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그렇더군요. 진심 어린 한마디
삶의 정상을 향해 지금 누구와 함께 하십니까?
문득 세상의 꼭대기에서 '최초'라는 영광을 양보한 두 남자가 떠올랐습니다.
자연이 가르쳐 주는 경외와 존중, 겸손과 배려, 그리고 우정을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들.
바로 텐징 노르가이(1914.5.15.~1986.5.9.)와 에드먼드 힐러리(1919.7.20.~2008.1.1.)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1953년 5월 29일,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직후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가 함께 찍힌 역사적인 장면입니다.>
"어서 와."
"친구가 먼저 올라왔으니 먼저 정상을 밟게."
"난 셰르파족이야. 우리에게 정상이란 없지. 모든 봉우리가 다 정상이야."
에베레스트 정상 바로 밑까지 30분 먼저 도착한 이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였습니다.
맘만 먹었으면 텐징은 세계 최초로 홀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설 수 있었죠.
그러나 텐징은 지쳐서 뒤처진 에드먼드 힐러리를 기다렸고, 먼저 정상에 오르게 하였습니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30분 이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습니다.
이전에는 아무도 오른 이가 없었죠.
세상의 꼭대기에는 두 사람만이 있었고 단 한 사람만이 사진에 찍혔습니다.
셰르파 텐징이었습니다.
텐징이 카메라 사용법을 몰랐기 때문이랍니다.
피켈에 단 영국, 네팔, UN 깃발은 등반사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힐러리는 텐징에게 정상의 사진을, 텐징은 힐러리에게 첫 발자국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들의 우정은 단순히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을 넘어,
진정한 동반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했습니다.
역사는 때때로 불공평하죠.
힐러리는 기사 작위를 받았고, 텐징은 훈장 하나에 그쳤습니다.
인종차별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은 ‘세계적 스타’가 되었죠.
단순히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보여준 겸손과 우정 때문이었습니다.
힐러리는 지금도 산악인의 대명사입니다.
뉴질랜드의 우상이며 세계의 존경을 받습니다.
단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아서가 아닐 겁니다.
평생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았기 때문이겠죠.
그는 네팔을 위해 학교와 병원을 짓기도 하였고 환경보호 캠페인에도 앞장섰습니다.
뉴질랜드 지폐 5달러짜리에 자신의 초상이 있을 정도였지만,
그는 평생 지극히 검소하였고 불우한 이웃을 도왔습니다.
텐징도 네팔, 티베트, 인도에서 열광적인 환대를 받았습니다.
이들 국가 사이에 텐징의 국적 논란이 있을 정도였죠.
그는 "산에서 인간은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라며
세간의 관심에 당혹해했고 부담스러워했습니다.
그는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에베레스트에 다시 오르지 않았다 합니다.
등반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고 강연이나 인터뷰를 통해 등정의 지혜를 전파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무릎에 오르는 아이의 사랑처럼 산을 찾았다."라며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낮은 자세는 거대한 히말라야의 겸손과 포용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늘 '누가 먼저 올라갔느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함께’라고 답했습니다.
그들에겐 우정밖에 없었던 겁니다.
누군가 욕심을 내어 영광을 독차지하려 했다면, 그들의 등정(登頂)은 실패로 끝났을 겁니다.
정상을 향한 여정은 결국 손을 내밀어주고, 기다려주고, 함께 웃는 동반자 덕분에 완성된다는 생각입니다.
나 또한 수많은 존중과 배려를 받으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거봉(巨峰)을 오르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때로는 햇살이 따사롭고, 때로는 눈보라가 몰아치며, 때로는 낭떠러지가 앞을 가로막지요.
그렇다고 길이 없다고 돌아갈 수도, 비바람이 분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습니다.
존중과 배려로 ‘함께’ 하기에,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아름다울 겁니다.
서로 손 잡고, 주저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이겠죠.
"신은 겸손과 용기를 갖추지 않은 자에게 결코 자신의 영역을 허락하지 않는다."
삶의 마루, 지금 누구와 함께 오르시나요?
그런 사람 있다는 건 이미 정상에 서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