르, 쾨텐, 라이프치히를 지나며 바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잘 설명해 준다. 또 CPE 바흐가 가지고 있어 예전에 바흐의 안경으로 생각되었던 안경도 전시되고 있는데, 그 진위여부는 불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바흐의 인생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1000페이지가 넘는 전기를 읽고 왔기 때문에-그리고 바흐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 덕분에 삼투압으로 좀 전해 들은 내용도 있기 때문에-많이 흥미롭지는 않았다. 원래 인생사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작곡가의 박물관에 가면 인생사 자체에 대한 내용은 재미가 없어진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의 반복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작곡가들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전시형태라서 인생에 대한 지도를 어느 정도 그릴 수 있게 해 주겠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따분한 큐레이션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해 보는데 아직도 머릿속에서 해결이 안 됐다.
물론 바흐박물관에서 인생사를 따라가는 부분은 일부분이다. 특히나 인생사를 따라가다가 중간에 있는 새까만 방에 들어가면서 인생사 전시의 흐름을 한 차례 기분 좋게 끊어주기 때문에 숨을 약간 돌릴 수 있다. 2017년 새로 생긴 이 전시실은 바흐의 신학 도서관이라고 하는데, 바흐는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고 다양한 성경 관련 장서들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직접 가장자리에 이런저런 메모를 끄적이기도 했다는데 박물관에서 전시한 몇십 권의 책 가운데 대부분은 같은 판본일 뿐이고 한 권만 진짜 바흐 소장 도서다.* 영어 설명으로 어떤 책인지 열심히 찾아보려고 했지만 신학 관련한 어휘가 너무 많이 나오는 바람에 확고한 무신론자인 나의 머리는 핑핑 돌았고 끝까지 어떤 책인지는 찾지 못했다. 가장자리에 바흐가 직접 메모를 하기도 하며 열심히 읽은 책이라고 하는데, 기도서, 성경, 성경 해석서 등 다양한 도서가 있다고 한다. 신앙의 압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바흐박물관의 전시는 당연하게도, '종교 믿으세요!'가 아니라 '바흐가 이런 것도 연구했고, 이런 것도 연구했는데, 우리는 그 바흐가 연구한 내용을 보면서 바흐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도서는 이런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고 우리가 이 장서를 입수한 경로는...'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하긴, 나였더라도 종교 없는 바흐는 팥 없는 찐빵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무슨 마음으로 신을 믿었는지 알 수는 없어도 바흐가 종교를 믿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바보 같은 무신론자가 놓친 내용이 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어서 독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고 아이제나흐로 달려가 주시기를.
*2024년 12월 05일 오후 12시 35분: 마찬가지로 바흐 마니아 친구가 정정했다. 해당 도서 원본은 현재 이곳 박물관이 아닌 미국에서 소장중이라고 한다. 궁금한 사람은 바흐의 칼로프 성경 주석이라고 찾아보기를 바란다.
바흐의 인생사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나면 바흐의 가정생활이 나온다. 바로크 작곡가라서 가뜩이나 자료가 없는 판인데 거기다가 바흐 본인도 딱히 기록을 많이 남기는 성격이 아닌 바람에 바흐의 개인사를 캐내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왕 아들 CPE 바흐와 지독하다 못해 징그러운 집념의 소유자 바흐 연구가들 덕분에 소소한 정보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정보 두 가지는 모두 바흐의 아내 안나 막달레나와 관련된 정보인데, 새와 당시 희귀 품종이던 노란 카네이션을 좋아하던 안나 막달레나를 위해 바흐가 어렵사리 새와 노란 카네이션을 구해 다녔다는 내용이었다. 바흐, 고지식한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고지식한 남자답게 본인 아내가 좋아하는 건 또 해줘야 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수채화로 그려진 바흐 아들들의 초상화를 지나 바흐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18세기 전형적인 부엌과 침실과 서재의 물건들 가운데 실제 바흐의 유품은 없고, 모두 18세기 동시대 가구라고 한다. 그래도 독한 바흐연구자들이 최선을 다한 티가 났다. 특히 바흐의 서재는 1740년대 라이프치히 근무시절 바흐의 방 크기를 가늠해 보고 구조를 최대한 재구현한 것이라고 한다. 날이 흐려서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갔던 하이든 박물관이나 바그너 박물관보다 훨씬 어둡고 갑갑한 느낌이었다. 어두운 갈색 바닥 인테리어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바흐의 상징색은 검은색이나 어두운 갈색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신관으로 가는 복도로 가기 전 부엌 앞, 서재 옆에 일명 '하트나무 가계도'가 있다. 바흐 가문 사람들을 마치 복숭아를 닮은, 하트 거꾸로 엎어놓은 과일이 달린 '나무'에 매달아 둔 것인데 (영어로 가계도는 family tree, 가족 나무라고 불린다. 때문에 나무로 형상화된 가계도가 종종 보인다. 독일어로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 곡선적이고 꼬부랑한 모양이 바흐의 꼬부라진 음표 쓰인 악보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물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본인이 만든 가계도는 아녔지만.
