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한 영화의 제목인데 가끔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로 헷갈리게 기억하기도 한다. 아무튼 내가 살면서 그런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예를 들면 광해군이 폭군이었냐,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이었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에게 그런 사건이 또 있었으니, 바로 '이유식 지침' 이다.
내가 첫째아이 이유식을 시작했던 것은 2017년 가을이었고, 터울이 있는 둘째아이의 이유식을 시작한 것은 2023년 봄이었다. 10년도 안되는 세월이 흘렀는데 이유식 공부를 새롭게 다시 해야했다.
아마 외동을 키우거나 터울없는 아이를 키운 분들은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첫째를 키우던 '라떼'에는 완분아기는 5개월, 완모아기는 6개월에 이유식을 시작하는 것이 좋고, 미음부터 시작해서 10배죽, 8배죽, 6배죽 등등 입자를 점점 키우는 것이 이유식 지침이었다. 잡곡은 소화문제로 최대한 늦게 먹이고, 한데 넣고 푹 끓여서 만드는 밥솥이유식이 최신 이유식 기법이었다. 그래서 이유식용으로 쓰는 3인용 전기밥솥을 새로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마 최근에 이유식을 하는 사람들은 '이제 무슨 말이지' 하실 수도 있겠다. 지금은 완모 완분 상관없이 6개월에 이유식 시작하고 입자는 빨리 올릴 수 있으면 좋으며, 밥은 밥대로 반찬(식재료를 아이의 발달단계에 맞게 다진 것)은 반찬대로 따로 먹이는 토핑이유식이 대세다.
지금은 둘째 아이 이유식도 다 끝나서 상관은 없지만 한 번씩 인스타그램 피드에 이유식 관련 광고가 뜨는 것을 보면, 새삼 신기한 것이 많이 생겼다 싶다. 아이의 알레르기 반응을 살피는 것도 이유식의 중요 역할인데, 수 많은 재료를 사기 힘든 부모들을 위해 각종 재료를 이유식 배죽에 맞게 다져놓은 냉동 큐브나, 보관이 용이한 건조가루같은 것 말이다. 채수티백도 신세계였다. 더 이상 곰솥은 필요없다.
라떼(첫째 아이 이유식하던 2017년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이렇다. 아이를 유아차에 태워서 집 근처에 걸어갈 수 있는 모든 마트를 심심할 때 마다 다 가본다. 마트마다 각각 무게 달아 파는 식재료가 다른데, 이유식 조리 전에 그걸 딱 하나만 사온다.
예를 들면 A마트에서는 고구마를 낱개로 팔고, B마트에서는 감자를 낱개로 팔고, C마트에서는 양파를 무게로 판다. 요즘에는 그렇게 파는 데가 없어졌는데, 예전에는 대형마트 한 켠에 각종 쌈채소를 원하는 만큼 담아 사갈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비타민이 알약 말고 잎사귀의 한 종류로도 있다는 것을, 이유식 시작하면서 처음 알게 된 게 나 뿐만은 아닐 것 같다. 요리로 활용하기에 도대체 방법을 모르겠는 비타민잎 같은 것들은 자주 먹는 상추와 섞어 정말 소량만 사오는 식이다. 이유식에 감자가 필요하다면 B마트에 가서 감자를 딱 하나만 사온다. 하지만 최근엔 재래시장까지 전부 비닐 랩지 포장을 해서 파는 시국이 되어버려서, 요즘엔 이렇게 식재료를 구입하기는 어렵다.
나의 귀차니즘은 이유식 만들 때도 한껏 발휘되었다.
솔직히, 이유식 냉동큐브를 만드는 것은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한번만 고생하면 편하다는데 나에게는 이게 왜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그럼 어떻게 이유식을 진행했냐면, 위에서 말한 것 처럼 마트를 돌며 당장 이유식에 필요한 식재료를 딱 하나씩만 사온다. 가끔 마트 전단지를 보면 <금주의 할인행사>같은 코너가 있는데 그 전단지를 보고 이유식의 메뉴를 정하기도 한다. 식재료를 사오면서 마트에 있는 저울로 대충 몇g인지 재어보고 잘 기억하고 있다가 집에 와서 대충 눈대중으로 1/n을 한다. 그리고 야채다지기에 넣고 전부 다져버린다. 쌀과 배죽에 맞는 물양을 잡고 전기밥솥의 영양죽 취사버튼을 누르면 끝.
