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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Aug 07. 2024

추사풍 - 단순 반복의 매력

몰입

단순 반복의 매력 – 몰입


매일 노력하며 내 꿈을 찾아갔던 과정들이, 지금 돌아보면 대견했다.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 고난은 나에게 채찍이었고, 역경은 나의 경쟁력이 되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쓴 인생 각본대로 살아간다. 멋진 각본을 만들고, 과감히 도전해 보자.




캡스(Cabs)

내가 신입사원 시절에는 ‘윈도 오피스 95’가 나오기 이전이라, 파워포인트 같은 프레젠테이션용 Tool이 제대로 없었다. ‘캡스’라는 당시 혁명적인 PT용 소프트웨어가, 우리 부서에 있었다. 과장님 책상 바로 옆 PC에만, 그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매월 CEO에게 경영실적 보고 이후, 나는 그것을 이용해 경영회의에서 발표할 자료를 만들었다. 엑셀의 숫자표를 파워포인트에 직접 링크해 손쉽게 작업할 수 있지만, 캡스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캡스에서는 숫자는 물론, 선 하나하나를 키보드로 그려야 했다.


표와 숫자를 컴퓨터로 그린다는 것이, 여러분은 이해가 되는가? 이 Tool을 사용하기 위해는, 엄청난 인내력이 요구되었다. 숫자를 다루는 고부가(?) 작업이라, 남에게 맡기지 못했고 내 담당이었다. 발표 양식이 바뀌지 않으면 숫자만 업데이트하면 되었지만, 바뀌면 그야말로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경영회의 스크린에 본사 관리팀에서 캡스의 장표를 띄우는 순간, 영업 사업부장들을 All Kill 시키는 최고의 병기였다.


컴퓨터로 숫자를 하나씩 그려내야 하니, 숫자의 오류 가능성이 많았다. 경영회의 사전 리허설 때 회의자료와 화면상의 숫자가 틀리면, 부서 전체가 초비상이었다. 어느 것이 맞는지 확인하면서, 잘못된 것을 일일이 고쳤다. 출력물이 잘못되었으면 다시 복사하고 제본했고, 화면 숫자가 잘못되었다면 캡스를 고쳤다. 당시 우리 팀 임원석 옆에는 소파와 낮은 테이블이 있었다. 팀원들은 번갈아 가며, 이곳에서 회의 전까지 잠깐씩 졸았다.


나는 회의자료 대량 복사에 대비해, 삼성본관 복사실의 열쇠를 저녁부터 허리춤에 매달고 지냈다. 우리 회사의 복사실은, 당시 외주업체 직원들이 복사기들을 관리했다. 경영회의 전날에 내가 그곳을 방문하면, 외주업체 직원은 열쇠 꾸러미를 묻지도 않고 내게 넘겨주었다. 우리 부서의 한 달은 Cabs 보고가 끝나야 사실상 지나갔고, 퇴근길에 맥주 한잔을 마셨다.


여담으로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당시 그룹 사장단에게 경영실적을 보고할 때, 내가 스크린 뒤편에서 직접 목격한 광경이다. 그룹 사장단 회의실에서 발표자가 스크린을 보면서, “다음.”이라고 말한다. 이때 스크린 뒤편 두 명의 그룹 재무팀 부장들이, 사각형태의 OHP 나무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밀었다. 사장단은 자동으로 발표 화면이 바뀌는 줄 알았겠지만, 당시 OA환경은 그렇지 못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어떻게 보면, 물산이 그룹보다 앞선 PT 인프라를 갖춘 셈이었다. 우리 후배들은, 멋진 파워포인트의 세상에서 지금 살고 있다.


백야

본사 관리팀은 신입 사원을 잘 받지 않았다. 내가 신입사원 시절, 부산지사에서 일 잘한다고 소문났던 대리가 우리 부서에 합류했다. 성격도 쾌활하고, 일할 때 탱크 같은 스타일의 부산 사나이였다. 내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나는 그 선배의 서울 사무실 정착을 도왔다.


그 선배는 전사의 경비실적을 담당했다. 한 번은 아침에 내가 출근하는데, 그 선배가 컴퓨터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영락없이 밤샘을 했던 모습이었다. 밤새 담배도 몇 갑을 피운 것 같았다. 그리고 추웠는지 점퍼 같은 것을 어깨에 걸치고, 담배를 문 채 PC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밤샘 이유를 듣고 나서, 나는 더욱 놀랐다.


NEC 컴퓨터에는 스프레드시트 ‘랜플랜’이 있었다. 엑셀과 같은 것인데, 이 Tool은 프린트로 출력하면 솔직히 글자 폰트, 선 모양이 좋지 않았다. 선배 말로는, 오늘 오전 과장님께 경비실적을 보고하는 날이었다고 했다.  한밤중에 경비실적 집계를 마치고 출력하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글자 모양이 예쁜 워드(랜워드)로, 보고양식을 새로 만들고 숫자를 일일이 입력했다는 것이다. 무려 수십 장의 전사 경비실적 집계표를 말이다.


