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웃지도 못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 말이 유일한 숨구멍 같던 때였다. 우리 누구도 힘들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모두가 고생 중이었기에.
최창수
그 이름은 가끔, 아무 예고 없이 찾아왔다. 대부분 피로하거나, 감정이 소진된 날일수록 더 자주. 그럴 때면 하주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묵직하게 울리는 문장을 떠올렸다.
‘그래, 창수는 늘 불쑥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금도 그랬다. 짧은 메시지 하나.
[최창수 : 야, 잘 지내지? 요즘 너 생각나서 카톡 한 번 남긴다.]
이 짧은 문장이, 이상하리만치 깊은 울림을 남겼다. 마치 과거의 어느 지점을 조용히 건드리는 버튼처럼.
오래전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병원 지하 2층, 구석진 남자 탈의실. 조금은 눅눅하고 낡은 그 공간. 창수와의 첫 만남은 그곳에서였다. 그날, 둘 다 표정부터가 낯설었다. 어색한 눈빛, 비슷한 말투, 그리고 그 어딘가의 긴장. 신규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 수 있었다. 하주는 첫눈에 창수가 자신과 같은 ‘신규 간호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 혹시 신...규세요?”
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오늘 첫 출근이요. SICU(외과중환자실) 요.”
“어! 저도 신규예요. MICU(내과중환자실) 요. 바로 옆 병동이네요. 우리 친구 할까요? “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었다. 첫 만남부터 둘은 창수의 자취방에서 소맥을 마시고, 그가 치는 기타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체리 몰딩에 낡은 원룸에서 마시는 편의점 소주와 맥주, 기타를 치며 따라 부른 어설픈 노래, 주황색 간접등 아래에서 이어지는 그들만의 뒤풀이.
“다들 이렇게 첫날부터 자취방까지 오는 거야?”
“보통은 아닌데, 나는 너한테 협박당했잖아. 친구 하자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힘듦과 즐거움을 털어놓았다. 이상하게도 낯선 병원 생활에 ‘친구’ 하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할 수 있었다. 창수는 외과, 하주는 내과. 서로 다른 병동에서 일했지만, 퇴근 후엔 늘 지하 2층 탈의실에서 마주쳤다. 병원에서 가장 구석진 공간이었지만, 둘에겐 안식처였다. 퇴근 후 서로를 마주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언제나 서로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신규로써의 고달픔은 덕분에 점차 잊혀졌다.
시간이 지나고 둘은 3년 차가 되었다. 중환자실의 리듬에도 적응해갈 즈음, 코로나가 찾아왔다. 전국이 멈췄다. 병원은 전쟁터가 되었다. 병상은 부족했고, 의료진도 모자랐다. 병원 측은 중환자실 인력 중 일부를 새로 만들게 된 [코로나 중환자실]로 차출했다. 하주와 창수는 자원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자신들이 조금 더 나은 손일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코로나 중환자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레벨 D 방호복, 얼굴을 죄는 마스크, 5겹의 장갑, 땀으로 젖은 속옷과 머리카락, 커다란 모자 안에서 웽웽 돌아가는 기계음. 병동으로 한 번 들어가면 4시간 이상 나오지 못했다. 화장실도, 물 한 잔도 참아야 했다. (나올 때는 손 끝이 퉁퉁 불어 있었다.) 방호복을 벗고 나올 때마다 창수가 말하곤 했다.
“야, 우리 지금 약간 슈퍼히어로 같지 않냐. 단점은 지구를 구하고도 샤워부터 해야 된다는 거.”
하주는 웃지도 못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 말이 유일한 숨구멍 같던 때였다. 우리 누구도 힘들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모두가 고생 중이었기에. 그리고 그 속에서, 하주와 창수는 더 가까워졌다. 때로는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했고, 등만 스쳐도 위로가 되었다. 함께 일하며, 함께 버티며, 함께 자라났다. 그들은 점점 더 ‘진짜 간호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는 점차 독감처럼 다뤄지기 시작했다. 병원의 긴장도는 조금씩 누그러졌고, 결국 코로나 중환자실이 폐쇄되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그들이 돌아갈 자리는 이미 없었다. 빈자리가 새로운 인력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하주와 창수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부서를 선택해야 했다. 그때 응급실에서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 둘 다 응급실로 가보자!"
부서 이동 전, 잠시 주어진 한 달의 휴식. 하주는 고향에 내려가 느긋하게 늦잠도 자고, 여자친구와 여행도 다녀왔다. 창수는 달랐다. 제주도로 향했고, 커다란 카메라 하나 들고 한 달간 사진을 찍었다. 복귀 후 오랜만에 만난 날, 둘은 하주의 자취방에서 소맥을 나눠 마셨다. TV에서는 어딘가 열정적인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지만 둘 다 화면을 보진 않았다.
“이번 한 달 진짜 좋았나 보네.”
창수가 술잔을 비우며 웃었다.
