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가며
이 책을 만들기 위해, 먼저 볼펜과 종이를 준비했다. 첫 등장인물은 스티브 잡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작성된 A4 종이가 쌓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쥐어짜도 모셔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될 때, 나는 볼펜을 놓았다. 모나미 볼펜 7개를 사용했다. 벼루 10개를 구멍 내고, 붓을 천 자루나 못쓰게 만든 추사 선생님과 비교할 수는 없다.
원고를 노트북에 옮겨야 했다. 나는 타이핑을 할 때, 열 손가락을 모두 사용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평생 독수리 타법으로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손가락 몇 개는 오래전부터 통증이 있었다. 그 손가락들에게 미안했지만, 혹독하게 가동해 원고내용을 노트북에 입력했다. 최동원 선수의 한국시리즈 4번 등판의 고통에 비하면, 내 손가락의 고통은 새 발의 피다.
타이핑하고, 글을 다듬고, 사람의 Grouping 등에 원고를 작성했던 시간만큼이나 필요했다. 300페이지를 훌쩍 넘는 원고가 만들어졌다. 만들고 보니 경영자, 기업, 제품 이야기가 전체의 절반이었다. 내가 30여 년간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창업자들의 업종과 제품들은, 내가 경험했던 그것과는 다르다. 나름대로 경영자들과 회사를 깊게 들여다보고, 나의 관점과 경험을 매칭했다.
1990년 회사에 입사하고, 대학에서 사용한 적이 없던 퍼스널 컴퓨터에 적응하느라 꽤 고생했다. 신입사원 시절 컴퓨터로 하루 종일 숫자표를 만들고, 출력하고, 문서를 복사하면서 사무실 OA환경에 적응해 나갔다. 30여 년의 회사 생활에서 NEC, 마이크로소프트 MS-DOS/윈도, 인터넷, 네이버, 애플의 아이폰, 엔비디아의 GPU, 오픈 AI의 챗 GPT까지 차례대로 만났다. 지난 30년간의 기술적 변화가, 산업혁명 이후부터 30년 전까지의 전체 변화보다 더 크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실감했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맥도널드, 스타벅스와도 나의 연결점이 꽤 많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그 공간에 머물렀던 시간과 인상 깊었던 일들이 오롯이 있었다. 레이 크룩의 사업가적 안목과 스타벅스 원조 3인방의 브랜드 작명 과정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꿈을 가지고 회사를 만들었고, 그 제품과 나의 경험은 연결되어 왔다. 우주는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도 심오하게 존재했다. 나의 경험과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 그 회사의 창업자들이 기꺼이 동행해 주었다.
정약용 선생은, 은퇴한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는 유배생활 18년 동안, 보물 같은 책들을 저술했다. 그는 신하로서, 선비로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평생을 살았다. 고흐 등 몇 분들의 글을 쓰면서는 흠칫 눈물이 났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청춘 이야기에 불현듯 마음이 설렜다. 이민진, 석지영, 허준이 글을 쓸 때는 자부심도 느꼈다.
나에게는 이 책의 137명 모두가 소중하다. 나는 그분들과 지난 60년 동안 차례로 만났고, 공감했고, 많이 배웠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이들 거장들 중에는 죽거나, 뒤늦게 제대로 평가된 사람도 있다.
볼펜과 내 손가락에게는 미안했지만, 이 책을 만들면서 내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첫 순간이고, 마지막 순간이며, 유일한 순간.” 독자 여러분에게 이 책이 그렇게 다가가면 좋겠다. 나 역시, 독자 여러분의 小우주를 그렇게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