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쯤은 훌쩍 오슝!
[호]
내일이면 가오슝에 온 지 딱 한 달이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가오슝 한달살기를 마치고 이 도시를 떠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7개월 전, 교토에서 한달살기를 끝내고 떠나던 날도
지금처럼 아쉽고, 한편으로는 시원한 마음이 공존했던 기억이 납니다.
머물 만큼 머물렀다는 안도와, 이제는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
한달살기의 마지막 날은 늘 그런 두 마음이 겹치는 것 같습니다.
10월 중순, 가오슝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한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겨 걷는 것조차 쉽지 않을 만큼 더웠지만
어느새 계절은 한 걸음 물러났고,
이제는 낮에도 땀을 크게 흘리지 않고 도시를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날씨도, 우리도, 이 도시에 조금씩 적응한 것입니다.
가오슝은 영어로는 Kao-hsiung, 한자로는 高雄이라 씁니다.
대만은 길거리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여행자에게 비교적 편안한 곳이었습니다.
중국 운남 리장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는
한자를 마주하고도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는데,
대만은 홍콩이나 일본처럼 한자를 사용하면서도
중국의 간체자가 아닌 번체자를 쓰고 있어서
간판이나 광고 문구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시내를 걷다 ‘고웅시공지성(高雄時空之城)’에 들러 방명록을 적게 되었는데,
이왕이면 영어보다 한자로 이름을 쓰고 싶어 그대로 적었더니
이를 보던 사람이 “한자를 참 잘 쓴다”며 놀라는 모습도 봤습니다.
(은근한 깨알 자랑… 입니다.ㅎㅎ)
보얼예술특구의 낮과 밤은 가오슝이라는 도시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낮의 여유로움과, 해가 진 뒤의 활기.
하루에도 여러 얼굴을 가진 도시라는 걸 이곳에서 자주 느꼈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가오슝은 2020년 2월 한달살기를 계획했다가
코로나로 인해 결국 오지 못했던 곳입니다.
그만큼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던 도시였고,
그래서인지 이번 방문은 다른 도시들보다 더 힘들게 왔고
그만큼 더 애착이 남습니다.
10여 년 동안 여러 도시에서 한달살기를 해왔지만
이번에도 역시 가오슝에서는 될 수 있으면 뚜벅이로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숙소 주변을 중심으로 움직였고,
일주일쯤 지나 방향 감각이 생긴 뒤에는 가끔씩 트램을 타고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는 일부러 천천히 걸어오기도 했습니다.
걷다 보면 관광지가 아니어도 이 도시의 표정이 보였고,
그날그날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가오슝에 온 지 보름쯤 지나니
이른바 ‘관광지’라고 불리는 곳들은 거의 다 둘러본 셈이 되었습니다.
관광할 거리만 놓고 보면 타이페이가 훨씬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오슝은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아침과 밤이 전혀 다른 변화무쌍한 거리의 풍경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 그 자체가 늘 흥미로웠습니다.
걷는 속도만큼이나 마음에 풍요를 안겨주니
하루하루 가오슝에서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달을 지내고 나니 숙소 주변은 물론이고,
번잡한 시가지의 골목들까지
어느 정도는 머릿속 지도가 그려집니다.
이쯤 되면, 떠날 때가 된 것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고속철을 타고 타이페이로 향합니다.
일주일 정도 머물며 중정기념관과 국립고궁박물관을 찾아
대만의 역사도 조금 더 들여다볼 생각입니다.
가오슝의 풍경들은 이제 마음 속과 휴대폰 앨범,
그리고 이렇게 남겨 둔 글 속에서만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10년 이내 다시 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곳을 떠나는 마음이 유독 아쉬움이 큽니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건강해야 다시 올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또 한편으로는 기대해 봅니다.
젊은 날,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훌쩍 동해안으로 떠났던 때처럼
어느 날 문득 ‘가오슝’이라는 이름이 떠오르면
아, 그곳! 하며
아무 망설임 없이 훌쩍 다시 떠날 수 있기를.
아무튼,
누구라도 일생에 한번쯤은
가오슝으로 훌쩍 오슝!!! ㅎㅎ
*이 글은 대만 가오슝 한달살기 중(2023년 가을),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남겼던
기록을 바탕으로 '현재의 생각'을 때때로 덧붙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