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 29
길버트 그로브너 (1875 ~ 1966)
우리나라 기업이 이 브랜드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롱 파카를 팔아 대박이 났다. 라이선스 비용은 길버트 그로버너가 개척했던, 저널리즘의 콘셉트에 대한 대가다. 노란 네모상자 안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지만, 또 비어 있기도 하다.
밝은 노란색 직사각형 테두리 옆에 고딕체 글씨가 쓰인 로고가 있다. 바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의 로고다. 1888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미국 지리학협회 33명의 창립회원에 의해 설립되었다.
원래 이 모임은 지리학 지식 연구와 보급을 위한 협회로, 그해 10월 98페이지 분량의 과학 간행물을 발간했다. 당시 매거진은 지도 몇 장과 기사만 가득한 밋밋한 잡지였다. 독자들이 사서 볼만한 매력이 전혀 없었다.
길버트 그로브너는 터키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188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첫 정규직원이 되었다. 그는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알렉산더 그레엠 벨의 사위가 되었다. 벨은 당시 협회장이었고, 전화기 발명가다.
그는 그로브너에게 이 매거진을, 평범한 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출판물이 되게 주문했다. 이 잡지는 1904년 편집자가 된 그로브너에 의해 변신한다. 1904년 월간지에 실을 기사가 11페이지가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러시아제국 지리학협회에서 보낸 소포가 그의 책상에 놓여있었다. 러시아 탐험가가 찍은 신비의 도시 랏싸의 사진 50장이 있었다. 그는 무료로 제공된 이 사진들을 활용해, 기사 중심의 잡지를 포토 저널로 완전히 변신시켰다.
그로브너는 1920~54년까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장을 역임했고, 이후 가족 경영으로 매거진 사업을 지속했다. 인쇄잡지 사업이 인터넷과 영상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가면서, 2015년에 21세기 폭스사에 매각되었다.
이후 디즈니가 21세기 폭스를 2019년에 인수하면서, 2023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종이사업은 완전히 사라졌다. 매거진의 장인들이 모두 사라진 셈이다. 라이프의 종이잡지가 완전히 없어질 때 만들어진, ‘월트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영화 같은 슬픈 스토리다.
미국의 지리학협회 활동을, 이제 상업적인 방송과 라이선스 사업으로 만난다는 것이 좀 이상하다. 저널리즘은 무엇인지? 사업의 변화에 따라 변신은 어떻게 해야 것인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밝은 그 노란색 상자가!
참, 우리나라의 한 의류업체가, 이 브랜드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옷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