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슝 한달살기(번외)/타이페이 2

시먼딩에서 101까지, 타이페이를 걷다

by 호히부부

[호]



타이페이의 명동, 혹은 시부야처럼 불리는 젊음의 거리,

시먼딩(西門町, Ximending)으로 나갔습니다.
오늘은 시먼딩에서부터 융캉제, 중정기념당, 그리고 101빌딩까지 걸으며

타이페이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SE-7496b4e8-3503-4d87-ab73-10866e75783c.jpg?type=w1600 타이페이의 명동, 시먼딩
asdert.jpg?type=w1600 오늘 걸어가는 루트입니다


시먼딩은 이른 아침을 제외하면 10대부터 20대 젊은이들로 항상 북적입니다.

거리마다 최신 유행 패션을 입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곳곳에서 음악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도 있고, 연인끼리 사진을 찍거나,

게임이나 쇼핑을 나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름난 식당이나 아이스크림점, 찻집 앞에는 20~30분씩 기다리는 줄이 늘어서 있는데,

줄을 서 있는 시간마저도 하나의 ‘놀이’처럼 보일 만큼 모두들 여유로운 표정입니다.

타이페이의 젊은 에너지가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동네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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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25140127-5fbd-4ae6-95d8-f37629b48957.jpg?type=w1600 시먼딩의 밀크티 전문점, 행복당


흑당밀크티와 85°C 소금커피로 유명한 행복당 앞도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맛은 분명 보장되어 있겠지만, 기다림까지 감당할 여유는 없어

눈으로만 만족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점심때가 되자 슬슬 허기가 밀려와,
샤오롱바오를 먹기 위해 한글 안내문이 붙어 있는 재미있는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만난 한글 안내문이 괜히 반갑고,
여행자의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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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맛이 없을 수 없는 음식들. ‘대만 육즙 빵빵 샤오롱바오’와 ‘대만 원조 루러우판’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찜통마다 샤오롱바오가 켜켜이 쌓여 있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모습에 자연스레 기대감이 높아집니다.
이 풍경만 봐도 ‘아, 여긴 틀림없이 잘하는 집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문은 고민할 것도 없이
‘대만 육즙 빵빵 샤오롱바오’와 ‘대만 원조 루러우판’으로 정했습니다.
대만에 왔으니, 가장 대만다운 메뉴부터 맛보는 게 순서니까요.


SE-1bdb51bf-bfd9-4d21-a7a8-e32c87d24b50.jpg?type=w1600 타이페이 중정기념당


다음 코스는 중정기념당입니다.
1980년 4월 5일 개관한 장제스 총통 기념관으로,

이름 ‘중정’은 장제스 본명인 장중정(蔣中正)에서 따왔습니다.
2007년 민주진보당 시절에는 한때 ‘국립대만민주기념관’으로 바뀌었지만,

2008년 마잉주 총통이 들어서면서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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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 정시에 열리는 의장대 교대식이

중정기념당의 대표적인 볼거리라고 합니다.
우리도 시간을 맞춰 자리를 잡고 한참을 기다리며 교대식을 지켜봤습니다.

동작은 분명 정교하고, 의식 자체도 엄숙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기대했던 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낯선 역사와 상징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이 되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타이페이에 왔다면 한 번쯤은 볼 만한 장면’으로는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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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링컨 기념관을 본따 만든 이 중정기념당은 높이가 약 70m에 이르고,

계단 수는 장제스가 타계한 나이인 89세에 맞춰 89개라고 합니다.

마침 아침 식후혈당도 높게 나온지라 운동삼아 이 계단을 연거푸 4번 뛰어올랐습니다.

그런데 한순간 무릎이 삐끗하더니 통증이 옵니다. 갑자기 너무 무리 한 것 같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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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캉제 거리, 딘타이펑 본점(테이크아웃점)에서 맛본 샤오롱바오(5천원)


중정기념당에서 가까운 융캉제 거리로 이동했습니다.

딘타이펑 본점 테이크아웃점에서 드디어 원조 샤오롱바오를 맛보았네요.

육즙이 풍부하고, 외피가 쫄깃한 것이 확실히 다른 샤오롱바오와 차이가 있었습니다.


20231119_135403.jpg?type=w1600 저 동그라미 속 101빌딩까지 공공자전거를 타볼려는데?


중정기념당 계단 운동 여파로 다리가 급하게 피곤해진 듯 합니다.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볼까 하고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결국 포기,

천천히 걸어가기로 합니다.


(뒤 늦게 깨달았지만, 이날 더이상은 걷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중정기념당 계단에서 충격이 간 무릎여파가 그후로 계속 이어더군요.

한국 돌아와 바로 정형외과 치료를 받았고, 둬달 시간이 흐른 후, 많이 좋아졌다 생각했는데

최근 25년 가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왼쪽 무릎 통증이 똑같이 나타나

다시 치료중입니다. 나이는 늘어가는데 몸이 마음을 못따라 주는 현실을 자꾸 잊게 되네요.^^)


조금 느리게 걸으며 번화한 도로를 벗어나 일부러 뒷골목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화려한 고층 빌딩 뒤로 숨은, 진짜 사람 사는 모습이 보입니다.

관광 안내서에는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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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_142542.jpg?type=w1600 '남사리발점'이라니, 남자신사이발관이겠죠?


골목 안 작은 이발점 앞에 잠시 멈춰 섰습니다.
손님이 없는지 이발사는 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사진을 찍는 저를 말없이, 그러나 꽤 오랫동안 지긋이 바라봅니다.
낯선 여행자와 익숙한 골목이 잠시 시선을 나누는 그 순간,
이 도시가 갑자기 훨씬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20231119_143057.jpg?type=w1600 허락받고 찍은, 오토바이 타는 귀여운 강아지들


다시 큰 길로 나와 걷다 보니, 멀리서부터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타이페이 101빌딩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옵니다.
숫자 ‘101’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모습이
도시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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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갈수록 주변은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101빌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점프샷을, 누군가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듯한 착시 사진을 찍으며
이곳이 타이페이 여행의 ‘필수 코스’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101 빌딩의 전망대에 올라 시가지 구경을 하는 것 보다

빌딩 앞에서 모여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 있었습니다.

(엊그제는 미국의 40대 등반가가 맨몸으로 이 101빌딩을 오르는 모습이

넷플릭스로 전세계에 생중계되기도 했죠)


한때 세계 최고층 빌딩이었던 이 건물은 이제 기록보다는 상징으로 남았지만,

여전히 타이페이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도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타이페이를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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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이면 가오슝 한달살기와

타이페이 관광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앞으로 ‘대만’, ‘타이완’, ‘타이페이’, ‘가오슝’ 같은 단어를 들으면,
이 시각과 기억의 필름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겠지요.


아듀, 타이페이, 가오슝…






*이 글은 대만 가오슝 한달살기 중(2023년 가을),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남겼던

기록을 바탕으로 '현재의 생각'을 때때로 덧붙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