이제 신관을 보면 전시가 대충 마무리된다. 신관으로 올라가자마자 우리 눈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일명 '버블 의자' 들이다. 1968년 핀란드 디자이너 Eero Aarnio 가 만든 '버블 의자'는 과일을 자르고 그 속을 파낸 것처럼 생긴 투명한 의자인데, 속에 들어 있는 검은 쿠션 위에 앉으면 생각보다 폭신해서 전시를 관람하느라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집중력이 물에 들어간 휴지처럼 사르르 풀린다. 다섯 개의 의자는 각각 "작곡하는 비르투오소" "상상력 넘치는 완벽주의자" "살아 있는 선생님" "음악의 선교사" "개혁가 겸 창조자"라는 시선에서 바흐를 조망하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하프시코드 협주곡 A장조 등의 곡을 하나씩 골라 들려준다. 의자 한쪽에는 앨범에 동봉된 작은 설명서 같은 것이 들어 있는데, 이 책자에 적혀 있는 내용이 전시내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래위로 달려 있는 사슬이 움직이는 범위 하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있듯 앞뒤로 몸을 조금씩 움직이면 평화롭고 포근한 기분이 든다. 시각적으로 굉장히 미래적인 디자인을 뽐내는 의자라서 그런지 아까까지 있던 곳이 바흐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면 이곳은 바흐의 '미래'를 다루겠다 선언하는 것 같았다. 미래의 바흐를 상징하는 하나의 표지와도 같은 구조물로 느껴진 셈이다.
신관 전시실은 구관과 달리 방이 따로 나뉘어 있는 느낌은 없고, 하얗고 거대한 방이다. 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바흐의 초상화 진위여부와 바흐 연구 역사, 바흐 연주와 해석 역사 정도로 나누고 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어떻게 바흐를 보는가" "어떻게 바흐를 아는가" "어떻게 바흐를 연주하는가"라는 테마로 나뉘어 있는데 아주 재미있는 테마명이다.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원기둥 주변으로는 바흐의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트리비아가 설명된다. 의자 앞 놓인 화면을 누르면 각각의 설명이 재생되는데, '바흐 잔' (Bach Goblet) 은 누가 준 것인지를 잔의 모티프와 관련지어 '게'라는 성을 가진 바흐의 제자 Krebs가 주었을 것이라고 어떻게 추측하게 되었는지, 프리드리히 대제와 바흐 사이 오고 간 '음악의 헌정'은 과연 왕을 칭송하는 의미일지, 아니면 전쟁 좀 그만하라고 꾸짖는 의미일지 같은 '연구' 과정이 나와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흐 캐논'을 푸는 법이었다. 바흐의 가장 유명한 일명 '바흐흑' 초상화를 보면 바흐는 작은 종이쪼가리를 손에 들고 있다. 이 초상화는 바흐가 음악협회에 가입하기 위한 조건이었던 '초상화를 제출할 것, 그리고 가입을 위해 새로 작곡한 곡 한 곡을 보낼 것'을 충족하기 위해 그린 초상화로, 분명히 6명을 위한 곡이라면서 줄이 3개밖에 없다. 이 캐논은 거울처럼 뒤집어서 해석을 해야 한다는데, 나는 음악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 과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해독 과정을 보며 연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걸 보는 사람 풀라고 만든 거라니. 초상화를 보면 바흐는 '풀어봐라'라고 말하듯이 우리 쪽으로 악보를 보여주고 있다. 초상화 하나에 그렇게 많은 수수께끼를 숨겨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는 바흐가 그 협회의 14번째 멤 버리고 금색 버튼이 14개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캐논을 잘 뜯어보면 이미 명예회장이었던 헨델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는데... 대단한 사람이다. 거기다가 B-A-C-H는 알파벳에서 각각 2, 1, 3, 8번째 글자라서 2+1+3+8=14가 곧 '바흐 넘버'라고도 불린다니 14가 중의적 의미인지도 모른다. 바흐... 정말 이 모든 걸 의도했던 걸까? 치밀하다. 감탄이 나왔다. 꿈보다 해몽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바흐를 연주하는가'로 넘어가기 전 잠깐 또 다른 영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건 바흐를 '어떻게 연주하는가' 문제와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니 말이다. 위에서 한참을 이야기했던 마태수난곡 이야기가 바흐 박물관에서도 나온다. 덕분에 나는 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 얼굴을 잠깐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고 말이다. 미디어 스테이션이 둘러싸고 있는 원기둥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음악이 재생된다. '마태수난곡'이었다. 바흐의 화려한 역주행송! 나는 분명히 전부 다 들은 적이 있는데, 감흥이 없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검은 원통 안에 들어간 채로 마태수난곡을 들을 때 마치 바흐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바흐 박물관은 검은색을 참 잘 활용해서 압도감이나 감동을 주고 싶은 순간마다 원하는 효과를 잘 달성하는 것 같다. 그리고 기둥에, 악보가 하나 있었다. 누군가의 자필 악보였다. 내 눈에 무척 익숙한 손글씨였다. 무려 멘델스존이 직접 써 놓은 마태수난곡 개정판 악보였다! 자필! 정말 바흐박물관 사람들, 관람객이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구나. 아, 이 검은 벽 한가운데 대작곡가의 악보라니! 150페이지 정도 중 60페이지를 바흐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라고 한다. 골뱅이처럼 말린 안단테의 'd'라든가, 옆으로는 짧고 위아래로는 길쭉한 필체가 영락없는 멘델스존 악보였다! 사실 평균율 곡집 특별전시실에 멘델스존이 없어서 좀 아쉬웠는데 그래, 멘델스존은 특별전시는 무슨 상설전시에 있는 게 맞을 정도로 바흐 팬이었던 거다!
