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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Jul 28. 2024

내만사 -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술가 08

레오나르도 다빈치 (1452 ~ 1519)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 회화 작품을 남겼다. 독특한 스케치도 남겨, 르네상스의 최고 천재로 불렸다. 동시대 사람들은 그의 안목을 과연 이해했을까? 프랑스로 갔던 그의 선택이, 모나리자가 루브르에 있는 이유다.




“예술은 모든 과학의 여왕이며, 지식을 모든 세계와 세대에 전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이다. 그는 나머지 두사람보다 가장 나이가 많기 때문에, 르네상스를 가장 먼저 열었던 사람이다.


레오나르도는 괴팍했지만, 미켈란젤로 역시 그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나쁜 평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을 그리면서 레오나르도에 깊은 존경심을 표현했다고 하니, 3대 거장들이 서로에 대한 생각들이 살짝 달랐던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빈치에 사는, 레오나르도라는 의미라고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성이 없었기 때문에, 줄여서 이름을 표현한다면 레오나르도가 맞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빈치 코드 영화 탓인지, 일반적으로 다빈치라고 말한다)


그는 다방면에서 완벽에 가깝게 두루 활약했던 다중 천재다. 피렌체 공화국에서 태어났고, 14살에 베로키오 공방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30살에 밀라노 공국으로 가서 활동했는데, 이 시기에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밀라노가 프랑스에 점령되는 혼란의 시기를 피해, 그는 38살에 피렌체로 돌아왔다. 이때 헬리콥터나 낙하산 같은 수많은 과학 스케치를 남겼다. 인체해부 그림도 이 시기에 나오는데, 그가 남긴 36장의 노트를 훗날 빌 게이츠가 경매에서 340억에 모두 매입했다.


빌 게이츠는 레오나르도가 남긴 천재적인 과학 스케치, 인체 스케치 등을 전부 번역해 일반인이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언론의 표현에 의하면, ‘현재의 천재가 과거의 천재에 대한 헌사’라는 표현으로 빌 게이츠의 고가 낙찰을 비유했다.


르네상스는 유럽사에서 신이 중심인 중세가 끝나고, 인간이 중심인 휴머니즘의 시대 그리고 근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중세에 신이 하늘과 종교에 있었다면, 근대에는 땅과 인간을 주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는 뒤이어 이어지는 대항해 시대, 종교개혁, 과학혁명, 산업혁명의 꼭짓점이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선두에 있었던 그가,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모나리자를 떼어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모나리자는 현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작품은 경매의 대상은 아니지만, 프랑스 정부가 대략적인 가치를 산정한 결과 약 40조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미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년간 관람객이 10백만명이 넘는데, 관람객들 대부분이 모나리자를 관람하기 위해 온다. 모나리자가 그의 대표작이 된 이유는 작품성도 있지만, 그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오랜 기간 애정을 쏟았기 때문이다.


모나리자가 공식적인 해외 순회전시를 한 것은 미국, 일본, 소련 3번에 불과한 루브르의 터줏대감이다. 일본 전시회에서는 너무 많은 관람객이 몰려 한 사람당 평균 10초밖에 그림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프랑수아 1세 왕의 초대로 모나리자 그림을 가지고 프랑스에 들어왔고, 프랑수와 1세가 이 그림을 물려받았다. 프랑수아는 레오나르도가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집과 물질적인 것을 충분히 제공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모나리자의 뜻을 풀이하면 리자 부인이며 가로 53cm, 세로 77cm의 작은 그림이다. 모나리자는 루브르에 있던 많은 명작 중 하나였는데, 1911년 도난 사고가 발생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년 뒤 모나리자가 루브르에 다시 왔는데, 그 후로 엄청난 관람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자화상을 보면, 백발과 흰 수염이 가득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미켈란젤로에 비해 작품이 많지 않고, 그가 직접 서명하지 않은 작품들도 많아 진위 논란이 있기도 하다. 미켈란젤로가 건축에서 조각까지 예술작품을 다작했다면, 레오나르도는 미술에 전념하고 다양한 분야에 깊은 관찰력을 가졌던 천재적인 예술가였다.


화가, 발명가, 의사, 음악가, 문학가, 해부학자, 천문학자, 식물학자, 지질학자, 수학자, 의사. 그가 AI와 스마트폰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을지 정말 궁금하다.


파리 루브르에 갈 기회가 있으면, 모나리자 그림을 꼭 보고 싶다. 르네상스 시대를 활짝 열었던 그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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