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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iya Aug 18. 2024

'지니' 왔니?

소원도 들어주니?

자발성 두개 내 저압증(뇌척수액 누출, CSF leak) : 뇌척수액이 흐르는 통로인 경막의 파열로 뇌척수액이 누출되어 뇌압이 낮아져 기립성 두통을 주로 하여 어지럼증, 구토, 복시, 눈부심, 이명 등 다양한 신경증상이 생기는 질환


   발병부터 5개월 동안은 낯선 질환에 대한 파악과 치료라는 목적이 있는 시간이었다면 완치 판정 후 약 8개월의 시간은 남편에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 없이 그저 견뎌야 하는 지난한 시간이었다. 휴직을 하고 온종일 집에 있으면서 남편은 두통과 시간과 매일 싸웠다.


아프기 얼마 전에 남편은 신나서 자기 서재를 꾸몄다. 책상이며, 책장이며, 리클라이너 소파며, TV에 내친김에 슈퍼싱글 침대까지 들여놓은 공간은 서재라기 보단 자기만의 멀티룸에 가깝지만. 여하튼 그곳은 남편이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내가 퇴근해서 올 때까지 머무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 되었다.  

   

답답하고 무기력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남편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자기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모든 것을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던 남편에게 이렇게까지 무언가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자기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경험은 서서히 여러 가지 것들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엄격하던 잣대가 많이 느슨해졌고, 물욕도 거의 사라졌다. '누구는 집 값이 얼마가 됐다더라', '누구는 처가에서 XC90을 사줬다더라', '누구는 와이프 연봉이 1억이 넘는다더라'... 등의 남의 집 경제상황이 별로 궁금하지 않은 나로서는 듣기 거북했던 말들에서 드디어 해방될 수 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렇다고 해도 이건 조금 파격적이었다.   

  

“나 이제 두통을 겁내지 않고, 친구처럼 생각하기로 했어.”     


어어... 그래?     


“이름도 지어줬어."


"이름이 뭔데?"


" ‘지니’야.”     


(걔는 요술램프에 사는 애 아닌가?) 왜 하필 ‘지니’야?”     


“몰라. 그냥 떠올랐어.

 어, 방금 ‘지니’가 왔어.”     


지긋지긋한 두통과 친구처럼 공존하기로 했다는 남편의 고백을 듣고, 나는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뇌척수액 누출로 경막하출혈이나 치매가 올 수도 있다던데... 아니면 우울증이 너무 심한 건가?’               

   






   나 역시 편두통 환자라서 두통이랑 잘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친해지기는 어렵다. 그래도 나의 두통은 약이 듣기 때문에 올 기미가 보이거나 약하게 시작됐을 때 나는 처방받은 약을 먹어서 없앤다. 그러지 않으면 두통이란 놈은 이틀이고 사흘이고 내 머리에 붙어서 속도 메스껍게 하고 종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런 통증과 동행이라니...


‘지니와의 사이좋은 동행'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남편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던 행보였다. 며칠 후 남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두통을 ‘웬수’처럼 취급하고 쫓아낼 방법 찾기에 골몰했다. 다행이었다.


 ‘그래, 이제야 내 남편 같다.’


역시 사람의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본인이 완치가 아니라고 진즉부터 단정지은 남편은 수술 가능 여부에 상관없이 일단 독일의 프라이브루크 대학병원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병원 시스템과 수술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그러면서 당장에 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함께 근무했던 회사 선배가 알려준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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