언제나 그렇듯 또 멘델스존 이야기가 나오자 흥분했다. 바흐를 어떻게 연주하는가 섹션에서는 멘델스존 시대의 바흐 이야기부터 낭만주의 후기 시대 해석된 바흐, 20세기 초반 재즈로 해석된 바흐와 글렌 굴드가 해석한 바흐, 현대의 바흐, 시대연주 바흐까지 다양한 해석을 보여준다. 바흐에 대해 잘 모르니 다 '그렇구나' 하고 보던 나였지만 'Bach Goes to Town'이라는 곡은 꽤 인상 깊었다. 1930년대에 스윙으로 바흐를 재해석한 곡인데 '스윙인데?' 하다가도 '바흐인데?' 해서 자꾸 고개를 갸웃갸웃하게 되는 곡이다. 최근 레드벨벳이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한 것도 언젠가는 이 박물관에 전시될까 궁금해졌다. 아래에 "Bach Goes to Town"을 링크로 첨부하니 궁금한 분들은 클릭해 보라.
"Bach Goes to Town" by Alec Templeton - P. Barton, piano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눈앞에 바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컴퓨터로 재해석한 디지털 아트가 보인다. 컴퓨터 에러화면처럼 보이기도 하는 작품과 관람의 시작을 알린 바흐 집 문짝을 비교해 보면 우리가 바흐 박물관에서 얼마나 긴 시간을 헤쳐왔는지가 보인다. 17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간의 바다를 헤엄쳐서'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겠다. 구관과 신관의 분위기가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신관에서 구관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조금씩 조금씩 현대에 가까워져 다시 내 시간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한 기분이었다.
바흐 박물관의 장점이 바로 그것이다. 바흐는 살아서부터 인기가 있던 작곡가도 아니었고, 최근에서야 발굴된 작곡가도 아니다. 그렇기에 바흐의 음악에는 역사가 있다. 과거에서부터 바람과 시간을 타고 화살처럼 날아가, 멘델스존의 19세기를 지나고, 쇼스타코비치의 20세기를 지나, 내가 살고 있는 이 21세기-아직 그 화살이 떨어지지도 않고 하늘을 날고 있다. 그 화살이 어디로 향할지, 바람을 타고 어떤 방향으로 날아오를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아주 잠깐 멈춘 순간의 화살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바흐의 음악은 과거의 음악도 현재의 음악도 미래의 음악도 아니다. 그냥 역사의 음악이다. 바로크의 전통을 따른다기에는 종종 바로크적이지 않고, 낭만주의적이라기에는 담담하며, 현대의 음악이라기에는 과거의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바흐는 참 특이하고 매력적이며 독보적이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담긴 바흐의 음악에는 어떤 꼬리표를 붙일 수가 없는 듯하다. 바흐의 음악이 그렇듯이, 바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충실하게 함께 따라가고 있는 바흐 박물관의 미래도 무척 기대가 된다.
명칭: 바흐하우스 아이제나흐 (Bachhaus Eisenach)
운영시간: 휴관일 없음, 매일 10:00~18:00
입장료: 성인 12.5유로, 할인가 7.5유로
사이트 링크: Home | Bachhaus Eisenach - Museum der Neuen Bachgesellschaft e.V.
역에서 걸어 20분, 중심지에서는 10분 정도. 살짝 오르막길에 위치해 있다.
