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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Sep 25. 2024

1990년대 추사풍 - 나가며

Adieu 1990s!

나가며 - Adieu 1990s!


이제는 한 분야를 깊이 파거나, 하나의 사다리만 오를 게 아니다. 직업 세계를 정글짐처럼 폭넓게 바라보고, 경영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인생과 커리어를 폭넓게 경영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들의 인생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한 직업에서 정년을 채운다고 해도, 이후에 만만치 않게 긴 시간이 남는다. 이 ‘활동적 은퇴기’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도, 폭넓은 관심과 지식은 필요하다.


우리는 경쟁과 성과를 중시하며, 피로와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부, 권력, 명예, 건강, 쾌락 등과 같은 물질적/신체적 가치를 추구한다. 이를 통해 행복을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시기와 질투, 허영과 불안의 감옥에서 의미 있는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떤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대학생들은 100년 전 사건은 알아도, 10년 전 사건은 모른다. 100년 전 사건은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밑줄을 그어가며 외우지만, 10년 전 사건은 시험에도 안 나오고 읽을 만한 책도 없다. 100년 전보다는 10년 전을 제대로 알 때, 이 세상에 대한 이해가 더 잘 되는데 말이다.”


1990년대 추억의 사무실 풍경(추사풍)에서, 30여 년 전 나의 경험담을 다루었다. 그 내용은 정치도 아니고, 사회문제도 아니다. 회사원 시절 첫 Decade의 에피소드들을 담았다. 물론 내 스토리가 일반적인 1990년대를 100%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독자들에게 조그만 공감과 울림을 줄 수 있었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추사풍의 내용들은, 시험과목처럼 밑줄치고 외울 필요도 없다. 이 브런치 북을 만들면서 그동안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30여 년 전의 나에게도,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서점에 가면 일을 잘하기 위한 기술, 매뉴얼은 지천에 널려있다. 왜 일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정해진 대로만 움직여도 회사에서 급여는 나온다. 우리 모두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는다.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천직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온 정성을 다해 수행토록 해보자. 여러분이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근본적인 이유(진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나의 좋은 면만 부각되었다고, 이슈를 제기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맞다. 나 역시 꽃 길 만을 걷지는 않았다. 가슴 시리게, 아팠던 적도 많았다. 신입사원 시절, 혼자 술을 마시다가 불광동의 선배집에 전화를 드리고 무작정 찾아갔다. 신혼집에서 선배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날 밤 같이 술을 마셨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대학생 시절, 하숙집에 같이 지냈던 제주도 출신 선배와 저녁을 같이 했다. 그 선배는 학교를 마치고 제주도에서 밀감과 돼지 농장을 경영하고 계셨다. 선배의 대학시절 전공은 원자핵 공학이었다. 다음날 나는 혼자 한라산에 올랐다. 한라산에 오르고 나니, 회사에서 쌓였던 고민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갔다. 이틀 뒤, 다시 서울 태평로 사무실에 평소처럼 출근했다.


나는 일을 할 때, 스티브 잡스처럼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러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었고, 나는 CEO도 아니었다.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생겼다. 내가 찾았던 진정한 기쁨은 일 속에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낮추어야 했다.


역경을 마주할 때 성공을 위한 시련이라고 받아들일지, 무릎 꿇고 원망만 늘어놓을지에 따라 사람의 운명은 뒤바뀐다. 1990년대 10년간의 희로애락 속에서 지난했던 몸부림의 결과, 나는 2000년 1월 그룹 재무팀에 입성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직장생활 두 번째 Decade를 맞이했다. 그룹 입성과 함께내 직장생활의 첫 Decade였던 1990년대와 나는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Adieu, 1990s!


인생을 여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을 어떻게 할지, 그 발견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에 나 역시, 지금의 나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인생의 긴 여정 속에 있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오늘 이 순간에서 바라본 1990년대 내 모습은, 비극이 아니라 희극에 가깝다. 나의 마음은 어느덧 넓어졌다. 나도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들었다. 올해 환갑이 되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 주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그리고, 여러분의 긴 인생 여정길에 파이팅을 기원하며...




※ 미국, 사무직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

19세기 중반 산업화로 행정업무가 늘어나면서, 서류 작업을 주로 하는 사무직이 생겨났다. 단순 서류업무만 반복한다고 폄하되었지만, 이들의 증가를 막을 수 없었다. 사무직은 전문화되었고, 육체 노동자의 소득 상승률을 앞질렀다. 사무직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최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1960년대 중반 산업의 고도화로, 사무직은 White Color에 의해 수행되는 ‘지식 노동’으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사무실에 과다 진입했던 선배들 때문에, 진급의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1980년대 불황으로, 기업의 대량 감원이 발생함에 따라 White Color의 판타지는 깨졌다.


“회사는 사무직의 역량 중 아주 작은 부분밖에 못 쓰면서도 시간, 충성심, 사내 정치, 어리석은 짓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 시간만 때우는 사람, 사내 정치에만 관심 있는 사람 등이 많아서 의욕이 없다. 중간 관리자를 넘어 승진하는 것은, 깡패 같거나 교활한 사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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