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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냉이 된장찌개, 우리의 해피엔딩을 향하여

by 채움



#1.

오늘의 아침 메뉴는 냉이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부엌을 가득 메우고, 평소보다 일찍 찾아온 봄내음이 집 안을 향긋하게 채운다. 냄비 위로 피어오르는 김, 주방에 스며든 냉이 향, 이른 봄날이 그릇 안에 담긴 듯하다.


남편은 지금까지 먹었던 된장찌개 중 단연 1등이라며 "이야~!" "키야!" 감탄사를 연발한다. 머쓱한 듯, 코를 훔치다가도 나도 모르게 어깨가 올라간다.


다른 음식도 아니고, 된장찌개로 이렇게 칭찬을 받다니. 된장찌개야말로 집밥 음식의 끝판왕 아닌가!

이쯤 되면 부엌에서 하산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된장찌개 하나로 대박이 나 건물을 올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어쩐지 남의 얘기 같지 않다.


된장찌개는 밥상에 자주 얼굴을 비추지만, 결코 만만한 음식이 아니다.

어릴 적, 엄마가 끓여주시던 된장찌개는 늘 '툭툭'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는데, 툭툭 재료를 썰어 넣어도 맛은 늘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휘날리던 앞치마, 둔탁한 도마 소리, 손보다 빠른 칼놀림. 재료를 손질하는 엄마는 늘 부엌의 고수 같았다. 어린 나는 그 모습이 세상 멋져 보였고, 된장찌개 하나를 제대로 끓일 수 있어야 비로소 부엌의 진정한 요리사가 되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혼자 부엌에 서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도전한 것도 된장찌개였다. 그러나 엄마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호기롭게 도전한 시도들은 번번이 허탕이었다. 어떤 날은 뭐가 하나 빠진 듯 간이 심심해서, 어떤 날은 생각지도 못하게 짜서, 또 어떤 날은 찌개가 아니라 국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된장찌개니까 쉽겠지.'라는 생각은 경기도 오산이었다.


된장찌개의 핵심은 결국 된장.

풍미를 위해 차돌박이나 게, 바지락 등으로 힘을 주지만, 바탕이 되는 된장이 맛있으면 게임은 끝이다. 좋은 된장 하나가 여러 재료들의 멱살을 잡고 찌개의 맛을 끌고 가는 것이다.


오늘은 맛있는 된장과 더불어 특별히 '냉이'라는 치트키까지 더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거침없이 자라는 냉이는, 뿌리부터 잎까지 버릴 것이 없다. 게다가 약재로도 쓰이는 풀이라고 하니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가히 놀랍다.

이 재능이 오늘의 아침 밥상에서도 깃들길 바라며, 엄마의 맛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반의 반만이라도 닮길 바라며, 기대 반 불안함 반으로 끓였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냉이 된장찌개>
*재료 손질
- 양파, 무, 버섯, 애호박 : 씻은 후 작게 썰기.
- 청양고추 : 씻은 후 어슷썰기.
- 냉이 : 씻은 후 시들거나 썩은 잎은 제거, 뿌리 부분은 칼 등으로 긁어서 정리 후 먹기 좋게 썰기.

*냉이 된장찌개 만들기
- 쌀뜨물이나 버섯 우린 물에 코인육수와 말린 새우가루를 넣고 끓여준다.
- 된장(1~1.5)과 토장(1)을 섞어 풀어준다.
- 손질한 채소들을 넣고 끓이다가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넣는다.
- 냉이와 두부를 넣어 마지막으로 끓인다.

*냉이는 자르지 않고 그대로 넣어도 괜찮습니다.
**된장을 섞어서 넣어도 괜찮습니다.




#2.

그러고 보니 냉이는 요즘 남편과 함께 빠져있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과도 닮았다.

노비 출신이던 여주인공이 외지부가 되어 사건을 해결하고, 억울한 이들을 구제한다는 이야기.

아직 완결은 나지 않았지만, 고난이 깊어질수록 더욱 빛나는 그녀의 모습은 잘 자란 냉이를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를 보며 우리는 자주 아이 이야기를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이와 떨어진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또 보고 싶다니.

아이가 세상의 풍파에 휩쓸려도 선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나는 냉이처럼 단단히 뿌리내리길 바란다. 그리고 그 단단한 뿌리 위에 해피엔딩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아이도 내가 끓였던 냉이 된장찌개를 추억하는 날이 오겠지.

어린 시절 내가 엄마를 보며 느꼈던 것처럼, 아이도 언젠가 나를 ‘부엌의 고수’라 부를지도 모른다.


그 시간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 해피엔딩의 조각들이 젠가(jenga) 탑처럼 아이 마음에 켜켜이 쌓여, 고된 날들을 버티게 해주는 작은 기둥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열린 결말이 아닌, 앞뒤로 새어나갈 틈 없이 단단히 닫힌 해피엔딩이기를.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냉이 된장찌개의 따스한 온기도, 그 조각들 중 하나로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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