이렇게 이유식을 만들면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냉동 큐브 트레이같은 이유식 재료 보관용기를 많이 사지 않아도 된다. 항상 생물 재료를 쓰기 때문이다. 이유식 용품들은 길게 써봐야 6~8개월 정도므로, 너무 많이 사두면 나중에 처치 곤란이다. 솔직히 중고거래나 무료나눔도 귀찮다.
둘째, 항상 생채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육수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그 왜, 어른 음식도 냉동채소를 쓰면 풍미가 좀 덜하지 않는가. 항상 생야채로 조리를 하기 때문에 육수에 신경을 좀 덜 써도 된다. 물론 맛의 차이가 아예 없을 순 없겠지만 양파나 당근을 조금 더 넣으면 굳이 힘들게 육수를 뽑지 않아도 제법 괜찮은 이유식이 완성된다.
둘째 아이의 이유식을 앞두고 검색해보니 요즘엔 또 밥과 반찬을 따로 주는 토핑이유식을 많이 한단다. 아이에게 각 식재료 고유의 맛을 소개하기 용이하다는 평도 있지만, 아무래도 작은 밥솥을 파는 것 보다 다양한 식판과 큐브용품을 파는 게 이유식 업계에서도 더 돈이 되기 때문에 아닐까 싶은 생각도 불쑥 해보았다.
비록 이유식 지침이 바뀌었다지만 과거의 이유식이 마냥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숭늉에 밥 말아 먹고 큰 아기들도, 밥솥 이유식을 먹은 아기들도 다 훌륭하게 자라지 않았는가. 토핑이유식이 좋다지만 만드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가족들에게 자꾸 짜증을 낸다면,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기에게도 정석같은 이유식보다는 지치지 않고 화내지 않는 엄마가 더 필요할 것이다.
나도 혼자서 아이 둘을 보며 이유식까지 해먹이기는 힘들어서, 둘째 중기이유식은 시판 제품 사다가 소고기만 따로 더 넣고 끓여내서 먹였다. 이유식 용품 잔뜩 샀었다면 당근 프리미엄 판매자 될 뻔 했다.
그런데 토핑을 따로 주어봐도, 냄비에 한데 넣고 끓여내도 아이의 입은 묵묵부답이었다. 잘 살펴보니, 아이는 자신이 스스로 밥을 먹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들려주는 숟가락에는 어떻게 조리한 이유식이든 고개를 홱 돌리는 것이었다.
혹시나싶어 이유식 담은 용기를 아기 앞에 놔 주니, 손을 푹 담그고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이 아이는 스스로 밥을 먹고싶어하는 것이었다!
급히 자기주도 이유식을 검색해보니... 새 찜기를 구입해야할 것 같았다. 다시 쇼핑의 때가 도래한 것인가?
쇼핑이 답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다양한 이유식 책들과 영상을 보며 이런 저런 방법들을 궁리한 끝에, 이유식을 법랑접시에 작게 한스푼씩 떠 올리고 오븐 180도에 5분간 구워 밥볼로 만들어서 주었다. 그랬더니 아이의 손이 식사시간 내내 쉬질 않았다. 드디어 방법을 찾은 것이다!
밥솥 이유식이니 큐브 이유식이니 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식판이나 이유식용기를 쓰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전 이유식 글에서도 말했듯 '잘 먹어주는 아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건 절대로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비싸고 특출난 이유식용품은 아기의 식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떻게 해야 아기가 잘 먹을지 살펴보는 부모의 관찰력이 필요하다. 이유식 용품은 이 방법, 저 방법 다 해본 뒤에 규모에 맞게 구매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