바로크 작곡가 박물관치고 힘냈다. 바흐 집 문짝을 뜯어오고, 바흐가 받은 기념 잔도 가지고 오고, 바흐 자필보도 몇 개 있고, 멘델스존의 마태수난곡 악보도 있고, 바흐의 성경도 있고... 긁어올 수 있는 건 뭐든지 긁어온 연구가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돋보인다.
대부분이 영어로 지원되고 있다. 오디오가이드는 별도로 없다. 미디어 스테이션도 딱히 오류 없이 영어로 전부 재생되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크게 있지는 않겠지만, 시대악기 시연회는 전부 독일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독일어를 잘하는 친구를 한 명 데려가면 연주회만큼은 두 배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어랑 영어 설명이 모두 지원되고 있지만 두 언어 다 안 될 경우... 프랑스어랑 일본어 설명을 유료로 구입할 수도 있다.
그나마 바그너박물관의 규모에 미치는 박물관이다. 신관과 구관이 약 2~3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관이 꽤 규모가 있다. 역시 바흐다! 독일의 '바' 씨들은 박물관을 다 크게 짓기로 합의한 모양이다.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3~4시간은 우습게 쓸 수 있는 곳이고 나도 2시간 이상은 걸렸다. 꽤 대충 돌아본 편인데도 말이다.
버튼을 눌러서 설명 듣기, 음악 미디어스테이션, (특별전시 중) 평균율과 순정률의 차이 알기, 슬라이딩 퍼즐 맞추기 등 체험이 군데군데 있었다. 3점을 줘야 했겠지만, 시대악기 시연회에서 (독일어만 잘한다면) 질문도 해 보고 그곳 직원 분께 이런저런 질문을 해 살아 있는 정보를 더 얻어갈 수도 있으니 0.5점을 순전히 티켓값에 포함된 이 연주회 때문에 더 줬다.
약간 의문스러운... 바흐 와인이라든가, 바흐 넥타이 같은 굿즈가 있긴 하지만 원래 다다익선인 법 아닌가. 바흐 악보 손수건, 바흐 아들들이 그려진 엽서, 바흐 엽서, (박물관 전시품 사진 하나 넣어둔 것보다 훨씬 괜찮은 그림도 몇 개 있다) 다양한 종류의 바흐 오르골-특히 상자로 된 오르골이 무척 예쁘다- 거기에 바흐 리코딩이야 물론이고 바흐 관련 각종 도서, 바흐로 하는 구멍 세 개에 구슬 넣기 게임... 이라든가, 바흐 플레이모빌까지 다양한 굿즈가 전시되어 있다. 바흐 플레이모빌은 라이프치히에서도 팔지만 난 아이제나흐에서 사고 싶었다. 그리고 바흐박물관에서도 바흐 에코백을 팔고 있는데, 우리가 익숙한 두꺼운 캔버스 느낌의 에코백은 아니고 섬유가 꽤 성기고 약하다. 그래도 어디 갈 때 '나 클래식 좋아합니다' 하고 자랑하며 분위기 있게 들고 다니기 좋아서 한국에 들어온 이후 종종 가지고 다니는 중이다.
5점을 줄까 고민해 봤지만 역시 바흐박물관의 큐레이션을 따라갈 만한 작곡가박물관을 찾기란 어려운 일일 것 같아 1점을 더 줬다. 박물관의 역사부터 시작해 바흐의 인생을 따라, 훌륭한 테마를 포착한 특별전시에 이어, 바흐의 가정과 일상생활로 넘어가고, 바흐의 신앙 이야기도 한 번 건드려준 다음, 신관에서 바흐의 초상화-바흐 연주-바흐 연구 역사-바흐 트리비아까지 바흐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그야말로 "바흐에 관련된 것이면 뭐든지 모은다"라는 협회 신조에 맞는 박물관이어다. 훌륭하다! 정말 훌륭하다! 모든 박물관이 바흐 박물관을 본받고 또 본받아야 한다! 역시 최고(最古), 최고, 최대의 바흐박물관이다. 거기에 마태수난곡이나 바흐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때처럼 무게감이나 압도감을 주어야 하는 상황에 전체적인 박물관의 하얀색과 대조되는 검은 색감을 적절히 활용한 것이 박물관의 감동을 더했다. 6점!
명성에 걸맞은 박물관. 독종 바흐 연구가들이 얼마나 바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가 엿보인다.
바흐박물관에서는 온라인 3D 투어를 지원하고 있다. '이런 걸 너만 보다니 비겁하다'라고 말하고 싶으신 분께서는 위안 삼아 온라인 투어나마 해보시는 게 어떨까.
3D tour | Bachhaus Eisenach - Museum der Neuen Bachgesellschaft 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