초인적인 각오가 아니면,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일을 그 선배가 벌렸던 것이었다. 그날 하루 밤을 꼬박 세고 나서도, 점심때 선배는 유쾌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서울 사무실에 온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만두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선배를 생각하면, 말 그대로 의지의 한국인이 연상된다.


문서 저장고

SDS는 그룹 관계사의 전산자료 백업, 클라우드 형태로 각종 데이터들을 관리해 주는 회사다. 어느 시점부터 개별 회사들은 전산 출력물들을, SDS 업무 서비스 덕분에 실물로 보관할 필요도 없어졌다.


옛날 사무실에는 ‘문서 저장고’라는 곳이 있었다. 당시는 호스트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를 불러들여, 개인 PC에서 연계해 작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 출력물을 바인딩해 실물로 보관했다. 이 자료를 기초로 우리는 숫자를 PC에 입력해, 다양한 숫자 요약표를 만들었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단순 반복 작업이었다.


이런 문서들을 보관하는 거대한 밀폐공간이, 삼성본관 내 엘리베이터 홀과 사무실 공간 사이에 있었다. 이곳의 문서보관 선반(랙)들은, 해당층의 부서별로 할당되었다. 관리팀과 경리팀이 대부분의 선반 공간을 차지했고, 우리는 그곳에서 필요한 자료를 보관했다.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익숙해졌고, 사원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점심시간에 문서 저장고에 들어가면,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십중팔구 어제 술을 마신 직원이, 그곳에서 공간을 마련해 잠을 잤다. 간부들은 이곳에 올 일이 없으니, 우리들의 해방구였다. 우리는 그런 낮잠족을 동병상련식으로 묵인했다. 사무실에 버퍼 역할을 해주는 문서 저장고가 있어 야근, 회식 등에도 직원들은 지치지 않았다. 요즘 젊은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피곤한 몸을 잠시 쉴 공간이 있는지 궁금하다.


생활관(기숙사)

입사 후 성균관대학교에서 몇 개월 하숙을 했다. 당시 삼성의 제2 생활관(남자 독신자 기숙사)이 신월동에, 그해 7월말 오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물산 사무실이 시청 앞에 있어 전철로 통근이 가능했고, 작은 형님이 그 학교를 다녔다는 점 등을 고려해 입사 초기에 하숙집을 정했다.


제2 생활관이 오픈하자, 하숙을 청산하고 그곳으로 이주했다. 신월동은 김포공항 주변인데, 당시 전철이 없었다. 아침 출근시간, 수십 대의 출근 버스들이 생활관 입구에 도열했다. 와이셔츠 부대를 실어 나르는 풍경은, 내가 봐도 장관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교통이 막히는 지역이라 운행루트를 어떻게 잡는지에 따라, 우리들의 지각 여부가 결정되었다.


운전기사가 막히는 쪽으로 버스를 운행했다가, 억울하게 아침 방송조회가 시작될 때 사무실에 들어갔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이런 시행착오 때문에 우리는 버스가 출발할 때, 기사님께 "어떤 루트로 가주세요."를 당부하고 각자 꿈나라에 갔다. 좁은 버스 안에서 코를 골고, 누군가는 전날 과음해서 차 안의 여건은 그리 좋지 않았다.


출근버스는 그룹차원에서, 서울경기 전 지역을 통합하여 운영했다. 시내버스와 전철보다는 당연히 편리했다. 직원들은 부족한 잠 출근버스에서 보충하고, 교통비도 절감할 수 있었다. 당시 동네 아주머니들이 인근 백화점 버스를 타고, 쇼핑하러 갔던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임원이 되기 전까지 늘 아침 출근버스를 이용했다. 내가 살던 신도시에서 간혹, 몇 초 차이로 통근버스를 놓치면 정말 난감했다. 당시 신도시는 택시와 버스 인프라가 정착되지 않았고, 시간 간격이 큰 좌석버스를 기다리면서 마음도 초조했다. 당시 출근버스는 직장인들의 대체불가의 솔루션이었다.


토요일 퇴근(주 6일 근무)하고, 생활관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동네 통닭집에서 치킨 한 마리를 항상 샀다. 캔맥주와 치킨을 먹고 낮잠을 잤던 것이, 당시 기숙사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나는 평일 늦은 시간에 기숙사에 왔기 때문에, 그나마 여유 있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주말뿐이었다.


주말에 밀렸던 빨래와 와이셔츠를 다림질하며, 다음 주 출근을 준비했다. 내가 와이셔츠를 다리는 실력은, 생활의 달인에 출현해도 될 수준이었다. 나는 옷을 다릴 때 마음이 편안했다. 무슨 일이든지 몰입하면, 마치 수련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회사 일도 그랬지만, 단순 반복되는 일에 나는 약간 중독 증세가 있었던 것 같다. 몰입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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