“내가 말이야, 하루에 해를 두 번 봤다?”
“뭔 소리야, 또 시 낭송하냐.”
“하나는 해가 뜨는 거, 하나는 해가 지는 거. 그동안 3교대 하면서 진짜 보기 힘들었잖아.”
창수가 웃으며 말했지만, 말 끝은 꽤 묵직했다.
“사진 찍다 보니까... 그냥 그랬어. 이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상도 다시 보니까 진짜 소중하더라. 일상 속 커다란 행복이었어. 숨통이 트이더라 정말.”
말이 끝났지만,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잔 속의 거품만이 조용히 꺼져갔다.
“그 한 달이... 진짜 숨 쉴 수 있는 날이었어."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마치 혼잣말처럼 작게 흘러나왔다.
“사실 말이야, 머릿속엔 제주도에서 살까? 하는 생각도 있긴 했지.”
“야, 갑자기 무슨 드라마 찍냐.”
창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크게 말하면 현실 되잖아. 일단은 머릿속에만 있어야지. 생각은 공짜니까.”
응급실 배치 첫날. 긴장도 되었지만 설레는 감정도 컸다. 새로 배우는 일은 언제나 설렜다. 하지만 이내 현실은 기대를 꺾었다. 중환자실 3년 차라는 타이틀은 아무 의미 없었다. 하주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진짜 간호사 맞나?’ 생각했다. 지금까지 해온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졌고, 축적된 경험이 이곳에선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깎아내렸다.
익숙했던 자신감도, 누구보다 성실했던 태도도, 이곳에선 모두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 같은 병원이지만 모든 게 달랐다. 아니, 오히려 더 낯설었다. 선배들의 차가운 시선은 괜찮았다. 그러나 동기들과 후배들마저 그들을 무시했다. ‘다른 부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을 가르쳐주진 않으면서도, 실수엔 냉정했다. 마치 그 자리에 있어선 안 될 사람처럼.
하지만 그걸 견뎌내는 게 차라리 쉬웠다. 가장 어려웠던 건, 그곳의 공기였다. 중환자실이 ‘엄숙한 집중’의 고요함이었다면, 응급실은 ‘끝없는 소란’의 아수라장이었다. 욕설과 비명, 폭력을 행사하는 보호자, 울려대는 호출음, 온갖 종류의 기계음이 하나의 거대한 소음 덩어리가 되어 귀가 아닌 피부로 파고드는 듯했다. 하주는 어쩐지 그 안에서 자꾸만 호흡이 가빠지는 기분이었다. 평소 드라마 속 응급실은 완벽한 거짓말 같았다. 전쟁터 한가운데에서도 피어나는 휴머니즘, 감동의 순간, 환호와 박수. 현실은 냉정했다. 그 안엔 그 어떤 아름다움도, 클로즈업도 없었다. 그저 욕설, 피로, 그리고 기계처럼 움직이는 자신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주는 가끔씩 눈을 감았다. 내과 중환자실에서 듣던 일정한 심전도 소리도 그리워졌다. 그 고요하고 긴장된 리듬 속에서 그는 누군가의 삶을 지켜낸다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선 그저 무너지는 것들을 버텨내야 한다는 의무만이 그의 몸을 짓눌렀다.
수면은 갈수록 얕아졌고, 퇴근 후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쓰러져 잠드는 날이 많았다. 하루가 끝나면 마음은 텅 비었고, 다음 날이 시작되면 다시 겁이 났다. 그는 점점, 간호사가 아니라 하나의 부품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응급실에서 알람 소리가 들리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다. 환자의 고통에 무뎌지고, 동료의 농담에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감정이라는 회로가 끊어져 버린 것처럼, 모든 것이 소음 아니면 데이터로만 느껴졌다. 그는 텅 빈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아, 정교하게 움직이지만, 영혼은 없는 기계 같다.
다음 날 아침, 알람 소리는 그를 깨운 것이 아니라 가동시켰다. 마치 녹슨 기계가 억지로 돌아가듯,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완충은커녕, 방전 직전의 배터리처럼 시야는 흐릿했고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다. 몸뚱이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하주는 항상 생각했다.
'나는 언제쯤...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무렵 창수 또한 말수가 조금씩 줄었다. 하주는 퇴근하고 창수의 자취방에 갔다. 두 사람은 말없이 창가 바로 옆 책상에 앉았다. 낡은 창문 너머로 술집 간판의 불빛이 골목길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급히 걸음을 옮기며 그 불빛을 힐끗 바라보았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웃음소리와 자전거 벨 소리. 조용했지만, 삶은 여전히 저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창수는 집구석구석에 놓인 사진들만 멍하니 바라봤다. 하주는 괜히 창밖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바깥은 분명 괜찮아 보였지만, 안쪽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다.
창수는 한동안 말없이 카메라를 닦았다. 그걸 지켜보던 하주가 정막을 깼다.
“야, 너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하냐.”
