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들려주는 사자성어 이야기
주머니 속(囊中)에 넣은 송곳(錐). 생각만 해도 몹시 불편할 것 같은데, 여기서는 불편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도드라지다, 또는 뛰어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평원군이 급히 인재를 찾자, 모수라는 식객이 스스로를 추천하며 나섭니다. 하지만 모수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던 평원군은 점잖게 타일러 모수를 물리려 했습니다. 평원군은 '인재는 마치 주머니 속 송곳과 같아 그 재능을 숨길 수가 없는데, 선생은 이름 한 번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이번 일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낭중지추가 나왔습니다.
에헴. 잘난 척을 위한 한 걸음 더..
기원전 260년. 진나라는 65만의 대군을 일으켜 조나라를 침공합니다. 조나라는 지구전을 벌이며 잘 버티고 있었으나 조나라의 왕이 전쟁에 개입하며 상황이 크게 꼬여 버립니다. 헛소문에 휘둘린 조나라 왕은 명장 염파를 조괄로 교체하는 희대의 악수를 두었고, 조괄은 무려 45만 장병을 잃는 대패를 당했습니다. 멸망 직전까지 몰린 조나라는 평원군을 사신으로 삼아 원군을 청하기로 합니다.
명을 받은 평원군은 사신으로 동행할 선비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모수라는 식객이 평원군에게 자기 자신을 추천하고 나섭니다. 평원군이 살펴보니 전혀 본 적이 없는 식객이라 이것저것 묻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뛰어난 선비는 주머니 속에 넣은 송곳과 같아서 도드라지게 표가 납니다. 선생은 3년간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으니, 적합한 인재가 아닌 듯합니다. "
그러자 모수 역시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오늘이라도 선생의 주머니에 들기를 청합니다. 만약 제가 주머니에 있었다면, 송곳 끝이 아니라 자루까지도 주머니 밖으로 나와 있었을 겁니다. "
모수의 재치와 패기에 호감을 느낀 평원군은 사신단에 모수도 합류시켜 초나라를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초나라의 고열왕과 평원군의 협상은 예상대로 지지부진했습니다. 조나라 전 병력이 몰살되었다는 소식이 초나라에도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고열왕이 엉거주춤한 상태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모수가 칼을 반쯤 빼고 올라 고열왕과 담판을 짓습니다. 한때는 천하를 노릴 만큼 강성하던 초나라가 이제는 진나라를 두려워하냐는 도발과, 조나라가 떨어지면 초나라는 무사하겠냐는 설득에 마침내 고열왕은 원군을 결심했고, 조나라는 겨우 겨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 맹호복초 | 猛虎伏草 (풀 숲에 숨은 사나운 호랑이) 역시 비슷한 뜻으로 쓰입니다.
두둥. 아쉬워서 더 써보는 확장판
진나라가 65만 대군을 일으켜 조나라를 치자, 조나라 역시 20만을 동원해 방어에 나섰습니다. 방어군을 지휘하는 염파는 진나라가 어금니 꽉 깨물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맞서 싸우는 대신 길목에 눌러앉아 버티기로 했지요. 진나라의 대장 왕홀이 방어선을 뚫어보려 연일 맹공을 퍼부었지만, 명장 염파가 틀어 쥔 길목은 열릴 기미조차 안 보입니다.
진나라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끝이 안 보이는 전쟁에 원정군 65만을 보급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 진나라는 슬슬 철군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철군하자니 좀 아쉽습니다. 진나라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찔러보기로 합니다. 염파를 직접 공격하는 대신, 조나라 조정을 파고들기로 한 것이죠.
얼마 뒤, 조나라 조정에는 이상한 헛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진나라가 염파는 좀 우습게 보는데, 조괄은 진짜 명장이라 두려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소문에 낼름 낚인 조나라의 효성왕은 곧바로 염파를 경질하고 조괄을 대장으로 세운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병석에 누워 있던 재상 인상여와 수많은 대신들, 심지어 조괄의 어머니마저 조괄은 장수의 그릇이 아니라며 상소를 올렸지만, 효성왕은 기어이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한 뒤, 남은 군사를 박박 긁어서 25만을 얹어 보냅니다. 조괄은 염파가 지휘하던 20만에 새로 받은 25만을 더해 조나라의 전병력 45만을 그대로 진나라의 함정에 쓸어 넣었고, 본인 역시 수많은 화살을 맞은 채 죽었습니다.
진나라 역시 고민이 많습니다. 진나라의 작전은 조나라 최고의 명장 염파는 대장에서 끌어 내리고, 진나라의 대장은 진나라 최고의 명장 백기로 갈아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작전은 멋지게 성공해 백기는 조나라를 깨트리고 포로 45만을 잡는 대승을 거뒀습니다만, 이번엔 너무 많은 포로가 문제가 됩니다. 진나라로 데려가자니 먹일 입이 너무 많고, 조나라로 되돌려 보내자니 그것도 곤란합니다. 백기는 나이가 어린 병사 240여 명만 살려 보내고, 나머지 포로는 전부 학살한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전 병력을 잃은 조나라는 초나라의 원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습니다. 말 그대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평원군은 초나라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자신과 동행할 선비들을 찾아 나섭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