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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Aug 14. 2024

추사풍 - Globalization

기억과 경험

Globalization – 기억과 경험


‘스워브(Swerve)’는 럭비나 하키 등에서 사용되는 스포츠 용어다. 몸을 좌우로 틀면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상대방을 제치는 기술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한 분야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이리저리 모색하고 옆길로 일탈해 보면서, 자신의 지평을 넓히는 ‘스워브’ 전략이 필요하다.




첫 해외출장

물산은 신입사원 전원을, 교육차원에서 해외지점 출장을 보냈다. 당시 2개 코스가 있었는 데, 나는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출장지역에 배정되었다. 이 코스 대상자는 10여 명 정도였다. 나는 동기생 중 입사 기수가 제일 빨랐기 때문에, 입사 후 약 1년 뒤에 출장을 갔다. 나의 첫 해외 방문이며, 첫 출장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신혼여행을 대부분 제주도에 갈 때였다.


2개 팀으로 나뉘어 현지에서 활동할 계획도 짜고, 사전에 숙제도 제법하고 출장을 떠났다. 부서 선배들이, 해외지점 관리 주재원들에게 잘 부탁한다고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도착하는 날 저녁에, 나는 싱가포르 관리 주재원 호출로 한 잔을 더했다. 호텔의 강한 에어컨 바람까지 겹쳐져, 다음날 아침의 몸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워낙 더운 지역이고, 시차와 감기 기운까지 겹쳐 오전 일정이 몹시 힘들었다. 싱가포르 지사장의 지점 소개 등 교육 프로그램들이 많았는데, 나는 식은땀이 나고 속도 좋지 않았다. 첫 해외출장 신고식을 단단히 했다. 싱가포르에서 너무 고생을 해서, 인도네시아에서는 티 안 나게 요령껏 컨디션 조절을 했다.


싱가포르에서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한다. 시내 중심지에 ‘래플즈 시티’라는, 쌍용건설이 지은 큰 호텔이 있다. 입사 동기와 함께 묵었는데, 이 친구도 해외 고급 호텔은 처음이라서, 호텔 이용방법을 잘 몰랐다. 침대 위에 두 개의 실내 가운이 놓여 있었는데, 우리는 사용하지 않고 다른 곳에 고이 모셔 두었다. 가운을 사고 싶으면 얼마를 내야 한다는 안내 문구가 있었는데, 입으면 그 돈을 내라는 것으로 알고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해외 첫 방문이라 주눅이 들었던지, 기초영어도 제대로 독해하지 못했다.


회사는 주재원들에게, 해당 국가 중간층 이상의 생활여건을 제공한다. 싱가포르는 비싼 지역이라 집도 작았지만, 인도네시아는 외국인 주거단지의 큰 저택에서 주재원들이 살았다고 한다. 운전사, 정원사, 메이드 등 현지인력도 고용한다고 했다. 그 나라에서 법으로, 외국인들에게 이런 고용을 강제했기 때문이다. 주재원의 부인은 이런 편리성 때문에, 선진국보다 오히려 인도네시아 같은 지역을 더 선호했다는 말도 있었다.


종합상사이다 보니, 전 세계에 해외지점들이 많다. 나는 2010년도에 1년 동안만 미국 주재를 했는데, 주재원들은 이래저래 고생이 많다. 해외 현지에서 오늘도 땀 흘리는 후배 주재원들, 모두 힘내세요!


어학 등급

내 인생에서 첫 번째 자격증은 영어 자격증이 아닌가 싶다. 그 정도로 나는 자격증과 무관한 인생을 살았다. 한편으로, 편한 길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운전 면허증도 마흔이 다 되어서 땄다.


