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 15
김연아 (1990 ~ )
그녀가 엉덩방아를 찍을 때,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본 아사다 마오와의 경쟁에, 마치 내가 출전하는 경기 마냥 가슴을 조리며 지켜봤다. 피겨 요정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피겨 꿈나무들의 파이팅을 빈다.
김연아는 피겨 스케이팅의 레전드다. 우리나라 피겨 스케이팅은 김연아 전과 후로 구분된다. 김연아 키즈들이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나오고 있다. 골프 레전드 박세리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
김연아는 7살 때 과천 스케이트장을 가면서,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이빨 보정기를 끼고 스케이트장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피겨 스케이팅에서, 세계 신기록 점수를 11번 작성했다. 피겨 4대 메이저 대회(올림픽, 세계선수권, 4대륙 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를 최초로 석권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2014년 소치올림픽 은메달을 따고서 은퇴했다. 미국의 미셸 콴 선수를 보면서 꿈을 꿨고, 부모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으로 눈부신 성과를 만들어냈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그녀가 경기하는 모습을, 미국 주재원 초창기 집에서 TV로 시청했다. 뛰어난 기량의 선수라 잘할 것으로는 생각했지만, 한마디로 완벽했다. 피겨 스케이팅은 기술성, 예술성, 멘털이 요구된다.
아무리 잘하더라도 엉덩방아를 찧어버리게 되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그녀의 밴쿠버 대회 같은 멋진 장면은, 아마 앞으로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김연아는 국내 빙상계가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에 국한되어 있을 때, 피겨 스케이팅을 우뚝 세웠다.
그녀는 은퇴 후에도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를 역임했고, 최종 성화 주인공으로도 등장했다. 그녀의 올댓스포츠 팀이 연출했던 공연을 아내와 직접 잠실에서 본 적이 있다. 당시 그녀는 은퇴했고, 갈라쇼와 같은 조명 아래에서 편안하게 피겨 스케이팅 연기를 했다.
아직 김연아는 30대다. 앞으로 한국 스포츠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지속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밴쿠버의 감동은 정말 진했다. 내가 미국 출장 중, LA 한 호텔 식당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다. 민폐를 줄까 봐 아는 척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