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평대의 작은 집에서 아이가 자란다. 미니멀라이프를 하는 작은 집에서의 육아는 매 순간이 흥미진진한 도전이고, 위안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작은 공간은 때때로 도발로 여겨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커가는 아기와 집의 빈 공간 사이에서의 싸움은 아주 고요하고, 치열했다. 아기침대를 놓지 못하고 매트에 눕히고 재웠다. 기저귀 갈이대를 두지 않고 눕힌 김에 기저귀를 갈았다. 수유쿠션은 모유수유 실패각이 잡히자마자 나눔으로 비워냈고, 역류방지쿠션은 알아보지도 않았다.
바운서는 두 달 대여제품으로, 아기모빌은 중고 구입으로 들어왔다가 뒤집기를 한 순간 바로 집에서 내보냈다. 구강기가 시작되자마자 젖병소독기를 중고판매했다(다 입에 넣는데 젖병만 소독해서 뭐 해,라는 생각이었다. 아이가 다 크면 소주잔 소독할 때도 쓴다는데 그걸 못해본 건 조금 아쉽다).
그렇게 청기백기 게임처럼 짧은 기간에 육아템들이 아주 스치듯 집에 들어왔다가 나갔다. 잠깐 게으름을 피우면 그만큼 아기가 기어 다닐 공간이 잡아먹힌다. 나는 빈 공간을 사수하기 위해 철통경비를 섰다. 이 작은 집에서는 그래야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위안받는다.
바로 걸레질하는 시간 말이다.
여기보다 조금 더 작은 집에서 살았던 시절, 그러니까 나와 남편이 가족 구성원의 전부였던 때의 물걸레질은 역시 물티슈와 밀대의 조합이었다. 그냥 결혼 전에 부모님 집에서 그렇게 하니 당연히 그게 답인 줄 알고 따라 했던 것뿐이었다.
나는 살림을 고민하기에는 너무 바빴다. 대학입학, 졸업, 취업이 내 삶의 우선순위였고, 그것은 입사를 하고 나서는 회사에, 결혼하고 나서는 새로운 살림살이에 적응하기 바빴다. 물티슈 사용의 후폭풍 같은 것 따위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출산하고 나서는? 말도 마시라. 청소기나 제 때 돌리면 다행이었다.
그나마 집이 작고, 무선청소기가 있었기 때문에(요즘 유행하는 100만 원 넘는 스테이션 딸린 청소기 아니고, 배터리 넣어 쓰는 스틱청소기였다. 출력 낮고 배터리 잘 망가진다며 어른들 집에서는 보통 보조 청소기 정도로 구입하는 제품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집 청소는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청소기도 간신히 돌리는데 물걸레질이 웬 말이냐.
하지만 나의 게으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기가 배밀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왜, 인터넷에서 아기 배 부분에 두툼한 극세사 걸레를 붙인 옷을 본 적이 있는지? 그런 옷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눈이 혓바닥에 달렸는지 바닥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입으로 가져가는 시기 아니시던가. 더 이상 출력 약한 청소기에게 집을 맡겨둘 수가 없었다.
바닥청소용 물티슈가 똑 떨어지고 이미 한참이 지난 뒤라 괜찮은 게 없나 찬장을 뒤적거렸다. 별 게 나오지 않으면 사은품으로 받은 아기물티슈로 바닥을 닦아낼 심산이었다. 아기물티슈는 도톰한 대신 단가가 비쌌으므로, 제발 뭐 좋은 것이 나오길 바라며.
그러던 중 남편의 노란 세차타월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아예 물건이 없을 수는 있어도 조금씩은 절대로 안 판다는 코스트코에서 담아 온 노란색 극세사 타월이었다.
결혼 직전, 고심 끝에 마음에 드는 차를 산 이후로 남편은 애차가 답게 셀프세차용품을 왕창 사들였는데 음... 그때는 셀프세차를 놓은 지 한참 되었던 때라 새 세차타월들은 주인을 잃은 보물상자 속 보석처럼 신발장에서 그렇게 조용히 잠들어있던 참이었던 것이다.
몇 번의 미니멀라이프 물건 비우기 행사 때도 '여긴 남편의 영역'이라며 지나친 탓에 살아남았던 것을, 조용히 박스에서 건져 올렸다. 너, 내 동료가 돼라!
극세사라 그런지 이 녀석, 아주 먼지를 빨아들이는 실력이 제법이었다. 밀대에 물티슈 끼워 슥슥 지나쳤던 자리라 하더라도 극세사 걸레로 손에 압을 주어 훔쳐내면 시커멓게 먼지가 묻어 나온다.
아니... 물티슈랑 밀대, 너네 지금까지 대체 뭘 한 거야?
악덕 부장님에 빙의하여 물티슈 밀대 콤비에게 큰 소리로 혼내본다. 도대체가 말이야, 둘이서 해내는데도 결과가 이것뿐이 안 돼? 여기 극세사 사원이 해낸 걸 보게나! 이렇게나 많은 이슈가 있었는데 이걸 다 무시하고 지나간 거야? 허허 월급은 공으로 받나? ㅡ뭐, 현실에서는 악덕 부장님도, 밀대 차장도, 물티슈 대리도, 극세사 사원도 다 나지만 말이다. 쩝.
사정이 이러하니 더 이상 밀대를 집에 둘 필요가 없어졌다(이제 절대로 무릎을 굽혀 청소하면 안 되는 아버지께 보냈다).
나는 아기와 함께 무릎으로 온 집안을 산책하며 아기는 아기대로, 나는 나대로의 할 일을 했다. 정말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거실에 가구라곤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식탁과 아기도 움직일 수 있는 의자 두 개가 전부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거실과 부엌사이즈가 아주 작았기 때문에 물걸레질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신혼집 시절 티비장을 닦기 위해 그 위에 올려놨던 장식품들을 전부 다 내려두고, 걸레로 티비장을 닦고, 장식품들 위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오와 열을 맞추어 티비장에 올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티비장이 있던 곳>을 걸레로 주우우우욱 밀면 끝.
티비장 위에 둔 그거 만지면 안 돼, 그거 위험해, 티비장 잡고 일어나면 위험해, 혹시 넘어지거든 티비장 뒤쪽으로 넘어지렴 같은 말도 안 되는 잔소리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덤. 티비장 밑으로 먼지가 들어가는 건 아닌지 낱말카드가 들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덤.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벌레가 티비장 뒤쪽으로 들어가서 실종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역시 덤(티비장 있던 시절의 충격 실화입니다).
잡다한 가구와 가전이 없으니 청소를 할 때도 분무기에 물을 넣고 공중에 시원하게 물을 뿌린다. 물방울이 먼지를 잡고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깨끗하게 빨아낸 물걸레로 바닥을 훔쳐내면 공기까지도 깨끗하게 닦이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커튼을 활짝 치고 창문을 살짝 열어 햇빛과 바람으로 물기를 말려낸다.
이렇게 나의 작은 별을 청소한다.
그러니까, 가구와 잡동사니가 없다는 것은 해와 바람을 청소도구를 쓸 수 있다는 말 아니려나. 참으로 귀하고 값싼 청소도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