회사내 어학자격은 1~4등급으로 관리되었다. 1등급은 자격만료 연도가 9999년으로 표시되었다. 나머지 등급은 2년마다 만료되기 때문에, 그때마다 갱신해야 했다. 어학 등급은 점수로 환산되어, 승격 심사에도 반영되었다. 물산은 일정 수준의 어학등급이 없는 대상자들을, 실제 승격에서 누락시켰다. 부득이하게 승격시킬 경우에는, 몇 개월내 취득 못하면 승격 취소라는 조건이 붙었다.


요즘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지만, 우리 때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영업부서가 아닌 지원부서 직원들은, 어학 수준이 조금 떨어진 경향도 있었다. 내 또래 직장인들 같으면, 어학등급 취득을 위해 공부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영어 1급을 따지 못했다. 그래서 어학등급이 만료될 즈음이면, 그룹에서 주관하는 주말 어학 시험장에서 시험을 봤다. 어학 시험장은 항상 붐볐다. 시험 직전 화장실 가는 시간에, 회사에서 낯익은 선배들도 많이 만났다. 삼성의 사업장이 있는 전국에서 실시되었고, 연간 시험 스케줄이 사전에 공지되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외부 토익 점수가 어학등급으로 인정되었다. 이 덕분에, 주말 회사에서 어학시험을 치르던 진풍경도 사라졌다. 이후 회화 중심의 테스트로 바뀌었다. 회사내 어학시험 자격증은 계속 진화했다.


그룹 연수원

창조관이라는 그룹 연수원이 용인에 있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웅장했던 건물이다. 나는 신입사원 입문 교육을 이곳에서 받았다. 지방 관계사의 공장들을 견학할 때는, 해당 지역의 삼성생명 등 지방 소재의 연수원을 이용했다. 창조관은 그룹 연수원의 총본산이었다.


삼성은 미국 GE그룹과 교류가 있었다. GE의 연수원(크로톤 빌)을 벤치마킹했고, 그룹 연수원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그룹주도의 교육과정이 많았는데, 창조관은 점차 제한된 교육과정만 운영했다. 그룹 중앙집중식 대신에, 관계사에 교육훈련을 많이 이양했기 때문이다.


나는 간부 때는 그곳에 잘 가지 못하다가, 임원이 되어서는 매년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때마다, 연수원이 여러모로 진화한다고 느꼈다. 창조관의 음식은 음식 종류도 다양했고, 맛도 좋았다. 연수원 주위 경관은 차분했고, 교육과정 자체도 회사보다는 자유로웠다.


연수원을 마지막 방문했을 때, 중정에 있던 ‘Pride of Samsung’이라는 설치물이 아직 눈에 어른거린다. 사실 그 문구는, 삼성물산이 회사가 어려울 때 주창했던 슬로건이었다. 아무튼 창조관, 연수생, 삼성물산은 삼성의 자부심이다.


어학 테이프

요즘 직장인에게 전화를 걸어, 구매를 권유하는 상품이 있다면 무엇일까? 1990년대는 텔레 마케팅에서, 어학 테이프가 단연 1위였다.


신입사원일 때, 어학 테이프의 구매권유 전화를 자주 받았다. 당시는 핸드폰은 물론 삐삐도 없을 때라, 직접 사무실에 전화가 왔다. 어떻게 회사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했는지 궁금했다. 배달되는 일간 신문 속에도, 광고 전단지들이 수북이 있었다. 어학 테이프별로 얼마에 판다는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나도 한 세트를 샀다. 공부는 하고 싶었지만, 게을러서 제대로 듣지는 못했다. 어학 테이프는 인터넷 등장, 전자매체의 발전에 따라 자취를 감추었다. 동네 비디오 가게들이 OTT 때문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의 오래된 물건 가운데 오디오 세트, 카세트테이프, CD, 비디오테이프, 구식 게임기기, CD게임 소프트웨어 등이 있다. 불과 20~30년 만에 어학, 게임, 음악 등이 유튜브와 모바일 스트리밍으로 변했다. 오래전에 버스 안내원들이 사라졌듯이, 당시 어학 테이프를 팔던 분들도 이제 없다. 전화 권유판매 품목들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반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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