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뜨거운 여름, 남편과 나는 미국 서부로 보름 간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결혼 2년 차인 우리는 마치 두 번째 허니문을 떠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기쁘고 설렜다.
교사인 나는 겨울 방학과 여름 방학 기간을 이용하면 언제든 긴 여행을 떠날 수 있었지만, 회사원인 남편은 그동안 휴가를 길게 쓸 수 없었는데 올해는 회사에서 재직 4년을 채워 장기근속휴가를 받게 된 덕이었다.
"임신하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 둘이 장기여행을 떠나는 거야."
나와 남편은 동갑내기 부부로 나이는 만 34세이다.
요즘엔 고령 임신과 출산이 많기에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들 하지만 생물학적 노산의 기준에 임박한 그리 적은 나이도 아니다.
계획적인 성격의 남편은 1년 전부터 들뜬 마음으로 미국 여행을 계획했다. 나는 생물학적 노산의 나이에 임박하다 보니 여행보다는 2세 계획을 더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마음이 살짝 급해졌다.
하지만 남편의 장기 휴가는 매번 있는 기회는 아니고, 아기를 낳기 전 우리 둘만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결론을 내려 미국 여행을 다녀와서부터 본격적으로 임신 준비를 해보기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여행 다녀와서 바로 임신 시도를 하기 위해 여행 가기 한 달 전부터 산부인과에 방문하여 배란초음파를 보고 자궁상태를 확인했으며 평소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어 배란주기가 불규칙했기 때문에 배란유도제를 먹으며 생리 주기를 맞추었다. 그리고 미국에 있을 동안 먹을 배란유도제 약도 미리 처방받았다.
우리 부부는 둘 다 MBTI 맨 끝자리가 J인 계획적인 성격인데, 이번에 남편은 여행 계획에 몰입하고 나는 임신 계획에 몰입하였다.
8월 3일부터 18일까지 미국에 머무는 도중에 계획한 대로 나는 생리를 하였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배란기에 들어섰다. 돌아오자마자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를 보고 배란을 촉진하기 위하여 배에 맞는 배란유도 자가 주사도 처방받았다.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집에서 배주사를 놓고, 또 다시 병원에 가서 난포의 성숙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배란이 예상되는 숙제일을 받아 계획한 날에 성실히 숙제를 하였다.
그리고나서 열흘 정도 후, 9월 6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임신테스트기를 해보았다. 일반 임신테스트기보다 적은 양의 임신호르몬에도 반응하는 얼리 임신테스트기였다. 첫 시도였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보다는 '과연?' 하는 호기심이 더 컸다.
결과는 흐릿하긴 하지만 명확한 두 줄이었다!
얼떨떨하여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자기야, 임신인가 봐!!!!"
이렇게 빨리 그것도 한 번에 찾아와 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 기쁘고 행복했다.
'이게 맞는가?'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이렇게 임신이 쉽다고...? 말로만 듣던 한방이?!'
2024년 하반기 목표를 '임신'으로 잡고 이제부터 열심히 달려보자고 막 출발선을 달리기 시작했는데, 한 순간에 결승점으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었다.
"너는 벌써 효자구나.. 혹시 너도 J(계획형)이니?"
어슴푸레한 새벽에 희미한 두줄이 된 임신테스트기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내년 5월, 따뜻한 새 봄날에 태어날 아가를 기대하며..'어쩜, 계절도 시기도 완벽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뿐이긴 했지만 배에 맞는 배란유도 자가주사가 무서워 남편에게 주사를 놔달라고 하며, '시험관 하는 사람들은 힘들겠다. 이런 주사를 아침저녁으로 열 개도 넘게 맞아야 한다던데... 임신준비가 길어지면 몸도 마음도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찾아와 준 아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또 내가 생물학적 노산의 나이에 들어섰다는 압박감이 알게 모르게 나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런 나의 걱정들을 알았는지 보란 듯이 아기가 한 번에 찾아와 준 것 같았다...
엄마 걱정하지 말라고.. 긴 임신 준비로 몸도 마음도 고생하지 말라고... ㅠ
그렇게 네가 찾아 왔다. 계획한 대로... 아니 계획보다도 더 빨리..
아직 세포일 너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뭐든지 뜻대로 잘 되어가는 것 같았다.
너무 행복했고 기뻤다. 삶이 충만한 느낌이 들었다.
비록 임신 준비 기간은 짧았지만, 평생에 걸쳐 기다려온 무언가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