창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아무 생각이 안 나. 아니, 생각은 나는데 말이 안 돼. 그냥...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느낌? 하루 종일 그렇게 살아.”
"그럼 뭐 어떻게 할 건데.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그냥 술이나 한 잔 하자."
하주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 있는 초록색 병을 꺼내왔다. 창수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눈빛은 묘하게 단단해져 있었다.
며칠 뒤, 창수가 조용히 말했다.
“하주야. 나 간호사 안 할래. 제주도로 갈 거야.”
하주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복권이라도 됐어? 돈은 또 어떻게 벌려고”
창수는 짧게 웃었다.
“사진 찍어서 벌지 뭐. 스냅 작가들 꽤 벌어. 예전 한 달 살기 때 인연 맺은 작가들이 있거든. 수입이 아주 괜찮더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고, 창수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음... 나 이제 사람 살리는 일 말고, 사랑 찍는 일 할래.”
하주는 웃었지만, 창수는 웃지 않았다. 눈빛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뭐지... 장난이 아닌가?'
말은 농담 같았지만, 창수의 움직임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하주는 곧 말렸다. 정말 말리고 싶어 했다.
“너 진짜 사진으로 먹고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간호사 하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너 간호학과 다닐 때, 국시 준비할 때 기억 안 나? 지금 병원도 엄청 좋은 곳이잖아. 남들은 이런 자리 얻고 싶어서 몇 년을 고생하면서 준비하는데...”
말리는 말이 계속해서 쏟아졌지만, 창수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하주도 알았다. 말의 끝 어딘가가 자꾸 흔들리고 있다는 걸. 그건 걱정이라기보단, 두려움이었다.
'만약... 만약에 창수가 정말 성공해 버리면 어떡하지? 그러면 여기에 남기로 한 나는 뭐가 되는 거지? 나는 계속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걸까?'
창수는 조용히 물을 따라 한 모금 넘겼다. 손끝의 동작은 느렸지만, 말은 단호했다.
“하주야. 나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걸 찾은 거야.”
하주는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아냐면, 그냥 그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어. 매일이 떠올라. 이유도 없이 계속 설레더라고. 제주도에서 사진 찍을 때, 진짜 숨이 트였어. 물론 돈도 걱정되고, 잘 될 거란 보장도 없지. 근데 말이야... 지금 아니면, 난 후회할 것 같아. 진심으로.”
그는 그 말을 꺼낸 그날, 스물아홉이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애매한 나이. 아직 이르다고 하기엔 늦은, 늦었다고 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 창수는 그 시점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며칠 후였다.
“야 최창수 오늘 퇴사한대. 방금 파트장님이랑 간호부에 들어가는 거 봤어. 아니, 뭐 먹고살려고 저렇게 급히...”
태호가 툭 던지듯 말했다. 하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핸드폰을 들었다. 화면만 껐다 켰다 반복했다. 손끝에 남은 건, 미묘하게 떨리는 무게감뿐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창수는 진짜로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제주도의 햇살 아래, 카메라를 든 그의 모습은 SNS 속에서 무척 생기 있어 보였다. 팔로워 3만, 그는 웨딩 스냅사진작가로 자리를 잡았고 기사 인터뷰도 떴다. ‘간호사’라는 단어는 그에게 이미 지워진 지 오래였다.
하주는 휴대폰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최창수 : 야, 잘 지내지? 요즘 너 생각나서 카톡 한 번 남긴다.]
여전히 읽지 않은 상태였다. 그 메시지는 짧았지만 묘하게 깊었다. 하주가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화면을 껐다. '최창수'라는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한 발짝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거리는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었다.
'나도 당당하게 잘 지낸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창수는 무작정 도망친 게 아니었다. 오래 고민했고, 행동으로 옮겼고, 결국 해냈다. 쉽고 단순해 보이는, 그 안엔 그만의 두려움, 결심, 분명한 방향이 있었다.
반면 하주는... 여전히 3교대를 돌고, 여전히 ‘간호사’라는 직함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매일 같은 복장, 같은 길, 같은 루틴. 어제와 같은 하루를 또, 살아낸다. 그렇게 살아남은 오늘, 그렇게 맞이한 또 다른 하루.
하주는 물 한 잔을 따랐다. 유리컵은 손에 닿자마자 차가웠고, 그 감촉이 괜스레 낯설었다. 냉장고 위엔 먼지 하나 없었고, 바닥도 잘 닦여 있었다. 분명히 예전과는 달라진 삶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아직도 그 눅눅했던 자취방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컵을 내려놓고,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머릿속 어딘가에 창수의 말이 오래간만에 울렸다.
‘나 이제 간호사 안 할래.’
그 말은 여전히 정확히 정의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그는 멀리 가 있었다. 알람이 울렸다. 또 다른 근무가 시작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주는 시계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 어떤 대답도 없었지만
그 안엔 아주 조용한 질문 하나가 고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